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회개하는 것 : 불안에 대한 해독제
아무것도 불안해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미국 문화에는 두려움,스트레스와 불안이 총 집합되어 있습니다.불안과 걱정은 우리의 사업, 가정, 사회생활에 찌꺼기처럼 끼여있습니다.심지어 우리의 교회 생활에까지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게 작은 소리로 이렇게 속삭입니다. : 내가 직장을 잃게 되면 어떻게 하지? 내 아이가 방황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그 사람이, 그 여자가, 우리가 만약에 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지? 우리는 매년마다 더 열심히, 더 오랫동안 일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고 적은 평화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증가하는 해답이 없는 질문에 직면합니다. 그리고는 두려워할 더욱 더 많은 이유를 찾습니다
우리는 전쟁과 테러공격이 언제나, 어느 곳에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을 걱정합니다.우리는 불안정한 경제가 회복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걱정합니다. 우리는 나이가 드는 것과 건강에 대해서 걱정합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취업이 안 되는 것으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포근함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두려움, 특히 자녀에 대한 걱정의 장소가 됩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어머니는 슬픈(saddest) 자녀가 행복한 만큼 행복하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아버지에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에 사랑하는 사람을 간직하고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전쟁, 스트레스와 불안은 우리의 전쟁이 되어 버립니다.
실로 불안은 미국인의 생활인 듯 합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조차 그렇습니다. 두려움, 우울함과 걱정은 대부분의 크리스천의 일상생활에서 흔한 것입니다 –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아무도 믿는 자로서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성경은 ‘두려워 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명령하신 – 실로, 믿음의 거장들에게조차 -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주목해보세요.
창세기 15:1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민수기 21:34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 말라”…
여호수아 8:1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다니엘 10:12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마태복음 1:20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누가복음 1:13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누가복음 1:30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누가복음 5:10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사도행전 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초원의 양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알려주십니다.
이사야 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요엘 2:21 “땅이여 두려워 말고”…
스바냐 3:16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누가복음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또한 의의 남자들과 믿음의 여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여러 번씩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한 것에 주목해보세요.
창세기 50:19 …”두려워 마소서”…
출애굽기 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여호수아 10:25 “여호수아가 군장들에게 이르되 두려워말며”…
사무엘상 12:20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사무엘하 9:7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역대상 17:13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두려움과 불안이 우리의 영혼들에 불어넣어질 때 우리는 비난의 통제아래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우리는 이 끊임없이 붙어 다니는 죄들을 ‘제거시킬 치료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완전히 말입니다.
스트레스는 병이 아닌 죄 입니다.
우리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줄여주는 것을 보장하는 광고들을 볼 수 있고, 대부분의 정신적 육체적 질병에 대한 약물을 살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와 관련된 불안함은 굉장히 친숙하게 되었고, 받아들여지게 되어서 우리의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과 불안이 무엇인지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 ‘죄’라는 것을요. 우리는 스트레스에 대한 약을 먹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습관을 바꾸지는 않는데, 그 두려워하는 습관은 우선적으로 스트레스를 만듭니다. 속지 마십시오. : ‘두려움과 불안은 죄 입니다.’ 핵심은, 두려움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휴식하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불안은 불신에서 생긴 부산물입니다. 불안은 지옥에서 온 영적인 ‘공포 공격’으로서 매일마다 수십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을 조용하게 죽여가고 있습니다.
불안에 대한 ‘마지막’ 해독제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회개를 하고 이 끊임없이 붙어다니며 괴롭히는 두려움의 죄에서 회복하게 됩니까? 어떻게 스트레스에 굴복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들을 위해서 이루신 아주 멋진 평화에 계속적으로 머무를 수 있습니까? 불안을 치료하는 방법은 약물에 있지 않습니다. 약물은 불편한 감정을 멍하게 하고 뇌의 화학반응에 영향을 주는 것이지만, 신체문제의 영적인 뿌리에는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세로토닌이 족한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의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스스로를 돕는(self-help) 책으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정신적인 가르침은 인지,행동적인 경향을 잠시동안 조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변화되기를 아무리 결심한다고 하더라도, 영혼 그 자체가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의지에 영향을 주고 변화시키고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갈보리 언덕에서 뒤집으신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신성한 임파테이션이나 기름부으심, 영광스러운 모임에 참석하는 것으로도 두려움과 걱정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중에서 일부는 다른 사람의 기름부으심, 경건한 상담과 기도에 의존해서 성장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들 각자가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우물’에서 마시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선생님으로서, 위로자로서의 성령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불안에 대한 해독제를 찾기 위해서는 어디에 의지해야 합니까? 두려움에 대한 마지막 치료제를 우리는 어디에서 찾습니까?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해독제는 간단한 것입니다 :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유일한’ 치료제는 말씀, 예수님의 사람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6절~7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The Message Bible 버젼도 생각해 보세요.
