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 “
오늘의 제목을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영적예배" 라고 정했어요. 우리가 영적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쓰는, 영적 예배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있어요?
뜨거움! 뜨거움 좋으네... 형식에 얽메이지 않는, 형식을 뛰어넘는, 무형식?
뭐가 있을까? 저는 방언, 주여 삼창, 예언, 신유, 이런 분위기들 .영적예배..같은..하여간 뜨거움이 대표적인 언어 같은데요. 하나님이 영적예배를 원하시거든요 영적 예배를 원하시는데 로마서 12장에 보시면 (방언, 주여 삼창, 예언, 신유)이게 없어요.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에요. 방언 하나님이 주신 거 잖아요..이거 다 하나님이 주신 건데 이걸로 예배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영적예배니라. 이 분위기가 아니에요.
로마서 12장을 공부할 때 하나님이 얘기하시는 영적예배는 우리가 얘기하는 것과 조금 다르네..그걸 공부하려고 하는 거예요.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에요. (방언, 주여 삼창, 예언, 신유)이거는 영적예배가 아니다 그게 아니에요. 근데 얘기하자면 이것만 영적예배가 아니다 라는 거예요. 우리는 다분히 이원론적인 사고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영, 육 전혀 딴 거라고. 하나님께서는 육속에 영이 있고 영속에 육이 있고 그래서 영적인 예배라고 해서 꼭 육적인 것. 이런 것들을 다 배제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고, 사실 12장에 살펴보면 하나님이 되려 생각하지 못하는 반대쪽의 것을 영적인 예배라고 하는 것이구나. 그것은 육적인거 아녜요 하나님? 그렇게 얘기하고 싶은데 그걸 영적인 예배라고 얘기하신단 말이죠..오늘 여기 보면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하는걸 보면 앞에 영적예배에 대한 설명이 있다는 거죠. 뭔가 하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로마서12:1)’
영적예배다. 정의가 그렇다는 거죠.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뭡니까? 2절에 나온다는 것이죠..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12:2)’
이게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라. 분별만 하면 될까? 분별했으면 그대로 살아라. 라는 것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다음부터 3절부터 쭉 나오는 것들이 뭔가 하면 이런 것들이에요.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로마서12:7)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로마서12:8)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로마서12:13)
분별해서 해야 할 일을 예를 들어 한 거예요. 이것이 무슨 틀이냐면,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이냐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실제로 사는 삶. 행동, 행함이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예배라는 것이에요. 구체적으로 사는 거..세상에서는 어떻게 사니. 그게 예배라는 거예요. 우리는 꼭 예배라는 것은 예배당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도리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어떻게 사느냐 그게 예배야 삶이 예배야, 그게 굉장히 중요한거잖아요. 삶이 예배라는 것 우리 다 알거든요. 근데 이게 충격이에요. 그게 영적인거야.
우리는 회사에서 일하고 동네에서 일하는 것이 영적이 아니라고 생각하자나요. 영적이라는 것은 딱 분위기가 잡혀야하고 기도원에 가야하고 뜨거워야 되고 방언해야 하고 전혀 세상에선 방언할 필요 없자나요. 알아듣지 못하니까..그것만 영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그게 아니고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는 것. 예를 들어서.잘 섬기는 것. 섬김을 받고 싶지만 하나님의 뜻은 섬기는 거야. 열심히 섬겨야지. 그게 뭔가 하면 영적 예배라는 거예요.
세상에는 세상식이 있어요. 하나님 나라에는 하나님의 식과 법이 있어요. 이게 충돌하는 거예요. 세상은 세상식으로 가라고 해요. 하나님은 하나님 식으로 가라고 해요. 우리는 보통 어디로 가요? 우리는 보통 세상의 식과 법으로 가요. 그런 사람들 있어요. 목사님 말씀은 옳은데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세상은 세상으로 가라고 하거든. 이리로 가면 될 것 같거든. 이게 좀 넓은 문이니까. 잘되는 거 같으니까.
