7/19/2010

율법으로 부터의 해방 1 - 예수님을 시험하는 사람들, 정죄 아래 있는 인생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 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1∼12).

요한복음 8장은 율법이 무엇인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또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요한복음 7:53~8:2).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다니실 때, 밤에는 찬 이슬을 맞으며 감람산에서 주무시는 일이 많았습니다.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신 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자신을 아무에게도 의탁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주무시고 다시 아침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시어 자기에게 나아온 백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른 아침에 간음 중에 현장에서 잡힌 여자가 예수님 앞에 끌려온 것입니다. 간음의 상대방 남자는 도망갔는지 아니면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갔는지는 알 수 없고, 단지 여자만 예수님 앞에 끌려 왔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그 여자를 끌고와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고 계신 곳에 두고 예수님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姦淫)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신명기 22 22절에 보면, 간음하다가 잡힌 사람은 남자와 여자 두 사람 모두 백성 앞에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간음 중에 잡힌 사람은 돌로 쳐 죽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그렇게 명령하였기 때문에, 간음 중에 잡힌 이 범법자를 이스라엘 재판장에게 끌고 가 재판받게 해 죽이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왔으며 그 이유를 성경은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예수님을)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율법(律法)을 중히 여기고 그것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로마가 이스라엘을 점령하여 통치하고 있었으므로, 동시에 로마법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로마의 관원들이 예루살렘을 다스렸고,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總督)이 사법권(司法權)을 갖고 재판했습니다. 그 사법권은 로마법에 따라 총독에게 주어진 권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런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서도 그러한 사정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총독 빌라도 앞에 끌고와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누가복음 23:2)라며,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자이니 죽이기를 구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고 그들의 주장이 거짓말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기(猜忌)로 예수를 넘겨준 줄”(마태복음 27:18)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무리에게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말했고, 이에 유대인들은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요한복음 18:31)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에 따라 “간음 중에 잡힌 이 여자를 돌로 쳐죽이라”고했다면, 살기등등하여 손에 돌을 들고 굶주린 사자처럼 몰려든 군중에 의해 그 여자는 순식간에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로마법에 따라 예수님은 살인 교사죄(敎唆罪)로 총독에게 고소당해 범법자로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지 말라”고한다면, 그때는 모세의 율법을 범한 죄로 유대 종교가들 앞에서 종교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죽이라 하면 로마법을 어긴 살인 교사죄에 걸리고, 죽이지 말라고 하면 모세의 법을 폐한 죄에 걸립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도록 해서 그들은 예수님을 고소할 구실을 찾고자 한 것입니다. 그 범죄한 여자를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고자 한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들이 그렇게도 고대하던 메시야가 이스라엘 땅에 오셨는데, 하나님의 선민 그것도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는 종교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를 내고 모함을 하며 끈질기게 따라다닌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게 할 좋은 구실이 생겼다고 생각하여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종교가들은 육체적으로는 간음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들은 간음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간음한 여자를 끌고 와서 지금 그녀를 정죄하고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너무나 수치스럽고 비참한 모습으로, 이제 잠시 후면 날아올 돌멩이에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벌벌 떨고 서 있었을 것입니다.

정죄 아래 있는 인생
예수님은 그러한 무리를 향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몸을 굽히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리 앞에서 최초로 쓰신 글입니다. 군중 대부분이 예수님이 무엇을 쓰시는지 내려다보았을 것입니다. 그 동안에 아우성치던 분위기는 가라앉고 조용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땅에다가 무슨 글을 쓰셨을까요? 훗날 예수님 앞에 가면 “주님, 그때 무엇을 쓰셨습니까?”라고 한번 여쭈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물론 정확한 답이 나오겠습니다만, 지금 우리가 한 번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글을 써주신 것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1 18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돌비에 기록해 주신 십계명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인데, 그 예수님이 몸을 굽히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쓰신 것도 십계명과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십계명 중에 일곱번째 계명인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말씀을 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도 문제이지만 그 여인을 정죄하고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거짓된 것임을 보셨으므로 그들의 죄를 일깨워주기 위해 계명을 쓰셨을 것입니다.

간음(姦淫)은 정해진 배우자 외의 다른 사람과 음행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린도전서 6:18)고 하여, 엄히 경계하는 범죄입니다. 그 여자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실 때는 그 여자뿐만 아니라 둘러서 있는 그 종교가들 또한 모두 간음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淫慾)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태복음 5:27,28)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를 보고 간음죄를 범한 여인을 죄인이라고 정죄하지만,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마음에 음욕을 품어도 그것을 이미 간음이라고 하셨으니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이나, 행위로 간음죄를 짓는 것보다 더 근원적인 간음죄가 영적 간음입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자기들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사단의 거짓말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것이 첫번째 간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의 남편이 될지라도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을 좇았다고 하시면서 그것이 인간 대 인간의 육체적인 어떤 간음보다도 더 큰 영적(靈的) 간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야고보서 4:4).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한 1 2:15).

신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세상 것을 더 사랑하고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그 모든 것을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땅에 글을 쓰시고 일어나서 너희 중에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것은 아주 타당한 말씀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정죄하고, 죄인이 죄인에게 형을 집행할 수는 없으므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죄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전도서 7:2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로마서 3:11,12) 성경은 이미 선언하였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과 유대 종교가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등진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심판과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미 죄를 지었고(로마서 3:23),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로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와 같이 둘째 사망 곧 불 못에 떨어져야 하는 죄인들입니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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