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의 급속한 성장은 주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능력이 남보다 탁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성장 과정을 엄청나게 가속화시켜준 또 다른 측면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기름부음을 그들에게 전이시켜 주셨기(impartation) 때문이었다. 예수님에게 온전한 기름부으심이 임하기까지는 30년이 걸렸던 반면, 사도들의 경우 그들이 오순절을 정점으로 하여 주님과 거의 동일한 기름부으심을 성령을 통하여 받기까지 겨우 3년 반이 걸렸을 뿐이었다! 3년 반의 기간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그들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하셨던 일을 할 수 있는 권세를 그들에게 부어 주셨다. 예수님의 목표는 그분의 사역이 “능력의 전이(impartation)”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하던 일도 할 것이요”(요14 :12)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바로 이 능력의 전이(impartation)”의 영향은 성령을 통하여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제자들은 더 큰 일도 할 수가 있을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서 가셨기 때문이다(요14:12).
오순절 날에 우리는 주로 제자들이 방언을 말한 것에 초점을 둔다. 그러나 실제 나타났던 것은 훨씬 더 심오한 것이었다.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도적 리더십과 그분 자신의 굽힐 줄 모르는 성품의 능력을 부어 주셨던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영적인 표적과 기사를 주셔서 그들의 권위를 확증해 주셨다. 제자들이 이적을 행했을 때 그들이 자동적으로 군중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가리키도록 하며,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전3:12) 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성령을 통하여 자신들에게 전이되어졌음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16:14). 그리스도의 삶과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기름부으심의 전이 (impartation)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심을 받았다고 하는 증거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할 수 있는 권능이, 적어도 어떤 측정 가능한 방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섬길 때 그리스도의 기름부으심이 당신을 통하여 독특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또는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거나, 혹은 당신의 기도의 삶 가운데에서 먼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기름부으심이 병든 사람들을 향한 열정이나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에 대한 염려 속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그것은 여러 자기 다른 방법으로 올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목적을 정의해 주고 또한 그 목적의식을 강화시켜 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 속에 임한 그리스도의 기름부으심이다.
우리가 교사로, 목사로, 혹은 부흥사로 섬기든지, 아니면 우리의 부르심이 학생이거나 가장 주부 혹은 시장(marketplace) 사역자(세속적인 직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든지, “우리가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요1:16-표준새번역)
구약의 뿌리 – 이러한 능력의 전이(impartation) 개념은 신약성경에서 처음 소개되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었다. 구약성경에서도 기름부음이 전이(transference)되는 생생한 사례들을 또한 볼 수가 있다. 능력의 전이(impartation)가 역사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급격한 영적 성장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이것을 생각해 보라. 엘리야는 구약시대 가장 강력한 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제자 엘리사는 농부였다.
이 두 사람의 처지는 더할 나위 없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계 단계마다 엘리사가 이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를 따라다니는 것을 선지자의 생도들이 지켜보았다. 엘리사의 목표는 그저 단순히 엘리야로부터 정확한 지식이나 가르침을 얻는데 있기 않았다. 그는 이 하나님의 사람에 임한 “영감의 갑절”을 구하였던 것이다(왕하2:9). 그는 엘리야에 임한 기름부으심을 강렬하게 열망하였다.
엘리야의 삶에 임한 기름부으심은 그가 걸치고 있던 겉옷으로 상징되었다. 이 겉옷은 주님께서 호렙산 근처에 임하셨을 때 엘리야가 그의 얼굴을 가리는데 사용했던 것이었다. 엘리야가 처음 엘리사에게 갔을 때 그는 “그의 겉옷을 엘리사에게 던졌다”(왕상19:19).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장 좋은 것을 받도록 엘리사를 부른 것이었다. 엘리야는 사실상 엘리사에게 이렇기 말하고 있었다. “만일 네가 나를 따를 수만 있다면 너는 나의 후계자가 될 뿐만 아니라 나는 너에게 나의 기름부으심을 전이시켜(impartation) 줄 것이다.” 그 순간부터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다니게 되었다.