이건 좁은 길이니까 힘들지. 그러니까 말씀은 맞는데요! 세상 너무나 모르셔요. 그 말은 뭐에요? 교인들이 그 분은 용기가 있으니까 나한테 말 한거고 대부분은 말 안 해. 그렇게 하면 “믿음 없다” 소리 듣고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 아무런 가책 없이 아멘 계속 그래놓고 세상에 나가면 그냥 가는 거야. 그게 전혀 가책이 없어요. 그게 그냥 그렇게 사는 건줄 알고. 영적인 예배는 교회에서만 이루어지는 건 줄 알고 영적인 일이라던가 예배는 교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고 세상은 세상 나름대로 사는 식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은 어디서 예배를 받고 싶어 하시는가 하면 예배당만이 아니라 정말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건 세상에서 드리는 것이라는 거예요. 사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식에 아멘 하는 거 쉬워요 어려워요? 쉽죠! 정말 어려운 게 어디서 하나님의 식대로 사는 게 어려워요? 세상이요~~~ 이건 무엇을 각오해야 하죠? 죽음을 각오해야 해요. 망할 걸 각오해야 하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그래서 제물이라고 하신 것 같아요. 산 제물. 드려라! 산 제물이 뭔가 하면 다 세상 식으로 가는데 하나님 식으로 가는 것. 죽음을 각오하고. 아! 죽어야 제물이지. 그리고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이거야 하고 가는 거야 섬겨!
-----------------------------------------------------
모든 식이 거기로 간다면 지난주 우리가 공부한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복 받아서 공부도 잘하고, 성공하고, 부자도 되고, 출세해가지고 차별을 없애 가면 그게 예배잖아. 세상 예배가 아니고 영적 예배잖아. 그렇게 살라는 거야. 하나님의 뜻이 무언인가를 분별하라는 거야. 우리는 다 이렇게 살아요. 그런데 그렇게 살면서도 가책이 없는 게 뭔 줄 아세요? 잘못된 로마서 공부 때문에 가책없이 그렇게 살아. 이게 먼말인가 싶죠. 로마서에 가장 중요한 게 뭐에요 구원을 얻는 것은 율법이야 행함이야 믿음이야! “믿음”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거니까. 세상 식으로 가도 괜찮잖아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잖아 우리가 하나님의 법과 식대로 행함을 얻어 구원을 받느냐. 세상 식대로 간다고 멸망 받느냐 주여! 하면 되지 뭐 우리 믿잖아! 교회 다니잖아!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얻는 거 아니야~ 세상에선 그냥 이렇게 가면 되는 거고, 이렇게 합리화를 하는 거야.
이신득의에 대한 잘못된 은혜주의, 천박한 은혜주의, 너무 율법주의도 잘못됐지만 은혜주의도 잘못된 거야. 주의! 자 들어가고 잘된 게 없는 것 같아요 . 지나친 거잖아 율법을 행해야만 구원을 얻어 믿음으로 구원 얻어. 행함은 괜찮아, 그러니까 여기에 가책이 없어요.
한국 교회에서 로마서 되게 강조해.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을 모르는 교회 없거든. 근데 이게 설익었어. 뜸이 안 들었어. 율법으로 구원 얻는 거 아닌 거 맞지 뭐. 믿음으로 구원 얻는 거 맞는데 그렇다고 이게 세상 식을 합리화하면 안 되잖아 우리가 또 다 그래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태복음26:41)
그런데 이게 적용이 잘못된 거라고. 예를 들면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베드로에게 얘기한거잖아요. 예수님이그러니까 모두 은혜스러워.
----------------------------
예를들어 예수님이 고난 당하는 게 안 아팠어 근데 베드로에게 딸이 있었는데 딸이 아파서 죽게 되었는데 마음에 원이 있는데 육신이 약해서 잠을 잤을까? 말이 안 되는 거야.. 사실은 마음의 원이 없어서 잔거야. 마음의 원이 있으면 사람도 못자. 정말 예수님 사랑하면 못자. 지금 예수님 죽게 생겼는데..... 그래서 덮어준거야. 그러니까 하나님이지......감싸주니까 베드로 얼마나 더 미안하고...... 그것도 모르고...... 하여간 어쨌든 핑계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죽으면 죽이리라 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라는 것이에요. 이걸 이제 정리하면 믿음이 없는 행함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게 로마서에서 얘기하는 믿음이 없는 행함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러면 반대로 얘기하면 어떨까요.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닌 거 같아요.. 왜 아닐까요?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왜 구원을 못 얻을까요? 행함으로 구원 얻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했는데. (믿음이 있으면 행동을 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 바로 그 얘기인데, 그게 뭔가하면 행함이 없다는 뜻은 뭔가하면 믿음이 없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말은 그렇게 ‘행함이 없는 믿음’이 말은 됐지만 고로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라는 거예요. 믿으면 행해야 되지 않느냐는 거예요. 하나님으로부터 약도를 받았어. “이리로 가야돼. 너 조금 가는 길이 좁아 보이고 힘들어 보여도 이게 생명으로 가는 길이야~” “예~~~”하고 딴 길로 가는 거야. 그러면서도 “제가 행함은 좀 잘못됐지만 믿기는 믿었는데요.” 이게 말이 되냐고요. 그런데 또 조심해야 될 것이 이게 사람의 논리와 말로는요 완벽한 진리를 충분히 다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면 행함이 곧 다 믿음이냐? 또 그것도 아니라고요. 그러면 믿으면 다 행하냐? 그렇지 않잖아요. 또 엇나갈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는데 하나님은 그걸 아세요.
