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5:13-15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아멘
1. 주님은 우리와의 친밀함을 원하십니다.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아멘. 주님께서 정말 원하는 것은 친밀함입니다. 연인간에도 부모와 자식간에도 친밀함이 빠지면 아무것도 아니듯이 주님과의 관계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기도는 하나님과 우정의 표현이고 우정을 기르는 것이고 서로의 친밀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사귀게 되고 주님과 가까워지고 친밀하게 되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친구삼아 주셨습니다. 창조주께서 나와의 친밀함을 정말 원하시는데 내가 먼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먼저 나를 택해 주셨습니다. 나와 친구되기 원하시는 분이 창조주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시고 만왕의 왕이시고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죽어주신 너무나 아름다운 주님이십니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고 해도 주님 같은 분은 없음을 사귐을 통해서 점점 더 알게 됩니다. 레리크렙은 하나님을 조금 누리는 것이 다른 것을 많이 경험한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주님과 충분한 교제시간이 있어야 충만한 친밀함의 효력을 맛볼 수 있는데 충분한 기도가 없으니 죄가 쌓여 있어 친밀함을 느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연습으로 유명한 로렌스 형제는 수도원에서 남들처럼 가르치는 일을 한것도 아니고 부엌에서 일을 하고 마당을 쓰는 일을 하면서 늘 주님을 모시고 대화하고 교제했는데 주님과 함께 하는 곳이 거룩한 곳입니다. 광야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이곳이여 다른 곳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라고 고백한 것처럼 주님과 교제하는 곳이 거룩한 곳이 되고 교제하는 그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교회가 실지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주님과 교통이 되어야 합니다.
2. 항상 주님을 새롭게 초청할 때 주님은 그곳에 함께 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초청하면 합당한만큼 그만큼 임하시는데 찬양이든 기도든 말씀이든 모든 부분에 함께 하실 때 가치가 있습니다. 사역에 주님께서 얼마나 함께 하시느냐에 가치가 있는데 모든 부분에 주님을 초대할 때 함께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같은 자를 혼인잔치에 초대하셨고 우리를 친구삼으셨는데 이것이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사실입니다.
내가 원하고 사정해도 주님이 들어줄까 말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주님께서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친구되어 주시려고 피값을 주셨습니다. 에서가 장자의 기업을 소홀이 여겼듯이 성도들이 이 엄청난 사실을 소홀히 하니 예배도 기도도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주님을 높이면 우리가 높아집니다.
주님과 나는 친한 사이이고 주님께서 나를 친구 삼으심을 행복해하시고 뿌듯해 하시고 기뻐하시는데 이것을 성령님의 임재가운데서 알 수 있습니다. 이 지구상의 2/3는 빈곤층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굶주린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바닷가에서 기둥을 세워놓고 영양실조에 걸려 살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볼때 안타깝게 여기는데 영적으로 보면 주님과 친밀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도 제대로 충분한 영양공급이 안되어 이런 모습입니다.
극빈한 나라들은 내전도 많고 에이즈나 다른 질병들이 많은데 이것을 가르켜 처참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상태가 하루 이틀이 아니고 계속되기에 극한 절망 속에 빠져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자기 안에 인식되어 버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오래 노예생활을 하다 광야에 나오니 여차하면 애굽에서 살던 습관이 있어 애굽의 파와 마늘이 생각난다고 하듯이 우리가 주님의 신부라, 하나님의 자녀라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해도 별로 감동아 안되고 강렬하게 동의가 안되는데 이를 실지로 은혜를 받고 경험을 해보아야 합니다.
3. 매사에 주님을 모시고 교제하며 서로를 누리며 친밀해 갈수록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의 보배로운 자야, 너는 나의 신부야... 라고 하시는데 주님과 교제를 통해서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대해주시고 내가 주님의 나라에서 어떤 존재인가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놀라운 행복감속에 부족함이 없는데 기도하지 않고 주님과 교제하지 않는 사람은 실의에 빠져 있고 체념에 빠져 있습니다.
