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2010

왜 종말을 연구해야 하는가?




첫번째로, 예수님의 놀라운 리더십에 대한 통찰력과 주님이 가장 관심을 두시며 사랑하시는 그의 방법과 신적인 활동을 알아내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좋은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식적으로 주님의 생각이 우리보다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가진 지식에 만족하고 어떻게, , 또는 무엇 때문에 그러한 생각들을 가지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시간을 내어 종말을 연구함으로써 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던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된다. 주님은 가능한 한 우리가 그분을 더 많이 알기를 원하시며, 또한 주님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예수님의 지식을 추구하는 일에 전심을 다해 헌신해야 한다.

둘째로, 성경에는 예비하라는 구절이 많이 있다. 선지자들과 선포자들, 사도들의 경고 소리가 반복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파되고 있다: “예비하라!” 분명한 것은 예수님 재림 바로 직전에 있을 사건들은 과거의 있었던 어떤 일이나 장래 있을 어떤 일보다 더 중대한 일이라는 것이다(24:21).

성경이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무섭고 파괴적이며 심판의 사건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심판은 무시무시하리만큼 많은 생명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분노하셨기 때문인가? 하나님께서 복수하시려고 작정하셨기 때문인가? 아니다.

이 둘은 모두 다 정답이 아니다. 하나님은 친절하시며 부드러우시며 자비 베풀기를 좋아하신다. 이러한 일들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사랑에서 나온 행위이며 성경은 앞으로 일어날 이러한 일들을 그림같이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준비하기 위하여 종말은 연구해야 한다. 만인 우리가 예비된다면 지상에서 지옥 같은 일들은 힘을 잃을 것이며,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주님을 두려워하여 도망하는 것이 아니라(21:26) 전심을 다하여 예수님께 달려갈 것이다.

그래서 종말을 준비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예수님을 더 많이 알고자 전심을 다하여 추구하는 것인데, 이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주님과 함께 있으며, 또한 그 임재를 풍성하게 누림으로 이룰 수 있다. 주님을 알고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다르게 만든다. 두려움이나 의심, 불안정한 상태가 거의 없어지고 큰 확신과 신뢰, 안정감이 풍성해 진다.

내적 변화는 기도 생활을 통하여 찾아오게 되며, 이 변화는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과 대화하며 그분의 임재안에서 그 리더십과 인격, 생각, 감정을 배우게 해 준다. 우리가 오직 주님 안에 뿌리를 내리고 확신과 신뢰, 안정감을 느낄 때, 주위 상황이 어려워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서 있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준비될 때 주님은 각자에게 그분의 마음에 깊이 간직한 비밀스러운 것들을 알려 주신다. 그는 보든 믿는자 개개인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실제로 인도하시며, 종말의 때에 다른 사람들도 주님께 인도하도록 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단순히 종말에 살아남거나 그때를 피해가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의 충성스럽고 가가운 친구같이 여기시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은 안전한 곳과 구원으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세번째로, 종말을 연구해야 할 이유는 상급을 받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 오실 대 그분은 상금을 가지고 오실 것이다.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이 주신 사명에 대하여 충성한 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시대, 주님이 이땅을 통치하실 때 풍성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려면 먼저 우리에게 무엇을 맡기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과의 깊은 친밀함을 계발하며 말씀을 상고해야 한다.

성경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온전히 변화된 삶을 삶으로써 고난과 핍박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사도들의 서신에서 우리는 사도들이 이러한 새로운 신자들에게 앞으로 올 상급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들을 격려하며 용기를 준 것을 볼 수 있다. 신약서신서를 보면 대부분의 사도가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사도들이 교훈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있을 심판과 상급에 대하여 성도들이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도록 격려하고 있다. 사도들은 신적인 비밀들을 알고 있었으며 예수님의 재림 전에 성도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왕으로 오실 예수님에 의하여 상급이 주어진다고 성도들을 일깨워 주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싹트게 된 믿음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며 그 순간부터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심판을 받고 평가도 받을 것이다(22:12). 하나님께 대한 일들은 우리에게 겸손과 온유, 근면, 순종을 배우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들을 자신의 영원한 파트너로 삼아 위대한 일들을 성취하게 하신다. 우리는구원을 얻는 순간부터 천국의 가족이 되며, 이 가족이 한 구성원으로 남은 생애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선택하게 된다.

이 놀라운 진리는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감동을 주며, 자각하게 하여 우리의 자존심과 자만심을 내려놓게 한다. 또 이 진리는 이 땅에 있는 모든 조직을 혼란케 할 혁명적인 일을 위하여, 신속히 움직이는 광범위한 실체에 대하여 눈을 뜨게한다.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셔서 이세상을 넘겨받아 통치하실 것이며 우리 각 개인을 그분의 곁에 두시는 영예를 우리에게 주기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간구하거나 상상할 수도 없는 상급, 모든 것을 주기 원하신다. 우리가 단순히 고백적인 기도나 필요에 대한 간구만을 하고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삶에 빠져 있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상급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상급은 순전한 사랑을 하는 각 개인에게 주실 것인데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근면과 충성, 순종, 겸손, 온유, 친절, 인내, 동정심을 가진 참사랑을 의미한다.

이 참된 사랑은 주님을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의 고백과,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의 자발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예수님과의 관계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그분과 풍성하고 충만한 관계를 유지하게 해준다. 예수님을 향한 참된 사랑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궁극적으로 보상받을 것이다.

종말론을 연구하는 이 세 가지 이유는 모두 상호 연결되어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자 자신을 열정적으로 헌신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와 금식하는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말씀 안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신중하게 선택하게 된다. 말씀 가운데 예수님을 발견한다는 것은 그분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주님께 중요한 것은, 주님이 계신 곳으로 우리가 가기보다는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기를 진심으로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해야 할 딜레마는, 성경이 말하는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에 온 땅이 진동할 것이며 이것이 오랜 후에 있을 것이 아니라 곧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이 다가오는 고통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그러니 이러한 고통에 온다는 것은 진리이며 여기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재앙을 당하거나 휩쓸려 가버릴 것이다.

종말의 때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가지는 딜레마와 마찬가지로, 바로 서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에 바로 서지 못한다. , 그들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은 것이 아니며 단지 우리가 실수로 그를 버린 것이고, 그는 우리를 위하여 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몸부림치고 시련을 겪으면서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아가셨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빌립보서3:8-11절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말한 바울의 말로 우리 자신을 일깨워야 한다.

종말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왕이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을 알고자 결단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삶에서 성취해야 할 것들을 행하여, 예수의 재림을 스스로 준비해야겠다는 확고한 결심과 그분의 충실한 친구로 함께 섬길 준비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말에 관한 연구는 그가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충만한 상습에 도달하기 위하여 전심을 다하게 해준다…. 무엇을 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말만 하기보다 더 나은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셨을 때, 우리의 삶이 예수님이 계획하신 것들에 대한한 확실한 증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삶의 이유를 주셨고 바울과 같이 우리의 모든 힘을 다하여 그 삶의 이유를 성취하기 원하신다.
<출처:간추린 종말론 End-Times Simplified by David Sli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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