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2010

몸을 통해 배우자

너희 몸을 드리라 우리 육체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육체 자체를 악하게 여기면서 무시라고, 제쳐놓고, 참아내야 할 무엇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육체를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육신을 우리가 거하는 장막 이상의 의미로 만드셨다. 육체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며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변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이다. 로마서121-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절을 대부분 해외로 새로운 선교사들을 파송하거나 혹은 자기를 부인해야 할 어떤 다른 사역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사용한다. 양로원이나 구호대에 자원하거나 혹은 몸을 드려 어디를 가거나 모슨 일을 하려 할 때 그들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리도록 사람들을 격려한다. 또 종종 예배 때 우리가 손을 올리거나 춤을 추거나 무릎을 꿇거나 누워있을 때 이것이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라 가르치는 사람들을 본다. 이 모든 적용이 다 참되고 올바르다. 하지만 이 구절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는 데 있어서의 우리 몸의 역할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라 제안하고 싶다. 이 사실을 다윗 왕의 생애를 통해 좀 더 살펴보자.

다윗은 인류 역사상 어느 누구보다도 더 하나님의 이재와 영광에 가장 친숙했던 인물이다. 다윗은 30, 40년 동안 언약궤 위에 머물렀던 하나님의 실제적이며 겉으로 드러난 임재를 마음껏 누렸다. 하나님의 영광은 언약궤로부터 빛을 발했다.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말할 수 없을 만큼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보여준다. Rm 결과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63:1) 그가 지금 완전히 상징적으로만 날하고 있는 것일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체험하면서 그의 육체가 그 이상을 바라며 아파하고 부르짖는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다윗에게 이러했다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먹을 것에 주리고 마실 것에 목마른 것처럼 비단 우리의 감정과 지각, 또 영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 역시 하나님을 향해 아파할 수 있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하나님을 갈망할 수 있다면 육체적으로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할 수 있다. 채워질 가능성이 없는 갈망이란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 어떤 것에 대한 식욕이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체 속에 주님을 인식하고 주님의 활동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집어넣으셨다.

훈련된 감각들 - 한 결음 더 나아가 히브리서514절은 성숙의 지표가 선악을 분별하도록 감각을 훈련시키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다. 촉각, 후각, 시각, 청각, 미각은 분별하는 일을 도와줄 수 있도록 훈련될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를 몸으로 감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육체의 사인들이 우리로 선과 악을 분별하도록 도울 수 있어야만 한다.

그 주일 아침 예배 때 내 영은 내 앞에 있는 여인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온도가 그 메시지를 전달해주었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육체적으로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거의 아무런 관심도 두지않는다. 그들은 오직 지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지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시스템 중 하나를 무시하고 있다.

여러분에게 줄 정보가 있다. 하나님이 주로 사용하시는 언어는 말이아니다. 그는 우리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의사 소통을 하신다. 마음의 인상, 생각 속에 떠오르는 그림, 감정, 느낌, 육체적인 감각들이 그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무시하면 최소한 여러 차례에 걸쳐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이 사실을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육체적인 신호를 경시할 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표현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타고 있는 배 옆을 지나가며 배 안에는 들어오고자 아니하신다. 마가복음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6:48).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가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고 이렇게 하셨고 주님을 배 안으로 끌어들이는 유일한 방법은 강한 요청이다. 주님은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오시지만 결코 이런 일이 자동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만일 그분이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기회를 놓쳐버리게 된다. 제자들도 거의 놓칠 뻔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 중 몇몇은 그를 유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얼마나 자주 육체적으로 보고 감지하는 것을 오해하여 예수님과 함께 있을 기회를 놓치고 있겠는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법에 대해 많이 열려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감지하며 주님을 배 안으로 들어오시도록 요청한다. 그들은 모험으로 발을 내딛으며 말한다. “wp 존재의 모든 부분이 다 하나님께서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상황에 늘 유용한 존재가 되었으면 해요.” 언젠가 하나님 나라를 우리의 오감을 통해 분별하는 일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평범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훈련시켜야만 한다.

어떻게 느끼는가? - 비행기 조종사들은 훈련을 받을 때4만 피트 상공에 있는 것과 같은 기압 상태를 느끼도록 만들어진 고공 시뮬레이터로 자신의 적성을 시험받는다. 조교는 산소를 조금씩 빼내면서 비행기에서 산소가 없어질 때 그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감지하고 관찰할 수 있게 만든다.

모든 사람들은 다 다르게 반응한다. 어떤 이들은 팔에 나있는 털이 당기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귀가 윌린다. 또 다른 이들은 다리 근육이 아프다. 중요한 건 만일 산소마스크가 제때에 내려오지 않을 경우 그들이 몸에 느끼는 증상을 통해 산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방에 들어오실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나님의 임재를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가? 주님이 우리 주변에 맴돌고 계실 때 어떻게 그를 느끼고 감지하고 인식하는가? 생동감 있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래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를 통해서 우리와 소통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을 때 우리의 생각은 천국의 현실과 온전히 발맟추기 어렵다.

내게 있어선 이것은 발견해나가는 과정이다. 손으로 만져질듯한 기름부음, 은사를 위한 성경의
임재를 난 육체적으로 분별하도록 배웠다. 난 육체적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마치 누군가 실
크스카프를 취해 내 손 위에 올려놓은 듯한 느낌이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느끼는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칭송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이것이 경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요점은 우리의 감지 능력이 개발될 때 하나님께서 언제 방으로 들어오시는지 그리고 그가 무슨 일을 하려 하시는지 알기 위함이다.

난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이나 장소에서 움직이기 시작할 때 뒤통수가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 혹은 손이 뜨거워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난 누군가 부흥이나 치유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내 왼손이 뜨거워지는 일을 경험했다. 나도 잘 모르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권능의 손에 감춰져 있다고 가르친다(3:4).

누군가 부흥이나 치유에 대해 말을 할 때면 내 감정 영역에 불이 붙여지고 그런 심정을 통해 기름부음이 흐흔다. 바울은 말한다.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장에서 좁아진 것이니라”(고후6:12).

……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실 때마다 항상 육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단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육체적인 신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배우게 될 것이다. 나처럼 오랜 시간이 거릴지도 모른다. 때때로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아무런 느낌도 없지만 고쳐질 때가 있다. 육체적인 감각은 항상 확실한 지표는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지표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감지하는 법을 배우는 모험에 있어서 머뭇거리지 말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부분을 다 사용하실 것이다. 몸으로 관심을 돌려 하나님의 기름부음과 임재를 인식하기 시작하자<기적의 삶에 다가가라 빌 존슨>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