주님과 친밀한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으면서 은혜와 영화를 주신다는 말씀을 그대로 경험하니 든든합니다. 로렌스 형제를 남들이 볼 때는 청소나 하고 요리나 하니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보였겠지만 주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가 어마나 매사에 주님을 모시고 주님을 귀히 여기고 주님의 사랑을 그만큼 알고 주님을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고 주님과 교제하느냐에 따라 위대하게 되는 것이지 직분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대교구장은 기억도 못해도 로렌스 형제는 다 알고 있습니다. 이 행복함! 이 든든함! 주님은 우리와의 우정을 누리시기를 원하시는데 주님은 우리와 만남을 통해서 누리시고 우리와 대화할 때 우리를 누리시고 그럴때 우리도 물론 주님을 누리는데 주님만 위해서가 아니고 주님과 우리 자신을 위해서 주님과 자주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쁨과 행복의 근원이신데 주님을 성령을 통해서 누리게 해주십니다. 주님을 누릴수록 우리를 더 위대하게 영화롭게 해주시고 더 행복하게 해주시고 더 깊이 누리게 해주시는데 그럴때 주님과 친밀한 관계 영화로운 관계가 되고 그러면 예배와 기도외에 삶가운데서 주님의 임재를 더 느끼게 되고 주님을 위해 하는 모든 것이 더 가치가 있게 됩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시는데 이것이 이론이 아니라 실지로 자주 느끼는데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더 체험하게 됩니다. 왕이시고 하나님이시고 전능하신 사랑자체이신 분이 나를 영원한 친구를 삼으셨는데 여기에서 얼마나 친밀한 사귐을 가지느냐에 따라 영광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내가 더 가치 있는 자가 되려면 주님은 우리와 만남을 원하시고 갈망하시니 주님을 위해서 주님과 더 친밀해야 합니다. 그럴때 하나님도 만족하시고 우리 자신도 만족이 됩니다. 친밀한 만큼 하나님도 우리의 사랑과 우정과 충성을 누리고 우리도 주님의 은혜와 영광과 모든 것을 느끼고 입고 누립니다.
기도를 통해서 이 모든 것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기도의 제일 큰 목적입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깨어 기도하면 할수록 주님과 친밀할 수 있고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리 원해도 친밀할 수가 없으니 기도생활을 꼭 해야 합니다.
4. 주님과 친밀할 때 주님의 아픔도 진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중보할 때는 나와 친구가 되시는 주님의 마음이 머물고 있는 곳에 함께 하고 주님의 눈길이 가 있는 곳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영혼들, 핍박지역, 영혼들 환난에 들어갈 영혼들에게 주님의 관심이 있고 마음이 있고 눈길이 있으니 중보라는 것은 주님의 관심에 같이 관심을 가지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의 아픔에 같이 동참하는 것이 친밀한 친구이며 중보를 통해서 또 다른 사귐도 됩니다.
주님과 친밀할 때 진정한 사명감당도 되고 형제를 돕는 아름다운 일도 되면서 주님과 친밀한 관계가 더 되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중보는 아주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전 겟세마네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실 때 정말 친구가 필요한 때였기에 제자들에게 나와 한시 동안도 깨어있을 수 없겠느냐고 사정하셨는데 제자들이 그때는 성령도 안받고 부활의 주님도 모르니 피곤해서 기도하지 못하고 주님과 마음을 같이 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시대에 이런 친구를 원하시는데 주님과 친밀함이 이래서 귀한 것이고 보배로운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기름부음 안에서 주님과 애정, 우정, 가까움을 훨씬 더 누리는데 성경을 볼 때나 찬양할 때나 묵상할 때나 이전보다 더 가까이 해주시고 후대해주심을 느낍니다.
성도들도 이것을 정말 원하고 사모하면 발벗고 뛰어들고 하면 주님과 친밀하게 되고 친밀함을 누려보면 이보다 행복할 수는 없고 영화로울 수는 없음을 알게 됩니다. 신분만 생각해 보아도 행복합니다. 진실하신 나의 친구 어찌 그리 좋은지... 이것만 묵상해도 황홀합니다.
친구! 모든 것을 포용해 주시고 이해해주시고 누구보다 나의 앞날을 책임지시고 돌봐주는 이런 친구는 없습니다. 특히 이런 재난 때 환난 때는 이런 친구가 필요합니다. 저희 환난 때 내가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신다고 주님만이 해주실 수 있습니다.
평소에 주님과 관계를 잘해 놓으면 어려울 때는 빛을 발하고 특히 그날에 상받을 때는 더 빛을 발합니다. 내가 힘들 때 나와 함께 하였고 내가 어려울 때 내 벗이 되어주었다...고 주님께 인정받는 이것이 영광입니다.
이 시간도 남은 시간도 주님과 함께 있고 주님과 친밀한 관계가 되는 시간입니다. 할렐루야!!
<출처:카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출처:카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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