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2010

영성생활(Spiritual Life)


기독교의 “영성생활”이란 “성령 충만함으로 성령님의 인도와 지도를 받는 삶”을 말한다.  영에 관하여는 하나님의 영, 인간의 영, 천사의 영과 타락한 천사들(사탄과 사탄이 부리는 귀신들)의 영이 있다. 우리는 ‘영성생활’리 라는 말을 할 때, 기독교의 영성생활이 타종교의 영성생활과는 그 정체성이 다름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의 영성생활에서 사용되는 ‘영성’의 어근은 창세기 1:2절에서 시작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신(하나님의 성령= the Spirit of God)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과 함께 창조사역에 동참하셨다. 그리고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성경을 기록하도록 감동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과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게 하셨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성령의 감동과 능력으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생애, 즉 출생부터 십자가의 죽음까지가 영성생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은 성령으로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었으며, 성령충만과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공생애 기간동안 신비적인 삶과 성부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신 수덕적인 삶을 사셨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류의 구속(구원) 사역을 이루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는 것이라”(요한 14:10). 이 때 예수님 안에 계신 아버지는 아버지의 성령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교훈의 말씀과 명령과 모범을 따라 살아야 한다. 사도들과 성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헌신했던 모든 삶이 영성생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옛 믿음의 선진들은 예수님의 영성생활을 본받아 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들은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하여 수도원을 만들기도 하고 기도의 삶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윤리적(행위, 수덕적)인 면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인본주의적인 도덕률(옛 바리새인들의 위선과 유사함)에 빠지고, 성령의 은사적인 면에 심취하다 보면 신비주의자 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이 두 가지 면이 하나로 이루어지는 삶이 경건한 삶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믿음의 선진들이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하여 수덕적인 생활이나 신비적인 생활을 강조해 왔던 것을 존중하면서 우리는 이제 이 모든 다양한 용어를 ‘영성생활’이란 말로 함축하여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고, 성전, 제사장, 신부, 왕 들의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야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복종해야 할 의무사항이 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 5:48).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에베소서 4:13).  이러한 일은 “내주내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와 지도를 통해서 되어지는 것이다(요한 14:16-17, 23). 성령의 내적충만으로 아홉 가지 열매(갈라디아서 5:22-23)를 맺는 영혼과 영성,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하여 육체(몸)에 입혀지는 은사적인 영성이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로 나타나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영성생활”이란 성령의 충만과 인도와 지도를 받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여 주신 일을 이루어 드리는데 생명을 다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을 성령의 권능과 인도로 실행하는 것이다. 즉 전도와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어 드리는 삶이다(마태 28:18-28; 행전 1:8 등…).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는 거룩한 삶과 고난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든 성화의 삶이 곧 영성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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