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2010

제22강 신부의 예수님과의 성숙한 동역(아7:9b-8:4)

I. 6:11-7:9 복습
A. 6:11-12에서 신부는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들에게 사역하기로 헌신합니다. 예수님이 신부를 동역 가운데 행하도록 준비시키시는 것이 아가서의 주된 주제입니다.

B. 7:8-9a에서 예수님은 그녀를 3가지 방식으로 사역을 위임하십니다: 다른 이들을 먹이는 것, 성령님의 임재를 풀어놓는 것 그리고 예수님과의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

II. 7:9b-8:4의 개관
A. 7:9b-8:4에서, 그녀는 아 7:8-9a로부터 위임받은 3가지 사역을 실행합니다. 그녀가 “이 포도주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 내려간다”고 말할 때, 우리는 이것에 대한 그녀의 열심을 보게 됩니다.

B. 7:9b-8:4에서, 신부는 예수님과 신부로서 동역함을 4가지 측면에서 묘사합니다. 그녀는 즉각적인 순종(7:9b-10)과 보다 큰 능력을 위한 중보(7:11-13), 공개적인 사역에서의 담대함과 겸손함(8:1-2) 안에서와 그녀의 깨어지지 않는 그분과의 연합(8:3-4) 안에서 행합니다.

III. 즉각적인 순종으로 표현된 신부의 동역( 7:9b-10)
9이 포도주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 하느니라 10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 7:9b-10)

A. 7:9 중간에서 사고의 흐름이 특별하게 변화됩니다. 그녀는 아 7:8-9a에서 위임받은 3가지에 자신이 동의하고 있음을 열정적으로 선포함으로써, 7:6-9a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신부가 받은 확증에 대해 반응합니다.

B. 사랑의 시적 언어로서 “미끄럽게 흘러 내려가는 포도주”는 그녀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즉각적으로 동의하며 살아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포도주가 부드럽게 흘러 나갈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저항하지 않고 억누르지 않으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으로 지속적으로 충만해져 있다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 아래서 지속적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5:18).

C. 그녀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뻐하면서 아무 방해 없이 하나님의 뜻의 잔을 마십니다.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40:8)
...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 20:22)

D. 그녀가 예수님을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언급할 때, 그것은 그녀가 예수님을 향한 사랑에 근거하여 성령님께 순종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성령님께 동의하며 살아갈 때, 그분은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더 많이 부어주실 것입니다(5:5; 16:14). 순종이 어려울 때, 우리는 “예수님, 당신은 나의 사랑하는 분이시며 제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포도주가 부드럽게 흘러 내려갑니다.”라고 고백합니다.

E. 성령님은 영적으로 잠자는 육적 신자들을 깨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 5:14)

F. 그녀가 자신의 삶 가운데서 그분께 순종할 때, 성령님은 그녀를 통해서 잠자는 자들에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 포도주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 하느니라 ( 7:9)

  1. 성령님께서 잠자는 자들을 깨우셨다는 증거는 그들의 말이 성령님의 인도하심 아래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잠자는 자들을 움직이셔서, 순결과 의로 말하게 하실 것입니다.

  2. 성령님은 우리에게 부드럽게 구애하셔서, 그분을 대신하여 민감한 느낌을 가지고 말하게 하십니다. 그분은 자발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심으로서, 우리의 자유 의지를 침해하지 않으시면서 친절하게 우리를 움직이십니다.

G. 구약의 선지자들은 포도주를 성령님의 축복과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말했습니다(3:18; 9:13; 2:22; 9:17; 2:15-16).

15 ...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 ( 2:15-16)

H. 7:9을 두 부분으로 나누면, 이해가 더욱 쉬워질 것입니다. 9절의 첫 부분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고, 이어서 신부가 말합니다. 아가서에서 그녀는 예수님을 “나의 사랑하는 자”(주님은 이렇게 그녀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지칭합니다. 그분은 그녀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라고 부르십니다.

