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참된 꿈들은 여러 가지 개체의 꾸러미 형태로 온다. 상상들의 혼합, 은유들, 비유들, 시들, 꿈들, 그리고 잠자는 중에 놀랄만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것들이다. 꿈은 환상과 다르게 오직 사람이 잠들었을 때에만 받게 된다. 꿈을 꾸는 것은 단지 밤중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다. 꿈들은 영으로 받아진 후 이해를 돕기 위하여 마음 안으로 해석되어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꿈의 형상들을 받아들이고 진행시키는 그림 창고를 가지고 있다. 성결하게 하는 마음이 세상 사건들의 배경에 있는 소음에도 불구하고 꿈들을 부패 없이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환상은 계시의 시각적 인식이거나 우리의 영적 눈들을 통한 초자연적 사건이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꿈들보다 더 현실적이며 보다 더 사실적이다. 사람은 정신이 깨어있을 때에라도 환상을 받을 수 있다.
꿈들과 환상들 사이의 차이점들
꿈들 | 환상들 |
꿈을 꾸기 위해서는 정신이 잠이 들어야만 한다(창15:12-13). “해질 때에 아브라함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리” | 환상들은 무아지경, 환영, 그리고 신성한 광경들을 통한 정신의 경계심의 여러 각도들에 따라 받아들여진다. 열린 환상은 자연적인 눈들이 활짝 열린 가운데 받아들여진다. |
꿈들은 항상 개인적 기반 위에서 경험된다 | 환상들은 그룹 환경 안에서 경험되어질 수 있다. (행22:6-9)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이 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려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보지 못하더라” |
꿈들은 사람의 영에 의하여 받아들여지며, 대부분이 영과 영의 만남들이다. (단7:1)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이것은 선견자의 사역 안에서 일반적인 꿈과 환상의 영역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이다. | 환상들은 명백한 몸의 체험들 같이 신체적이거나 자연적 영역의 여러 각도들을 포함할 수 있다. (행22: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
꿈들은 보다 상징적이다 | 환상들은 보다 실제적이다 |
대부분의 꿈들은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 환상들은 선포되기 전에 주의 깊게 평가되어야 한다 |
꿈들은 종종 개인적 상징성과 함께 꿈꾸는 자를 위하여 보다 신적인 목적으로 형상화 된다. 새벽녘에 꾼 꿈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기에 애매모호함이 적다. | 환상들은 선포되기 보다 실제적이고, 종종 보다 명백하여, 약간의 해석만을 요할 수 있다. 그것들은 때때로 신속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할 수도있다. |
꿈들과 환상들의 상호작용
꿈들과 환상들은 꿈꾸는 자의 삶 안에서 많은 방법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 꿈꾸는 자는 많은 징후들을 가질 수 있다. 외적이나 내적 환상들, 꿈속의 환상들, 환상 속의 환상들, 꿈 안의 꿈, 혹은 환상 속의 꿈들이다. 전체적으로 이것의 다양한 결합들의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꿈들이 순수하게 영적 경험들(혹은 영과 영의 만남들)임에 반하여, 환상들은 자연적 영역의 여러가지 단계들이 다르게 뒤얽힌 영적 만남들이다.
다니엘 선지자는 다니엘서 7장 1절에서 꿈과 환상의 상호작용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 환상과 다르게 꿈은 꿈꾸는 자의 마음에 솟아오르며, 사람의 마음의 깊은 부분을 휘저어 놓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순수한 꿈들 가운데서는 주로 육체의 관여가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꿈들 안의 몸의 움직임으로 여겨지는 것은 거의 대부분 환상들을 동반한 꿈들의 결과이다.
거의 대부분의 꿈꾸는 자들에게 꿈들 속에서의 영적 만남들의 대부분은 환상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꿈을 꾸고 있을 때, 육체의 관여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꿈과 환상의 영역으로부터 고통이 전해지는 것들처럼 보이는 것은 꿈꾸는 자가 깨어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순수한 꿈은 그것이 영과 영의 일이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들의 전이를 가질 수는 없다.
반면에 환상들은 자연적 영역 안에서 다양한 단계의 육체적 관여를 가진다. 예를 들면, 바울이 그의 회심 후에 삼일 동안 소경이 된 것과, 야곱이 하나님과의 환상적 만남 이후에 평생 다리를 절었던 것과 같은 것들이다.
하나님 자신도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꿈들과 환상들의 미묘한 차이점들을 말씀하셨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민12:6)
하나님께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라고 하신 것은 친밀함이나, 혹은 보다 깊은 관계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나를 그에게 알라기도 하고”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것이거나, 혹은 그의 특성들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꿈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는 것임에 반하여 환상들은 그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성품을 경험하는 것이 오직 계시에 의해서인 사실은 이상할 것이 없다.
<꿈과 환상들/조 이보지/순전한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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