우리가 믿는다고 다 완전하진 못하잖아요. 실수를 하지만 ‘저놈은 날 믿긴 믿지만 부족해서 넘어졌어.’ 그 한계가 있는거고 ‘전혀 믿음이 없어.’ 그건 하나님이 판단하실 일이지만 우리가 겁내야 할 것이 뭔가 하면 행함이 없다는 것은 밤 낮 세상식으로 간다는 것은 결국 우린 믿음이 없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의 법과 식으로 가다가 실수해서 자빠지는 경우는 있을 수 있지 그것 때문에 우리가 멸망 받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한테 매 맞지. 징계는 있어요. 믿음이 있는데 행함이 잘못됐어. 그러면 하나님이 때리셔서 바로잡아. 근데 그게 심판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밤낮 세상으로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것만 써먹으면서. 그렇게 하면 그게 하나님이 어느 순간에 ‘너는 믿음이 없는거야.’라고 판단하시면 게임 끝나는거야. 그래서 늘 조심해야 돼요.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잖아요. 야고보서의 가르침이 이것이잖아요.
사람들은 로마서와 야고보서가 서로 반대되는 것 같지만 아니에요. 그건 똑같은 거예요. 하나님 한 번도 딴 얘기 하신 적이 없어요. 로마서에서 얘기한 믿음이 바로 그 믿음이라고. 행함이 있는 믿음. 믿으면 행해야지. 행한 게 믿음이 아니라 믿으니까 행해야 되지 않느냐. 행함이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야.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여기서 잘 보세요. 로마서 12장 1절이 무슨 말로 시작해요?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해요. 이거 굉장히 중요해요, 여러분. “그러므로” 이거는 접속사잖아요. 무언가를 잘 설명하셨어요. ‘고로’ 정리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래야 돼.” “그러므로 ” A는 B이고’ 이렇게 나가는 거잖아요. 12장에 느닷없이 “그러므로”가 나와요. 그런데 로마서는 이렇게 구분을 해요. 1장부터 11장까지는 무엇을 얘기하는 건가 하면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율법을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라는 이신득의를 강조해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설명해요. 그리고 12장은 이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고 그 다음부터는 뭐에 대한 얘기가 쫙~ 나오는가 하면 오늘 얘기하는 ‘영적 예배가 무엇이냐?’ 행함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로마서에 제가 첫 시간에 얘기했잖아요. 제가 바울을 좋아하고 로마서를 좋아하는 것은 균형이라고요. 발란스가 잘 맞는 거예요...11장까지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을 쫙~ 설명해요. 율법주의의 그릇된 선민의식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그거 다 아니야! 믿음으로 구원 얻는 거야. 율법 행함으로 얻는 것 아니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또 엉뚱한 데로 튀거든요. 근데 “그러므로 너희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렇게 살아야 돼. 그게 너희들이 드리는 영적 예배야. 그거(행함) 없으면 믿음 없는 거야.” 이게 로마서의 구조란 말이죠. 그러면 로마서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나 행함이 중요한가?’라고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세상을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식대로, 하나님의 법대로 살기를 원하셔요. 그렇게 살면 성공할까요? 승리할까요? 살까요? 살기는 사는데 그 말이 정답인데. 살기는 사는데 만만치 않지요. 실제로 그러다가 살다가 죽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사람도 있나요, 없나요? 있지요. 바로 순교자에요. 순교자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하나님의 식대로 살다가 망한 사람이에요. 다시 회복할 길이 없어요, 이 세상에서는. 이러면 참 목사 노릇하기 힘들어져요. 그래도 힘든 건 아는데 반전이 있어야 설교를 할 수 있잖아요. 욥은 정말 설교하기 좋은 사람이에요. ‘너 그런 고난이 있지만 하나님이 갑절로 갚아주셨어.’ 바울 순교 했어요. 수많은 사도들 순교했어요. 그렇게 충성된 사람들이 이 땅에서 비참하게 죽었어요.