이 땅에서의 엘리야의 사역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는 엘리사와 함께 요단강에 이르렀다. 그리고 멀리서 건지자의 생도들이 주의 깊게 이 두 사람을 살피고 있었다. 엘리야가 겉옷을 들어 요단강을 치자 물이 갈라져 두 사람이 마른 땅을 건너갔다. 그들이 내화를 나누며 가고 있는 동안 갑자기 주님께 회오리바람을 통해 엘리야를 하늘로 데리고 가셨다. 바람에 날려 올라갔기 때문에 엘리야는 쥐고 있던 겉옷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엘리사가 그 겉옷을 취하여 요단 강 둑에 다시 섰다. 그리고 엘리야가 하던 그대로 그도 또한 겉옷으로 강물을 치며 외쳤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왕하2;14). 순간 요단 강물이 갈라졌고 엘리사는 마른 땅을 건너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성경은 계속 말하고 있다. “맞은 편 여리고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15절).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야의 영감(기름부으심 혹은 영)이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했던 일을 그대로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성장을 가속화시켜주는 것을 돕는 필수적인 계시이다.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영적인 능력이 성령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삶에 전이(impart) 될 수 있는 것이다(마10:41).
물론 우리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능력을 전이(impartation)받으려고 하기 전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성품과 본성을 그 개인의 삶 속에서 볼 수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만 한다.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것에 너무 겁먹거나 소심해지지 말도록 하라. 눈에 볼 수 있는 열매를 찾으라. 우리는 그저 능력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우리의 초점이 올바르다면, 능력의 전이(impartation)를 통하여 우리는 마지막 때 우리의 사역이 놀랍도록 가속화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전 House of the Lord – 마지막 때에 나타날 모든 놀라운 실상들 가운데, 우리는 또한 주님의 전이 정결하게 그리고 하나로 회복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스도의 기초가 지금 회복되고 있다. 그 결과로 우리는 다시 그리스도의 기름부으심이 교회에 충만하게 되는 것을 볼 것이다(사2:2; 행전3:21; 엡4:11).
성령께서 나에게 주님의 전을 다시 세우라고 부어주신 기름부으심은 살아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이 기름부으심 또한 다른 사람에게 전이될 수 있는 것이다. 내 남은 사역 기간 동안 이 기름부으심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이되는 것을 보는 것이 나의 간절한 열망이다.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학교를 통해 그리고 인터넷 TV 장비들을 통해, 또한 수많은 집회와 인쇄물을 통해 나는 이 기름부으심이 되도록이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가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되돌아옴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그리고 도시 공동체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분의 전(House)이 회복되었을 때,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라기3:1). 하나님의 홀연히 임하시는 역사가 바로 교회를 통하여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 아니었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모하던 것 아닌가? 우리가 아픈 사람에게 손을 얹을 때 모두가 고침을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들이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전에 구급차가 교회 앞에서 멈추어 설 그날이 올 것을 나는 믿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시 가운데 임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노력과 함께 역사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 때 제자들을 복음의 불모지로 보내셨던 것처럼 오늘날 능력있는 선교사팀을 일으켜 세우셔서 그들을 이슬람 세계 속으로 보내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들은 담대히 나아가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릴 것이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전이 다시 세워질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력과 함께 역사하기 시작할 것이다.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라: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이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말3:5)
우리의 초점을 흐리게 만드는 것들을 모두 제거하자. 그리고 하나님의 전을 세우는 기름부으심을 사모하자. 성령님은 계속해서 나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테러 협박이나 경제공황과 같은 너의 주변에 있는 두려운 것들에 초점을 맞추지 말아라. 너희 변화(transformation)에 확고한 초점을 맞추도록 해라! 또 다시 그분이 말씀하신다.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기도: 주님, 어서 임하시옵소서. 어서 빨리 오셔서 내 영혼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주님, 나의 주변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봅니다. 내가 그들에게 주님의 능력과 은혜를 알게 하기 원합니다. 바울과 같이 나도 주님의 성령과 능력을 나타내기를 갈망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믿음이 단지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위에 있음을 알게 하소서. 내 삶 속에서 주님의 위대한 일을 속히 그리고 철저히 행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지금은 싸워야 할 때/프랜시스 프랜지팬/순전한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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