IV.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신부의 2가지 영적인 정체성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 7:10)

A. 7:9에서 신부의 순종은 2가지 영적 정체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의 영적 정체성#1: 그녀는 자신을 예수님이 사모(갈망)하시는 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영적 정체성#2: 그녀는 그녀가 사랑하는 분이신 예수님에게 자기 자신이 온전히 속하였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갈망이 그녀를 향해 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분의 소유인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분의 갈망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분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B. 영적 정체성#1: 그녀는 자신을 예수님이 갈망하시는 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가서의 가장 탁월한 주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갈망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애정과 기뻐하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계시는 우리를 강력하게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순종과 근면함에 대한 그녀의 우선되는 동기입니다(4:9; 6:4-5; 7:6-10). 하나님의 갈망에 대한 통찰력은, 우리를 견고케 하여 다른 이들의 의견들에 의하여 사는 삶을 거절하게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줍니다. 기록되기를 “다른 이들이 나를 거절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분의 갈망이 나를 향하여 있노라!”고 말할 때, 우리는 원수를 향하여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C. 영적 정체성#2: 그녀는 자신을 하나님의 연인으로 이해하면서, “나는 내 사랑하는 자의 것이다” 즉 “나는 예수님께 속하였고 나는 그분의 지도력 아래 있으며, 나는 그분을 기쁘게 하기 원한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그분의 갈망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그녀의 완전한 주인이심에 대한 계시를 가지고 있습니다(고전6:20). 그녀는 다른 것들을 고려할 필요가 없이, 그분을 위해 존재합니다( 14:4). 그녀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염려 없이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녀의 초점은 이제 자신의 관심사에 있지 않고, 전적으로 그분에게 있습니다. 그분이 무엇을 갈망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이 그녀가 가장 큰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D.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갈망하시고 우리가 그분을 갈망(사랑)한다는 사실에 의해 가장 잘 정의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나는 하나님의 연인이다. 그것이 내 정체성(who I am)이며 부르심(what I do)이다.”라고 고백합니다.

E. 그분이 이미 우리를 갈망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가 희생적인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갈망하시고 그녀가 그분께 속하였기 때문에 포도주는 부드럽게 흘러 내려갑니다( 7:9-10).

V. 예수님은 그분의 백성을 향한 커다란 갈망을 갖고 계신다( 7:10)
A. 우리의 가장 큰 영광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은 그분을 향한 우리의 확고한 사랑에 의해 깊이 감동받으십니다. 우리 마음의 움직임은 하나님께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그분의 책들에 기록됩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 56:8)

B. 당신이 그분을 감동시키는 방법을 아십니까? 그분은 그분을 진실로 사랑하는 연약한 사람들에 의해 압도당하십니다. 그분을 향해 반응하며 드리는 사랑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분에게 귀중합니다. 시험의 기간 동안에 그분의 임재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신부는 자신의 사랑이 예수님의 마음에 미친 영향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시험의 중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신실한 사랑을 어떻게 느끼시는지 계시해 주십니다.

네 눈이 나를 놀라게(overcome)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 6:5)

C.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너무나 강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연약한 백성에게로 그분을 결합시키십니다. 그분의 백성을 위한 사랑에 사로잡히는 것은 (그분의 연약함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입니다. 그분이 자신보다 훨씬 더 비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능력은 특별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진실로 신부에게 사로잡히셨습니다( 7:5).

D.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똑같은 분량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15:9; 17:23). 이것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3:18). 예수님이 자신의 사람들을 향한 사랑보다 그분께 더 즐거운 것은 없습니다. 약함과 몸부림치는 가운데서도, 그분께 우리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우리의 얼굴은 사랑스럽습니다( 2:14)

E. 우리는 정기적으로 “이 계시를 저에게 풀어주시고, 당신의 사랑을 제 마음에 부어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3:5)

...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 5:5)

VI. 우리의 동역은 능력을 위한 중보 안에서 표현된다 ( 7:11-12)
11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12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 7:11-12)

A. 예수님과 우리의 동역은 그분의 능력이 더욱 풀어지는 것을 보기 원하는 우리의 중보 안에서 표현됩니다. 7:8에서 예수님은 그녀의 삶에 성령님이 임재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녀는 이 약속을 따라 중보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부가 사역 하는데 헌신하며 계속 나아가는 것을 봅니다( 6:11).

B. 이전에 그녀는 예수님과 함께 동역하며 동산으로 내려가, 성숙하지 못한 이들을 그분의 축복과 지도력 아래로 이끌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그녀 자신의 수고를 통해 그분의 임재가 풀어진다는 의미에서 그분께서 그녀와 함께 가시도록 중보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아 6:11의 “내가 내려갔다”에서 “함께 가자”로 어투를 바꿉니다. 그녀는 4( 7:11-12)이나 주님과 동역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함께 ~하자”를 사용합니다.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 6:11)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 16:20)

C. 7:11에서 신부는 추수의 동네와 들판으로 헌신하여 나아갑니다( 4:35).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 7:11)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 3:9)

...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 4:35)

D. 섬김의 들판은 우리의 가정, 직업, 교회, 이웃에서 시작됩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두신 곳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사는 모든 곳입니다. 들판에서 섬기기 위해 반드시 비행기를 탈 필요는 없습니다.