이 세상만이라면 실패죠, 뭐. 그런데 우리는 뭘 봐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니까 그게 해석이 되요. 근데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식과 법을 고집하다보면 죽을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 그런데 사실은 그건 아주 일부분이에요. 특별한 케이스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말 반전이 있어요. 근사한 반전이 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사실은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니까 순교자까지도 다 받아들여져요. ‘아, 그랬으니까 하나님 나라에서 얼마나 상이 클까?’ 그 생각하니까 우리는 못 살지만 부러워하고 그렇잖아요. 여러분, 그러면 세상에서는 밤낮 세상식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식대로 생각하면 백전백패일까? 아니라는 거예요. 사실은 세상에서도 어느 식을 택해야 세상적으로도 잘 살고 성공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식이에요. 그게 좁은 길로 가는 거 갔다가 넓은 길로 가는 거거든요. 제가 시편 얘기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었죠?
‘악인의 꾀를 쫒는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시편1:1-5)
그런 표현을 썼고요. 또 시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악인은 풀과 같이 자라고(시편92:7)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시편 92:12)
이거 하나님 아니셨으면 못 쓰셨죠. 모든 것들이 너무 기가 막혀요. 풀과 나무를 심었어요. 어느 것이 빨리 자라요? 나무는 ‘이게 살았냐, 죽었냐?’ 답답해요. 그런데 한 해가 지나면 이거(풀)는 컸다가 자빠져요. 시들어져. 얘(나무)는 그냥 자라요. 그래서 비교가 안돼요. 그러니까 조금 멀리 봐야 되요. 당장 보면 풀이 더 잘되는 것 같아. 그래서 성경이 뭐라고 하냐면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세상에 부러워 할 것이 따로 있지, 종려나무의 번성함을 부러워해야하지 풀의 번성함을 형통함을 부러워하냐. 너 풀될래?” 그 말씀이거든요. “바짝 자라는 거 같지만 소밥밖에 더 되냐?” 되는가 싶다가 자빠지고, 되는가 싶다가 자빠지고. 얘(종려나무)는 죽은 것 같은데 또 크는 거거든요. 이게 하나님의 식이에요.
그런데 아주 순교할 수도 있고, 과정상 잠시 고난당할 수 있는데 이걸 하나님이 뭘로 받으신다고 하셨냐면 이건(순교) 쉽게 말하면 죽은 재물이죠, 완전히 진짜 죽었으니까. 이건 죽으려고 했는데 안 죽었어요. 죽으려 하다가 살아서 더 복 받았어요. 그런데 이것도 하나님은 재물이라는 거예요. 산 제물인가봐요. 산제물인데 제물이 있어야 돼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에 제물이 있어야 되는데 예배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는가? 여러분, 영적 예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제물이에요. 제물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영적 예배는 세상에서 드리느냐, 뭐하냐 그게 아니에요. 내가 내 삶을 제물로 드리는 것, 내 욕심을 버리는 것, 그걸 버리고, 나를 꺾고, 순종하는 것이 제물인데, 그 제물이 있으면 그게 영적예배 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제물이라는 말을 쓰신 것은 그만큼 그게 힘들다는 거예요
------------------------중략---------------------------
그러니까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하고, 그것도 영적예배가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우리의 삶이 제물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손해 보는 게 좀 있어야지, 하나님 때문에 고생해야 하는 게 좀 있어야지, 그게 예배잖아요.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자꾸 받는 것만 생각하지, 병도 나아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형통도 해야 되고. 다 그래야 되지만 하나님 너무 사랑하니까 나 좀 드리고 싶어요. 이게 우리 너무 부족하잖아요.
학교 다닐 때 보니까 친구들이 전도하니까 하나님 보여주면 믿지. 하나님 어떻게 보여줘. 보여줄 수는 없는데 나는 보이더라고. 그런데 나는 보는데 걔네들한테는 보여줄 수가 없는 거야. 그러면 내가 하나님 봤다는 거 뭐 하나님 얼굴을 봤나. 악수를 했나. 그건 나도 아니거든. 못 본 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내가 볼 땐 세상을 보니까 하나님 보이던데.
