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2009

거룩한 공의 – “다윗의 장막”


성경은 아모스를 통해 예언된 다윗의 장막의 회복을 주님의 통치와 왕권의 드러남에 분명하게 연결시킨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의 성공적인 첫 전도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제자들은 이방 회심자들로 인해 딜레마에 빠졌다. 제자들은 원래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위하여 약속된 축복을 이방인들도 받아들이자, 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예상치 못한 과업을 지게 되었다. 성령은 주님의 초기사역 동안 함께했던 베드로와 다른 사역자들에게 하셨던 동일한 방법으로 이방 크리스천들에게도 역사하셨다. 진리는 기적과 표적과 기사를 통해 이방인 사이에 입증되었고, 풍부한 추수를 거두었던 것이다.

많은 토론 후에 지혜의 영에 이끌림을 받은 야고보가 결국 회중에게 말했다. 그는 아모스 9장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정받고 주님을 위하여 구분된 이방 백성에게, 회복된 다윗의 장막에 대한 예언적 약속을 적용했다. 사도들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이방인과의 영적 관련성을 확증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르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함이라”(15:14-17).

초대 사도들은 성경의 전례가 적용을 다루어야 했다. 이전 세대의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은 회복을 위한 것이었다. 이 세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전례 없이 적용되고 회복되어야 할 많은 진리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적합한 성경적 적용에 대한 우리들의 유일한 기준은 성경말씀과 그것을 밝혀 주시는 성령이 될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아직 달성되지 않은 진리를 선포했다. 어느 세대도 다윗의 장막의 완전한 회복을 목격하지 못했다. 우리는 하늘의 보좌와 세상에서 주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아야 한다. 야고보의 선포는 성취되어야만 하고, 우리는 이 주목할 만한 성취를 체험할 시대를 사는 특혜를 입고 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라오디게아 시대라 불릴 만하다. 헬라어로 라오디게아는 사람들의 공의혹은 사람들의 권리를 의미한다. 불행히도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이 세상의 영은 인간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선포하지만, 하늘은 거룩한 공의와 하나님의 성경적 권리를 선포한다. 거대한 대결이 이 두 영 사이에서 진행 중이다.

공의가 단지 인간의 손에 의해서 행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마음은 대단히 악하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는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보여주시고자 소망하셨던 그 공의를 전적으로 대적했다. 하나님은 공정과 공평, 그리고 진리로 넘쳐나신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에는 진정한 공명정대함이 성령에 의해 공급될 때를 제외하고는 결여되어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정의에 있어서 완전하시지만, 이 세상의 신들은 불의의 화신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는 자들에게 상당한 용기를 준다. 성경은 정결하고 의로운 주님의 속성에 대해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주님과 결합하여 그분의 의로움을 나누는 사람은 주님의 공의의 표출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실제로 거룩한 공의는 왕국의 중요한 비밀이고, 그 공의가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인간 역사에서 목격된 바 없는 대추수에 나서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신실함에 보답하실 뿐 아니라, 주님과 그의 백성에 대항하는 불의에 대해 보응하신다.

마지막 시대에 대한 대부분의 계시적이고 두려운 묘사는 불의를 심판하는 공의의 동전의 한쪽 면과 같다. 다행히도 거룩한 공의는 양날의 칼이다. 한쪽 면은 그리스도의 신부에 의해 탐구되고 포용된다. 다른 한면은 죄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품성의 모독에 대한 혹독한 벌이다. 그러나 이러한 면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시간은 아니다. 나의 친구는 종종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에게서 도망하지 말고 그분에게 달려가라라고 말한다.

공의의 사역
의로움과 공의는 주님 보좌의 기초라서 성서는 단언한다. 이 두 가지의 속성은 하나님 나라의 근본 원리이고, 변환의 시대 동안 아주 강조 될 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공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왔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의 절대적인 적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공의는 하늘의 자원으로 무장한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의 군대를 풀어 놓을 것이다. 주님께서 자신을 공의의 심판관으로 드러내실 때 성도들에게 대한 평결이 내려질 것이다. 시대를 걸쳐 하나님의 백성에게 부여된 모든 귀중한 소명, 기름부음, 사명, 은사가 회복되고 되찾아질 것이다.

A.W. 토저는 그의 책 [하나님을 바로 알자](The Knowledge of the Holy)에서 하늘의 거룩한 공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하나님이 하실 어떤 행위를 가리켜 공의가 하나님이 이렇게 하도록 요구한다라고 말할 때가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움직이시도록 강요하는, 하나님이 없는 공의의 원리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원리는 없다.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보다 더 월등한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더 월등한 힘만이 복종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성밖에는 그분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하나님의 이유는 그의 자존하는 실재에서 비롯된다. 영원 전부터 그 무엇도 하나님의 존재에 덧붙여지지 않았으며, 그 무엇도 그분의 존재에서 제거되거나 변화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도덕적 공평의 자존하는 원리이시다. 하나님은 악한 자에게 형을 선고하시고 의로운 자에게 상을 주실 때 자신 외의 어떤 것으로도 영향을 받지 않으시면서 내면으로부터 자신에 걸맞게 행하실 뿐이다.[개인적으로 이 책을 꼭 읽어 보시기를 추전합니다]

거룩한 공의는 의로운 자에게는 복으로, 불의한 자에게는 심판으로 갚는다. 공의는 도둑맞은 것을 되찾아 주고 도둑이 잡혔을 때 피해자에게 보상하게 만든다. “도둑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하지는 아니하려니와 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주게 되리라”(6:30-31).

대부분의 모든 믿는 자들은 그들이 도둑맞은 것을 안다. 많은 사람들의 아이들과 가족이 질병과 궁핍으로 고통받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재원을 다 빼앗겨 버렸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영적 유산의 대부분이 불법적으로 빼앗겼다. 귀중한 사역의 은사들과 영적 기름부음을 마귀라는 강도의 습격으로 잃어버렸다.

수천 년간 역사는 강도의 뻔뻔한 활동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그의 악랄한 계획과 전략을 기록해 오고 있다. 원수의 뿔이 하늘의 언약백성을 대항하여 높이 들려졌다. 원수는 질병, 죽음, 경제적 재난, 부패한 정치적 문화적 권위, 유산, 마약과 알코올 중독, , 우울, 사고 등을 포함한 무기를 파괴의 계략으로 이용해 왔다. 역사의 연대기는 셀 수 없는 사악한 참소, 고문 그리고 숭고한 남녀의 순교로 가득 차 있다.

일련의 주석과 저널들은 종교적 광신자들의 손에 자신을 살육하도록 희생적으로 내어 놓은 용감하고 신실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부당하게 고문을 당했고, 종교의 이름으로 처형을 당했다. 그들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순교자들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만물을 꿰뚫어 보시는 눈 아래서 일어났다. 하나님은 적들이 망쳐 놓은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분명히 이러한 성도들은 영원한 순교자의 상급을 받는다. 그들은 또한 영적인 씨앗을 뿌렸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이전에 증거된 바 없는 가장 현저한 은혜의 보증을 주실 것이다.   
<폴 키스 데이비스 계시의 비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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