E. 동네는 예수님이 유업으로 소유하신 곳이며,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기 원하는 곳으로서, 도로가 있는 지역을 벗어난 작은 곳을 말합니다. 그녀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과 단지 대도시가 아닌 곳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가치를 이해합니다. 그녀는 외딴 동네에서도 어느 기간 동안 기꺼이 머물며 유숙하려 합니다( 7:11).

F. 일찍 일어나는 것은 주님께서 그녀에게 맡기신 임무에 대한 그녀의 근면성과 긴급성을 말합니다.
 
G. 그녀는 내려가서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하는 움트는 포도나무들을 돌봅니다. 그녀는 움트는 포도나무를 “보기 위하여” 가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포도나무들을 예수님의 유업과 “그분의 정원”으로 보며, 따라서 그녀는 그것들을 가치 있게 여기고 그것들에게 오래 견디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 움트는 포도나무들, 포도 꽃들, 활짝 핀 석류들은 성숙함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과 사역들을 의미합니다( 4:12, 13; 6:11).

H. 모라비안 선교사들은 “어린 양은 고난에 대한 상급을 받으실 것이다”와 같은 희생 안에 살았습니다. 이 단락에서 성령님의 영향 아래에서 그녀는 그분과 함께 달려가고 있습니다.

VII. 거기서 내 사랑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7:12)
11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12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 7:11-12)

A. 신부는 사역 가운데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예수님과의 친밀감을 경험합니다. “거기서”는 이기심 없는 수고, 믿음의 위험부담, 실망스러움, 부당하게 대우받는 일이 있는 장소입니다. 그녀는 친밀감 가운데 이끌려지는 것과 사역 가운데 함께 달려가는 것(1:4)을 모두 받아들입니다. 그녀는 사역의 혹독함 안에서도 친밀감을 잃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을 배웁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그분의 유업으로 받으셔야 할 동네와 들판에서 그분과 함께 효과적으로 달려갑니다.  

B. 나무 그늘 아래 잔치 상 앞에서(2:3-4) 예수님께 우리의 사랑을 드리는 것은 보다 쉽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여인은 개인적으로 사랑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을 섬길 때에는 그 사랑을 지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C. 고난, 박해, 실망 가운데서도 여전히 예수님을 향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 안에 걸어가기 위해서는 성숙함이 요구됩니다. 신부는, 역경을 품어 안으면서 친밀감과 사역 안에 행하도록 우리를 부르는, 3:10에 나타난 사도적인 기독교 안에서 행합니다. 바울은 행 16장에서 부당하게 감옥에 갇히면서도, 간수에게 사역하는 상황 가운데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사역)과 그 고난(역경)에 참여함을 알고자(하나님과의 친밀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 3:10)

D. 바울은 다른 모든 사도들 보다 많은 사역의 수고를 했으며, 큰 고난들을 겪었습니다.

...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0)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 11:23-28)


VIII.신부는예수님께서그녀의수고의열매를즐기시기를원한다( 7:12-13)
12...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13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 ( 7:12-13)

A. 합환채의 향기가 흘러 나가면서, 추수 때에 사랑 안에서 그들이 서로 함께 수고합니다. 합환채는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자주색 꽃입니다. 합환채는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상징합니다. 고대 시대에 불임의 여인이 아기를 낳을 기회를 늘리기 위하여 합환채를 사용하곤 했습니다. 불임으로 몸부림치던 라헬이 언니 레아에게 합환채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말했던 이야기 때문에, 합환채는 사랑과 다산에 연관된 과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말하여진 생각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녀는 높은 임신의 가능성을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30:1,14-16). 이것이 성경에서 아가서 외에 단 한번 합환채가 언급된 경우입니다. 오늘날가지도 유대 전통에서는 합환채가 사랑과 연관된 과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B. 그녀의 사역의 영향으로 상쾌한 과일을 맺게 됩니다. 그녀의 사역의 열매가 예수님을 상쾌하게 한다는 것을 알때에 기쁨이 있습니다(4:16). 내 문 앞에 열매가 있다는 것은 내 앞에 열매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C. 성령님은 우리에게 기름부으셔서, 새롭고 오래 된 모든 종류의 상쾌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새롭고 신선한 것들 뿐만 아니라, 지나온 이전 과거에 있었던 승리와 경험으로부터 확증된 진리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 13:52)

