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2011

십자가의 도 뿐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3-24)

예수그리스도께서 인성과 신성을 가지시듯 교회 또한 인간들의 모임이면서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면 교회를 모르고 교회를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모르면 죽으신 후 3일 만에 세우신 교회의 비밀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모르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모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이십니다. 언제나 현재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성도의 신비한 연합입니다. 이건 쿠폰이 아니라 현찰입니다. 복음(하나님의 아들)과 세상의 딸(적극적인 사고방식)이 합치면 네피림이 됩니다(창 6:4) 위대한 용사가 됩니다. 지금의 메가 처치가 그렇습니다.

십자가 없이 길들여진 기독교가 미국의 들소 같은 야망과 교배를 하면 잡종 영성집단이 탄생됩니다. 한 때 한국 목사들의 선진목회 순례의 대상이든 크리스탈처치(수정교회)가 법정관리로 넘어갔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없는 복음과 적극적인 사고의 밀월이 끝났습니다. 또 기독교가 문화와 접목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사고입니다. 매우 위험합니다.

유대인은 철저한 반문화적인 민족입니다. 교회가 세상 문화를 끌어들이는 것은 이미 십자가의 도와 삼위 하나님의 코트가 아니란 말일 수 있습니다. 한국 선수들만 경기를 하니 재미가 없어 용병을 쓰는 운동경기처럼 교회만으로는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져서 문화를 용병으로 끌어들이는 일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경쟁을 한다거나 능가하려고 하면 그건 이미 교회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 분의 능력과 지혜로 나타나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message of cross)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영역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로 뛰어드는 일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믿음으로 삼위 하나님이 일하시는 영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거듭난 성도는 모든 일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동참합니다. 거부도 멸시도 모욕도 함께 받습니다. 나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건너편에는 주의 부활과 그의 능력과 지혜와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과 함께 십자가의 죽음의 강을 도하한 우리는 그 분의 부활과 생명을 만났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주의 존재와 그 분이 이룩하신 은혜에 대한 인격적인 반응이며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언어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그 분과 합일 시키는 일만 해도 충분히 주의 능력과 지혜와 거룩과 영광이 나타나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고 부럽게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육체를 자랑하는 곳이 아닙니다(고전 1:29) 그렇지만 주의 능력과 지혜는 반드시 우리의 육신의 삶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이 능력이 우리의 휴일을 늘려준다거나 돈을 공짜로 벌게 해 주지는 않아도 삶 속에 나타나는 신기한 에너지(아우라)가 됩니다. 십자가의 도, 삼위 하나님이 일하시는 코트를 떠나 묘수를 짜내는 잔머리는 이제 제발 그만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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