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언적 전도(Prophetic evangelism)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영혼 추수를 돕는 아주 강력한 수단 가운데 하나다 †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마음을 그분께로 돌아오게 하는 데 어떤 환경이 도움이 될 것인지를 파악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친밀하게 살펴주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는 자신만의 비밀 공간을 갖고 있다. 나는 이것을 예언적 전도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대규모 추수를 준비하고 계신다.
예언적 전도(Prophetic evangelism)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가르침을 이해한 뒤, 그 가르침을 잃어버린 영혼들과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연결시키는 대화의 통로로 활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수년 동안 온 세계에 큰 영혼 추수의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해 왔다. 예언적 전도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님의 추수를 돕는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희어진 들판에서 추수하기 위해 하나님 손에 쥐어진 낫, 혹은 도구하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추수와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큰 힘을 얻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외침을 대변하는 핵심구절이 바로 마태복음9장37-38절 말씀이다.
†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을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9:37-38) †
중보기도로 인해 곡식들이 익었다. 지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수많은 기도 운동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많은 신자들이 부흥을 위해 부르짖었다. 이런 모임에 여러 번 참석했었다. 아마 당신도 그랬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혼 추수의 우선순위를 정하시다 – 마태복음9장37-38절을 공부하면서, 영혼 추수를 위한 중보의 주요 포인트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치유를 위해서 ‘여호와 라파’나 ‘여호와 이레’를 부르짖듯이,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구원받는 데 활용될 수 있는 강력한 이름은 ‘추수의 주님’이다.
이 책을 머리말에서 내가 초자연적 영역을 주제로 글을 쓰도록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한 가지 이유를 말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새로운 다른 의미의 ‘예수 운동’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려는 거이다. 당신이 이책을 읽을 즈음에, 이런 새로운 역사가 이미 일어났을 수도 있고, 일어나는 중일 수도 있을 것이다.
크리스천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거듭난 신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새로운 성령의 물결이 나라에서 나라를 강타할 것이며, 예언적 전도 방식이 더욱 강력하게 활용되며,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는 일이 더 잦아질 것이다.
미혼모들도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 – 내 친구 체 안 목사가 하나님께서 예언적 전도를 통해 그를 사용하셨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수년 전, 나는 메릴랜드 대학에서 전도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공자로 스낵이나 애플 소다 같은 마실 것들을 나눠주었다. 초자연적인 지혜의 말씀(이것은 제공자가 상대방에 대한 어떤 일반적인 지식도 갖고 있지 않은 정보이다)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번쩍 하고 생각을 떠오르게 하셨다. ‘저 여성은 임신했는데, 낙태를 고려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전에도 한 번 낙태를 한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런 식의 정보를 주셨을 경우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시다시피,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단지 당신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려고 이런 내부 정보를 말씀해 주신다. 그러나 이런 예언적 전도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 정보를 통해 당신이 어떤 행위를 하기 원하시기 때문에 정보를 주시는 것이다. 체는 하나님께 기도했다(나는 그가 열정적으로 기도했으리라고 확신한다.) “하나님, 제가 그녀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체는 곧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그 순간에 당신이라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초자연적인 역사를 따르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적인 외교술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도 하다. 체는 그 젊은 여성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목사입니다. 부디 기분 나빠하시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당신이 아리를 임신했는데 낙태를 고려하고 있다고 하시는군요. 사실 이것이 벌써 두 번째라고요.”
그러자 그 여성이 울음이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흐느끼면서 말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제 남자친구도 모르는 사실인데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그 여인의 삶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때부터 체는 어려움 없이 그녀에게 캠퍼스 사역자가 되었다. 게다가 그녀의 남자친구 역시 거듭나게 되었고 그 역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처럼 지혜의 말씀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천국을 이끌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왜 삭개오는 나무에서 내려왔을까? – 예수님께서 예언적 전도가 갖는 위력에 대한 예를 보여 주신 적이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러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게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10)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먼저 알고 계셨다. 주님은 그의 이름을 부르심으로 군중 사이에서 그를 지적하셨다. 둘째, 삭개오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가장 비천한 자였다. 왜냐하면 그가 토색하여 부를 쌓았으며, 그는 단순한 세리가 아니라 세리장이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경멸을 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신은 누가복음 18장9-14절에 나오는 비유를 읽었을 것이다. 비유에서 두 사람이 나오는데 하나는 바리새인이고 또 하나는 세리이다. 바라새인이 서서 따로 기도하며 이르기를,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행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찌감치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리러 보지도 못하고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기를, “하나님,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다.
이 비유는 지혜의 말씀을 통해 예언적 전도 방식을 활용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단지 몇 초 동안에,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삭개오에게 미쳤고, “너는 나에게 가치 있는 존재다. 네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매국노로, 인간 쓰레기로 취급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너를 보고 있으며 너를 알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신디 제이콥스/초자연적삶을살라/Sheki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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