D. 성령님은 하늘에 쌓여지는 사랑의 순종의 삶과 믿음으로부터 우리에게 보물들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예수님에게 드리기 위하여 쌓아둡니다. 그녀는 그녀의 사랑하는 분이신 예수님을 위해 상쾌한 열매들을 쌓아두었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 ( 6:20)

E. 우리가 그 분 앞에 서게 될 때, 그분의 발 앞에 우리의 보물을 던지게 될 것입니다( 4:10). 이렇게 쌓여진 보물은 마지막 날에 우리의 왕관이 될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마지막 날 예수님 발 앞에 드릴 우리의 부를 쌓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씀과 희생의 동기는 그분을 향한 사랑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사역의 들판으로 나아가도록 강권하는 것입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 ( 4:10)

IX. 공개적 사역 가운데서 겸손으로 나타나는 동역
1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2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 ( 8:1-2)

A. 아가서에서 어머니는 역사상에 나타나는 교회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로 말하여집니다. (남자 아이로서) 예수님과 후에 따라 나오는 신자들을 낳은 “어머니”는 역사상 속량된 자들을 나타냅니다( 12:5, 17).

B. 그녀는 담대하게도 예수님께 자신의 충성과 애정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보여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녀는 “오, 예수님! 당신은 나의 형제와 같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직계 가족이 아닌 반대 성별의 구성원에게, 공개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부적당했습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형제와 함께 하는 자유함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예수님과 관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역사상 그 시대에 여자는 약혼자보다 자신의 형제와 공개적으로 더 친밀할 수 있었습니다.

C. 사도적 기도에서 표현하는 것과 같이, 그녀는 사도들과 같이 지속적인 담대함이 자신의 삶에 있기를 원합니다( 4:29; 6:19). 담대함은 성품적인 특성이기 보다는 성경의 역사입니다.

D. 같은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는 이복형제가 아닌 친형제입니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아이들은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가 다른 아이들과 대조적입니다. 고대 시대에 남자들은 여러 명의 아내를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씨족들이 아버지는 같았지만 어머니가 달랐습니다. 그들은 종종 압살롬과 암논처럼 경쟁자가 되기도 했습니다(삼하 13).

E. 신부는, 외부의 공개적인 장소에서 예수님을 발견하더라도,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그녀가 그분에게 입 맞출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공개적으로 예수님께 입 맞춘다는 것은, 오해나 멸시를 받지 않고 예수님을 향해 그 마음을 온전하게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F. 그녀는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어떤 부분들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할 필요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에 하나님 안에서 개인적으로 간직되기를 원하시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고액적인 자리에 잘 어울리지 않는 기도와 예배의 친밀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12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 19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고전 14:12, 19-20, 23)

G. 공개적인 자리에서 적절하지 못하게 담대함을 표현한다면, 그녀는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정신이상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은 복음에 장애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모든 때에 표현하지 않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어떤 경우에 우리의 자유를 억제할 때, 우리는 사랑 안에 행하는 것입니다( 14:14-15:2; 고전 14:20, 23-33, 6-19).

H. 신부의 동역은 기름 부어진 사역으로 표현됩니다( 8:2).
2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 ( 8:2)

I. 예수님께서, 그분을 존경하는 자리로 그분을 이끌고 모실 수 있는 영광을 신부에게 주십니다. 그녀는 기름 부어진 사역이 나타나는 장소들에 예수님을 모시고 오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 사역을 세우기를 구하지 않고 그분을 모시게 되기를 갈망합니다.

J. 그녀는 기도합니다. “제가 당신을 이끌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왕국의 어떤 결정들을 하게 하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목적이 나타남 안에서, 우리가 결정하는 것들을 축복하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로서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8:17). 성숙한 신자는 오직 예수님을 높여드릴 방식으로만 그분을 이끌기 원합니다.

K. 그녀는 예수님을 자신의 어머니의 집 즉 그녀에게 지도해 줄 수 있는 이들에게로 모셔 오기를 갈망합니다. 이것은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관계를 맺어온 이들을 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들을 그녀에게 처음 가르쳐 주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은 때때로 보다 어렵습니다. 선지자는 종종 자기 고향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13:57). 우리가 친밀한 관계들을 갖고 있을 때 뒤로 물러나기가 쉽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하나님과 함께 행하기 시작했을 무렵에 그녀를 알았던 사람들 에게도 예수님에 대한 진리들을 기꺼이 섬기기 원합니다.

