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모든 나라를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교회는 이 지상 대명령을 단순히 모든 나라에서 제자를 삼는 것으로 축소시켜 버렸다.
왕의 자녀의 책임과 권한 – 우리가 부름 받은 왕의 자녀로의 많은 권한과 책임을 동반하고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12:48). 권한과 책임은 항상 같이 따라다닌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부르심이 갖고 있는 이 두 가지 양면을 모두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에 지구상의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셨다. 반면에 우리는 그 권한을 사용하여 그분의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책임도 함께 갖고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온 세상을 제자 삼으라는 지상 대명령을 위임하셨다. 우리의 직무명세서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셨지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그저 온 세상에서 제자를 삼는 것만으로 그분의 지상 대명령과 부르심을 축소시키고 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이 아직도 상당부분 우리 안에 있던 거지근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작고 힘이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희석하여, 그저 우리가 약한 상태에서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변화되기 시작할 때 성경을 새로운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성경말씀으로 한 번 시작해보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이 부분에서 저자는 모든 나라를 제자 삼으라는 번역을 사용한다-역자 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사람을 제자 삼는 것과 나라를 제자 삼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스도께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다 제자로 만들어야 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지상 대명령을 단순히 사람을 제자로 삼는 것으로만 국한 시켜버리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마귀로부터 자신에게 넘어온 상황하에서 지금 제자도를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그러므로(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모든 나라를 제자 삼으라는 것이다. 지상 대명령을 정말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땅의 역사를 알아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땅을 통치하기 원하셨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성경 창세기로의 여행을 해보자. 그리고 이 땅이 처음에 어떻게 다스려지도록 창조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아담과 하와가 창조될 때 그들은 이 땅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 받았다. 창세기 구절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6-28).
만약 아담과 하와가 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더라면 이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어느 시점에서 마귀는 뱀의 형태로 나타나 인간에게 접근하여 하나님 대신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유혹했다. 인간이 마귀의 말을 듣자 곧 그들은 마귀의 노예가 되었으며 자신의 위치를 마귀에게 내어주어야만 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사단은 이 세상의 임금이 되어 온 세상을 지배해왔다. 그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 한 말을 보면 과거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이 세상의 지배권을 자신이 넘겨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귀가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4:6)
사단은 인간을 지배했고 이 세상을 다스렸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주님은 사단에게서 그 권세를 다시 빼앗으셨다(골2:15; 계1:8을 보라). 주님은 이 세상의 통치권을 다시 인간에게 회복시키셨으며, 교회에 그 권세를 위임하셨다. 지상 대명령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은 여기에서 사단이 더 이상 하늘과 땅을 지배할 권세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이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이 놀라운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다.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너무나 엄청나서, 바울은 서신을 기록하다가 말고 잠시 중단한 다음 우리를 위한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기도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부르심이 어떠한 것인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조명하고 있다.
바울은 이렇게 기도한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18-23).
이 구절을 다시 읽어보자.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바울이 이 사실을 우리와 나누기 전에 그가 먼저 우리를 위하여 기도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교회는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충만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권세에 대한 주님의 통치를 이 땅에 나타내야만 한다. 이 성경구절은 권력의 핵심 요소인 통치권과 사법권이 어떻게 교회에 주어지게 되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모든 정사와 권세 위에 뛰어나신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우리는 사법권을 갖게 되며, 또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다스리는 권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지상 대명령을 수행하는 데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세상을 통치하도록 태어나다 –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다스림의 권세 회복이 다니엘서에 예언되어 있다. 다니엘은 강력한 예언적 환상을 보았으며 그것들 중 대부분이 아직까지도 잘못 해석되어지고 있다. 비록 그가 본 환상이 여러 부분으로 되어 있지만 그 중 시대적으로 분명한 한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여기에 그 환상이 소개된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7:13-14).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았을 때 천사가 와서 해석을 해주었다.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여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단7:15-16, 18)
성경 전체의 분위기와 흐름을 느끼기 위해서 전체 장을 다 읽는 것이 좋지만, 여기에서 나는 특별히 당신의 관심을 한곳에 집중시키길 원하다. 다니엘의 환상에 나오는 인자 같은 이가 천사의 해석에 의하면 바로 성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환상에 의하면 인자 같은 이가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물려받는다. 그리고 그 환상의 해석에 의하면 바로 성도들이 나라를 물려받는다. 너무나 극적인 상황이 아닌가! 우리 성도들이 바로 권세와 영광과 영원한 나라를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말인가? 계속 말씀을 읽어보자.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단7:21-22)
시간대가 여기에서는 아주 특별하다. 성도들이 다스리게 될 시간을 명시하고 있는 두 가지 사건은, 성도들을 위하여 지극히 높은 자가 와서 신원한 것과 성도들이 나라를 얻은 것이다. 골로새서에 보면 사도 바울이 성도들의 신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간 하늘의 법정에서 벌어진 일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거가 도말되었고, 빛 문서가 효력을 상실했으며, 정사와 권세가 벗어져 버렸다. 이 상황은 수 백 년 전 다니엘이 보았던 것과 똑 같은 것이었다. 다만 바울은 구체적으로 법정 용어를 거론하며 그것을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간 우리는 이와 같은 엄청난 은혜를 입게 된 것이다. 하늘 법정에서 외치는 선포가 여기에 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2:12-15)
시간대를 나타내는 두 번째 사건은 성도들이 나라를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언제 나라를 얻는 것(혹은 이미 얻은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성경말씀이 이 미스터리를 푸는 데 좋은 안목을 제시해 준다. 마태복음 10장 7절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를 설교하셨다. 주님은 늘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외치셨다. 거듭남의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게 해준다고 주님은 가르치셨다(요3:3).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린 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막10:15).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오직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충고하셨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머지 모든 것을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마6:27-34).
주님은 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시려고 제자들을 파송하셨다(눅9:2).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셨다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지금까지 우리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점검해 보았다. 우리가 예수를 주님과 구세주로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하늘나라를 받은 것이다! 이 사실은 성경 전체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신약성경에서만도 약 150번 이상이나 사용된 용어이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를 보면 사도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이미 수백 년 전에 다니엘이 환상으로 보았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한 것이다.
와! 만약 성도들에 대한 심판에 대해 하나님이 이미 신원하셨으며, 우리가 그의 나라를 상속받았다면, 이제 다니엘이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에 대하여 또 어떻게 예언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놓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 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나라와 권세와 온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단7:25-27)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고 통치하기 위하여 태어났다! 바울은 이렇게 선포한다. “더욱 은혜와 의의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롬5:17). 물론 다스림과 통치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세상의 관점과는 다르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보여주신 사실이지만, 영적 지도자들의 다스림이란 사람들 속에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끄집어내어 준비와 훈련을 시킴으로써 그들을 섬기는 것이다.
<왕의 자녀의 초자연적인 삶/크리스 밸러턴/순전한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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