조바심을 내거나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는 대신 기도 하세요. 청원과 찬양으로 당신의 걱정을 기도로 바꾸도록 하세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염려가 무엇인지 아시게끔 하세요. 당신이 이것을 알기 전에,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대한 지각, 선한것과 함께하는 모든 것이 임해서 당신을 평안하게 할 것입니다. 당신의 삶의 중심이 걱정에서 예수님으로 대체될 때 일어나는 일은 놀라운 것입니다.
스트레스와 불안에 대한 해답은 약물이 아닙니다. 주인(the Master)이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울 필요가 있는 모범입니다 : 우리 내면의 초점을, ‘의지’를 예수님께로 돌리면, 우리의 ‘감정’을 예수님께로 두면, 우리의 ‘생각’을 말씀에 맞추면, 우리는 평화에 거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기는 자인 에녹이 걸었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 안에서’ 임재하시는 것은, 압박감과 혼란의 시대에서도 우리가 평화안에 거할 수 있게 하는 보험과도 같은 것입니다. 거친 시대를 단순히 ‘극복해 나가는 것’ 이상으로, 예수님께서는 완벽한 평화와 ‘지속적인 만족’을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사실이냐고요? 하나님의 왕국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입니다. 평화의 왕자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피로 사신 방해받지 않고 ‘샬롬(Shalom)’ 안에서 걸을 수 있는, 모든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운 권리를 우리가 갖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temple)에 살아 숨쉬는 예수님께서 임재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좋은 것이어서 믿어지지 않지 않습니까? 당신의 마음이나 가슴이 다투고 있을지라도 성서는 항상 사실이고, 너무나도 엄청난 상황가운데에서도 평화안에 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풍성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향해서 칼을 들었을 때 조차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와는 사막에서 40년 뒤의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전혀 알지 못했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 그리고 그녀의 영혼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 언덕에서 죄를, 두려움과 사망을 이기셨을 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죄를, 두려움과 사망을 이겼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함으로써 함께 죽었고, 예수님과 연합함으로써 예수님의 부활에 함께 했습니다. 십자가는 두려움과 불안을 벗겨냈습니다 : 두려움과 불안은 더 이상 우리의 영혼에 법적인 효력이 없습니다 – 스스로를 지배하게끔 내버려 두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허락한 것’을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적인 생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화를 반드시 ‘경험’해야 하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하나됨 안에서, 우리는 완벽한 평화로 열린 접근권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평화에 거하기를 매일마다, 삶에서 경험할 수 있나요? 우리의 마음, 의지와 감정을 예수님께로 계속적으로 고정시키는 것으로써 가질 수 있습니다.
평화로부터 감정이 벗어날 때마다’, 용서를 구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에서 발견되는, 당신의 연인의 ‘심장’으로 돌아가세요. ‘평화로부터 마음이 벗어날 때마다’, 용서를 구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에서 발견되는, 당신의 연인의 ‘진리’로 돌아가세요. ‘평화로부터 의지가 벗어날 때마다’, 용서를 구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에서 발견되는, 당신의 연인의 선한 의지를 철저하게 ‘의지’하세요.
이사야 26장 3절~4절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는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하나님께서는 선하신분 ‘이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선한일을 ‘행하신다’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마세요(나훔 1장 7절).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이 말씀은 폭풍이 당신의 길로 올 때 당신이 맞설 수 있는 반석입니다 – 폭풍은 정말로 옵니다(마태복음 7장 24절~27절 :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하지만, 폭풍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은 놀라운 것입니다(예레미야 29:11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당신은 당신의 삶과 하나님의 진리를 반드시 분별해야 합니다 – 그리고 어떻게 인지되고 느껴지도라도 예수님을 신뢰하기를 선택하십시오.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실제를 보지 마십시오.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에 당신의 감정을 두지 마십시오… 이 놀라운 성경말씀의 진리위에 감정을 두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평화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대신, 이것을 마음속에 다시 생각해 보세요 :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예레미야애가 3장 20절~24절 :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제가 이 구절을 생각해 낼 때, 제가 희망을 갖습니다. 저의 힘이 소모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인애(compassion)는 부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애는 매일 아침마다 새롭습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엄청납니다!”
당신이 싸울 전쟁터는 삶의 환경이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원수의 진정한 전쟁터는 당신의 마음, 의지와 감정입니다. 당신의 생각과 마음을 선한 것에 집중하기를 계속하면 당신의 영혼이 어둠에 빼앗기지 않습니다(빌립보서 4장 8절,9절 :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썼습니다(빌립보 4장 6절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는 예수님의 예수님의 변하지 않는 왕국에 집중하는 것에 머물러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 혼돈의 시대에서 평화에 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6장 33절,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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