L. 그녀는 어머니의 집 즉 교회 안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가져다 주길 원합니다.

M. 그녀는 왜 하나님의 깊은 것들 안에서 오랜 친구들을 분발시키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그녀는 그녀의 초기 시절에 그녀를 가르쳐 주었던 분들을 향한 감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축복의 때에도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녀를 처음에 훈련시켜 주었던 이들을 섬기려 함으로써 그들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그녀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 축복을 돌려 드리기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권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유산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이 항상 하나님의 더 깊은 것을 향해 자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시작했던 이들에 대해 비판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N. 신부는 “저는 향기 나는 포도주와 저의 석류 즙을 당신d에게 마시게 해 드리기 원합니다( 5:1)”라고 기도함으로서, 그녀의 가장 좋은 것을 그분께 드리기 갈망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존경하는 손님을 대접할 때, 그것이 보다 즐겁게 마실 수 있기 때문에, 포도주에 향료를 섞기를 원할 것입니다.

O. 그것은 더 비싼 것이지만, 그들이 가장 좋은 것으로 손님을 존중하기 원할 때에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예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기 원합니다. “저는 당신에게 마시게 하기 원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녀는 마치 존중하는 손님과 같이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모든 갈망을 소중히 여기기를 약속하는 것입니다.

P. 내 석류 즙은, 그녀가 내적 삶에서 경험하는 달콤한 은혜의 것들을 말합니다. 그녀의 사역의 기초는 하나님과 은밀한 곳에서 그녀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X. 예수님과 깨어지지 않는 연합으로 표현되는 동역
3너는 왼팔로는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안았으리라  4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 8:3-4)

A. 예수님은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녀에게 가까이 오시고(8:1) 그녀를 붙잡으리라는 그분의 약속을 실행하십니다(7:8).

B. 하나님의 왼손은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머리 아래 있어서 시야에서 벗어난 것이 바로 왼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많은 일들을 우리를 위해 행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공급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해 많은 것을 감추셨다가 풀어 놓으십니다. 그분은 이 세대에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하는 환난에서 우리를 면하게 하십니다.

C. 하나님의 오른 손은 보이며 인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솔로몬이 신부를 안기 위해 그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녀는 그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느껴지고 인식할 수 있는 하나님의 “부드러운” 확실한 임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오른 손의 역사로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실제적인 포옹은 알아차리기 쉽기 때문에, 그것은 분명하게 보여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신체적인 포옹은 인식하기 쉽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확실한 역사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그녀에게 발견되시는 것을 허락하십니다(8:1). 하나님의 포옹은 그녀의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D. 성령님은 영적으로 전략적인 시간에 우리를 보호하십니다(8:4). 성령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각 개인의 영적인 삶 안에 전략적인 계절을 지정해 두셨습니다. 그분의 마음에 대한 보다 새롭고 깊은 계시들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세워주시기 갈망하시는 그러한 계절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에 신부에 대한 성령님의 목표는 그녀 안에 담대함과 겸손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8:1-2).

E. 예루살렘의 딸들은 성령님의 다양한 활동과 하나님 안에 있는 서로 다른 계절들에 대한 분별이 부족한 신자들을 대표합니다. 성령님은 다른 신자들에게, 그들의 견해와 판단으로 이러한 계절에 신부의 마음으로 헌신된 자들을 혼란케 하거나 방해하지 말라고 부탁하십니다.

F. "그것이 원하기 전에는"이라는 구절에서 그것은 히브리어로 그것(it), (he), 그녀(she)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NAS에는 "그것이 원하기 전에는" 대신에 "그녀가 원하기 전에는"으로 바르게 번역되었습니다. 만약 히브리어로 “”라고 번역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의 딸들에 의해 깨실 수 있는 분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분이 아니시고 들사슴으로 상징된 부드러움으로 보호되실 필요도 없으십니다. 혼란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바로 신부입니다.

G. 3번이나 예수님은 “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방해하지 말지니라”라는 구절을 말씀하십니다(2:7; 3:5; 8:4). 

2:7 3:5에서 그분은 “그녀를 방해하지 말라”는 같은 문장을 사용하셨지만, “들사슴을 두고”라는 문장이 추가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그녀가 성숙하지 못하고 안정감이 부족하여 요동하기 때문이었습니다(4:14).

<출처:선두주자커뮤니케션/IHOP번역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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