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2010

이스라엘 민족과 현재 기독교인의 모습

1.복음을 대적하는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당시 유대인들의 상태나 지금 기독교의 대체적인 상태는 닳은 점이 너무 많다. 20세기 기독교 전성시대, 교회당도 많고 교인도 많으며 종교적 열심도 굉장하지만, 참되고 순수한 복음의 역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 기독교 대표들이 모이는 회의에서 가결된 내용을 보면 "20세기 기독교의 사명은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어서 천국에 간다고 하는 것은 추상적이고 이기적이며 비현실적이다. 이제 그러한 차원을 넘어 현실 문제에 부딪쳐 문제를 해결하고, 선교는 가난한 자를 위주로 하여 약한 자, 억눌린 자를 돕고 사회를 구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얼핏 보편 매우 훌륭한 것 같지만 그것은 복음과 반대되는 것이요, 적그리스도 운동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기한이 차면 어차피 멸망하도록 정해져 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죄악은 더욱 관명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경건치 않은 모든 자와 함께 이 땅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에 한사람, 한사람 마음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심어 주어 거듭나게 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마귀는 아담에게 생명과 대신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했고, 40일간 금식하시고 주리신 예수님 에게 나타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태 4:3), "하나님의 아들이 왜 그리 굶주리고 있느냐? 먼저 육신적인 문제, 경제 문제, 현실 문체를 해결하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다

이스라엘은 민족적인 문제,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를 사모했던 터라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에 어긋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예수님을 배척하였다. 그런데 마지막 때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영적인것 대신에 육신적인 것,

영원한 것 대신에 현실적인 것, 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을 비상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며 지상에 낙원을 이루겠다고 약속할 것이다. 그때, 끝까지 예수님을 배척한 이스라엘과 거듭나지 못한 세상 모든 사람들은 기쁘게 그 적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적그리스도)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요한복음 5:43).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리라" (요한계시록 13:8)

2. 기복주의 신앙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받는 신령한 복보다는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하나님께 간구한다. 예수를 믿으면 사업이 잘 된다든지, 병이 낫고 건강하며, 자녀들이 잘되고, 기도만 하면 무엇이든지 주신다고 하는 현실적 물질적인 축복을 강조하고 가르치는 곳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축복을 사모하는 것은 우상숭배하는 이교도들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하나님도 모르고 믿지 않는데도 육신적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 하며 ‥‥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망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디모데후서 3:1∼4, 4 : 3,4)라고 하셨다. 이 세상 임금은 마귀이며, 악한 자가 세상 모든 좋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고 다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금생에서 저희 분것을 다 받은 자들이며 그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 갈 것이다(시편 17:14;욥기 21:13)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집에 나셔서 자기의 것은 십자가밖에 없었다. 이 세상은 우리 주님께서 버림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곳이다. 주님의 제자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사도 바울이 굻주리고 헐벗고 춥고 떨며 여러번 옥에 갇히고 매를 수없이 맞고 마지막에 목잘려 죽은 곳이 이 세상이다. 그런 이 땅에 무슨 욕심과 미련이 그렇게도 많은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다 완전하고 영원한 것, 거룩하고 신령한것을 주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거듭난 자녀들을 위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하늘에 간직해 두셨다(베드로전서 1:24). 주님께서는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없느니라"고 하셨는데(요한복음 3:3), 거듭난 분명한 경험을 확증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슨 육신의 복을 그렇게도 사모하는가! 이 말은 하나님께서 육신의 축복은 전혀 주시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먼저 영혼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구원을 받으면 육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의 필요에 따라 적절히 주시는 것이다(마태 6:31, 32) 어쨌든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분명히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신령하고 참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불과 몇 십년 간의 인생()이란 하나님의 영원에 비하면 없는 같으며, 세상의 즐거움과 만족이란 영원한 천국과 하나님의 영광에 비하면 너무나 천하고 보잘 없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잃는다면 무엇이 유익한가! 그러나 비록 이 세상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얻는다면 그것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 모든 사람 아니라 기독교인들까지도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적이고 육신적인 것을 더욱 귀하게 여김으로 하나님의 영적 축복을 멸시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주의자들과 기복주의 신앙을 가진 종교인들의 상태가 약 2,000년 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유대인들과 어쩌면 그렇게도 닳은 점이 많은가. 육신적인 축복을 갈망하는 나머지 영혼을 구원해 주시는 주님은 마음에 영접지 않는다. 먹으면 영생하는 생명과 대신에 먹으면 죽는 선악과가 더욱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므로, 그것을 먹음으로 죽게 하는 사단의 궤휼에 속고 있는 것이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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