여러분, 보세요. 수석과 조각 둘 다 훌륭하고 예쁜데, 여러분, 어느 것이 수석인지, 어느 것이 조각인지는 알지요? 그거 구별 못하는 사람도 있을까? 없을걸요. 보면 아무리 훌륭해도 ‘이건 우연히 됐는데 신기하다. 꼭 조각 같애.’ 조각이 아니라는 소리잖아요. 그런데 조각을 보면 알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보면, 우주 만물을 보면, 이게 수석 같아 보여요, 조각 같아 보여요.? 이게 우연히 생겨날 수 없는 거잖아요.
어제도 텔레비전 잠깐 보니까 우주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새삼 깜짝 놀랐어요. 얼마나 큰 세계인가? 어느 별에서 온 게 250억 광년에서 온 빛이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반짝거리는 걸 보는 게 그게 언제 왔는가 하면 250억 광년, 250년이 아니라, 20억 년이 아니라. 250년만 해도 엄청난데 거기다 광년하면, 거기다가 억이 붙으면 이게 개념이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다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잖아요,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과학이 우연히 생기나, 있으니까 과학이라는 논리가 성립된 것이지. 그걸 보고 ‘이건 수석이야.’ 미쳤냐? 이게 어떻게 수석이냐? 우연히 생기다보니까 이렇게 됐대. 다른 건 다 관둬. 생명이 얼마나 신비해요. 계속 딸 얘기 오늘 많이 했는데, 얼마나 신기해,
자기 애 낳아놓고 하나님 없다고 하는 것은 돌대가리다. 돌대가리가 아니에요, 그건 뭐 씌운거야. 영적으로 뭐가 씌우기 전에는 그럴 수가 없어요. 뭘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거 척보면 알지 뭘 그까짓 걸 생각해. 척 보면 알지, 그거 모르면 뭐 잘못된 거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게 보이고, 뭐가 보이는가 하면 전능하시다는 게 보이는 거예요. 여러분, 크기로 하면 몇 백 억 광년, 이 사이즈인데 그만큼 또 미세한 데로 들어가면 이게 또 기가 막혀요. 그만한 세계가 또 있거든요. 마이크로, 나노 이런 것들 들어가면 엄청난 세계가 또 있잖아요. 그런걸 보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다는 걸 알 수 있어. 그 다음 뭘 알 수 있는지 아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 모든 것의 중심과 목적이 인간이에요. 다 너 때문에 만들었어. 다 너 주려고 만들었어. 하나님의 창조를 보면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런데 여러분, 그러니까 그건 뭔가 하면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서 8장 우리가 공부했는데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런 것들이 나오잖아요. 이 모든 것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게 우리의 믿음이에요.
예수는 구원을 의미해요. 모든 것의 구원을 의미해요. 세상을 보면 사람들은 망해가는 것을 보고 있지만, 아니요. 세상은 다 회복되는 것으로 가고 있어요. 내가 그래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하나님의 메커니즘은 회복이에요. 제가 축구하다가 여기(오른쪽 새끼손가락) 부러졌었거든요. 거기 부러진 줄 모르고 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병원을 안 갔어요. 낫더라고요. 근데 이게 조금 삐뚤게 붙었어요. 잘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삐뚤게 붙어있어요. 근데 붙었어요. 이게 하나님의 메카니즘이예요. 우리는 부러뜨려, 실수해서. 하나님은 쫓아다니면서 붙이셔요. 여기(오른손 손바닥)는 제가 중학교 때 스케이트 타다가 찢어졌어요. 꿰맸어요. 우리는 찢어, 하나님은 붙이셔요. 내가 그랬어요.
의사들 하나님 때문에 돈 벌면서 고마워할 줄 모른다고. 의사는 꿰맨 거밖에 없어요. 꿰맸다고 붙나, 붙으니까 붙은 거지. 이거(오른쪽 새끼손가락) 바로 했다고 붙나, 하나님이 붙이게 만들었으니까 붙지. 모든 게 다 그래. 죽고 싶었던 때도 있었어요, 정신적으로. 그런데 그것도 다 회복이 되어서 옛날 얘기 하잖아요. “아, 그때 힘들었어.” 뭔가 회복되었다는 뜻이잖아요. 그게 우연히, 사람들은 그래요 “세월이 약이야.” 뭘 그래요. 세월이 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이지. 그게 세월이 약이기 때문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구원하려고. 그러려고 인간이 되시질 않나, 십자가를 지시지 않나, 예수님은 구원을 의미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해.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지? 마더 테레사 수녀에게 그렇게 물었다고 해요. “하나님이 그러신다는데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듭니까? 축복이라는데, 구원이라는데, 왜 이렇게 힘듭니까?” 그랬더니 파이프 라인이 잘못되어서 그렇다고. 수도 파이프 라인. 이게 끼이고, 막히고 그러면 잘 안 나오잖아요. 쫄쫄쫄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문제는 우리한테 있으니까 회개하라고.
사랑이라고 하는 게 여러분 이거 보세요. 하나님이 우릴 사랑하는 게 틀림없어요. 그런데 사랑을 통한 능력은 무엇으로만 받을 수 있는가 하면 사랑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어요. 짝사랑은 사랑이 아니잖아요. 하나님만 사랑하셔도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이게 엇나가잖아, 연결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왜 이걸 못 받는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문제는 거기 있어요. 그런데 정말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에요.
난 우리 손녀가 더 사랑스러워요. 이게 늘 고민이야.. 노력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 손녀보다 더 뒤쳐져요. 나는 온 생각이 우리 손녀딸에게 가 있어요, 지금 현재는. 그리고 거의 매일 전화해요. 오늘 아침에도 전화 했어요. 이놈이 요즘 뭘 터득했나? 구하면 주신다. 거기다 애교부리면 더 주신다. 오늘 “할아버지, 알러뷰.” 죽어요, 죽어. 구하면 주신다. 그렇게 하면 내가 귀찮아할까요? 행복해요. 옆집 아이가 한국에서 뭘 보내줬대요. 그거 때문에 부러워했대요. 당장 보냈어요, 특급우편으로. 장갑 사달라는데 장갑보다 우편료 더 들여가지고 그 다음 다음 날에 보냈어요. 아이가 까무라쳐요. 그거 생각하면 행복해요.
내가 보면서 알아요. 하나님도 나와 똑같으실거다. 그래서 구하면 주신다, 찾아라. 이게 하나님의 재미시잖아요.
온 목적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요. 그런데 내가 하나님에 대하여 그러냐 이 말이에요. 하나님이 내 삶의 목적이냐? 내가 내 삶의 목적이고, 하나님은 알라딘 램프에 나오는 울퉁불퉁 근육맨이냐? 그랬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적이 아니에요. 바꿔야 돼요. 성공하는 게 목적이 아니고요, 부자되는 게 목적이 아니고요, 출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요, 우리의 목적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게 우리의 신앙이에요. 하나님이 목적이 되어야지. 그게 사랑이잖아요. 하나님이 우릴 사랑해서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잖아요. 우리가 하나님 사랑해서 우리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러면 이게 연결이 되잖아요. 그러면 아까 그 얘기한 전능하신 구원, 능력, 치유, 회복 그거 다 우리 거예요. 탁 틀면 콸콸 나올 거 아니에요. 수압이 너무 세서 조금 잠궈야 돼.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아이고, 넘쳐요, 하나님. 조금씩 조금씩.” “우리는 다 틀었는데 안 나와요.” 그리고 하나님 탓해요. “왜 쟤는 콸콸, 나는 쫄쫄이에요.” 그게 왜 하나님 탓이야, 우리 탓이지. 우리의 목적이 빗나갔잖아요. 그러니까 이게(파이프 라인) 안 맞잖아요. 그걸 맞춰야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목적으로 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고, 그리고 서로 관통해야 하잖아요. 산에 터널을 뚫을 때 이쪽에서 뚫고 들어오고, 반대쪽에서 뚫고 들어오잖아요.
정확히 딱 맞잖아요. 뻥 뚫리잖아요. 이쪽으로 왔는데, 저쪽으로 가면 못 만나잖아요. 그래서 그게 예배에요. 예배는 삶이 예배가 되어야 되는데 예배는 하나님이 목적이 되어야 해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누구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게 예배에요. 그게 예배에요. 그렇게 하면 예배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큰 거예요. 여러분, 그거 다 받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1절과 2절 다시 읽으면 오늘 공부한 거 다시 정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