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하이드는 하나님을 섬기기 이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도비야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경고와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숨자는 제안을 받았다(느6:10). 하지만 그는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만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느6:11)고 대답했다.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보더라도 비슷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눅9:51).
무디의 경우도 마지막으로 잉글랜드에 있었을 때, 심장이 좋지 않았다. 당시 그는 유명한 외과의사에게 진단을 받았는데, 그 의사는 그에게 과로로 인해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무디는 더 이상 과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항해 도중, 엄청난 폭풍이 몰아쳐 그가 타고 가던 배(스프리호)를 강타했다. 그 배는 거의 침몰될 뻔했다. 사람들은 혼비 백산하여 무디에게 어떻게 해보라고 애걸했다. 무디는 그들을 권고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폭풍의 위기에서 구해주신다면, 잃은 영혼을 구하는 일을 결코 한시라도 늦추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그 해 여름은 시카고에서 세게 박람회가 열렸던 시기였다. 무디는 설교자, 복음 전도자, 봉사자와 찬양대로 구성된 단체를 조직했다. 아마도 이는 전무후무한 일이었을 것이다. 홀이나 창고, 극장이나 교회, 심지어는 서커스용 천막까지도 복음 전도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무디는 젊었을 때의 활력으로 일을 진행해 나갔으며, 참으로 놀라운 복음 전도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 뒤 몇 달이 지나, 캔자스 시티의 강단에서 힘있게 복음을 전하는 도중에 갑자기 심장이 멎은 듯 목소리가 그치고, 땅 위에서의 모든 수고가 끝이 났다. 며칠 뒤, 그는 노스필드로 운구되어 귀중한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그의 친구들 옆에 안치되었다.
켈커타에 살고 있는 존의 친구가 있다.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된다”(사53:3)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는 그는 존 하이드가 기도 생활에 관해 이렇게 증언한다.
“나는 존이 1906년에 있었던 시알코트 집회를 위해 30일 밤낮을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터너에게서 들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집회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공개된 것이었죠. 나는 그 말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당신에 기도하지 않았던 나의 삶과 비교할 때 더욱 그랬죠. 터너와 내가 단둘이 있을 때, 나는 그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말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는 그 이야기를 자헤시 해주기를 매우 꺼려했어요(터너 자신도 21일 동안 그 기도 모임에 동참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는 말문을 열더니,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해줄 수 없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함께 거룩한 산에 있었던 시기엿지……”라고만 하더군요”
1910년 시알코트 집회가 있은 직후, 존 하이드는 캘커타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곳에 살던 그의 친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그는 거의 2주간을 우리와 함께 머물렀습니다. 그 기간 내내 그는 열이 있었죠. 하지만 그는 정기적으로 집회를 열어, 건강이 좋지 못했음에 불구하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당시 저도 며칠간 몸이 좋지 못했죠. 가슴 통증 때문에 여러 날 밤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덕분에 반대편에 있던 존의 방에서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있던 방은 어두웠기 때문에, 그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켜는 것을 확연히 볼 수 있었죠. 그는 12시, 2시, 4시, 그리고 5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겼고, 그 뒤로는 아침이 될 때까지 그 불빛이 그대로 켜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질병에 시달리면서 밤새 깨어 기도하면서도, 어김없이 5시에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당시에 깨달았던 교훈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면 너무 피곤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밤중에 기도하는 일은 안 해도 좋다고 스스로 자위했습니다. 사실, 밤에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일찍이 한 번도 누려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존을 통해 저는 그 특권을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이 사역, 곧 밤에 여호와를 “기억하는 자들”과 더불어 깨어 기도하는 사역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매일 밤 나를 잠 못 이루게 하던 그 가슴의 고통이 이내 찬양과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침내 고통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나는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두려운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 기도 시간이 될 때마다 나를 깨워 주옵소서”(사50:4 참조)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새벽 2시였고, 그 다음에는 4시였습니다. 매우 규칙적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5시에 나는 근처에 있는 회당에서 회교 승려가 낭랑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기도자들을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보다 한 시간 먼저 깨어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무척 기뻤습니다.
하지만 하이드의 건강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의 선교부에서 연례 모임에 참석하라는 소식이 왔습니다. 나는 걱정이 되어 그에게 함께 의사에게 가자고 권유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심장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쁜 경우는 처음이군요. “심장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쁜 경우는 처음이군요. 심장이 본래 있던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옮겨갔군요.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인해 그렇게 된것입니다. 심장이 본래의 위치를 되찾기까지 몇 달이고 절대 안정을 취해야합니다. 도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신 것입니까? 만일 삶의 습관을 완전히 바꾸고 스트레스를 피하지 않으면 6개월 이내에 죽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의사는 단단히 경고했습니다. 하이드는 성소에서 중보 기도를 하느라고 과로와 긴장된 삶을 사는 것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기로에 섰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잠시도 주저함 없이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이 말씀이 바울의 승리와 노래였다면, 사랑하는 하이드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의사가 최악의 경우를 이야기한 직후에도 그의 얼굴은 밝게 빛났습니다. 내게 어찌 그 모습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찌지 아니하였도다”(계12:11)라는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은 뒤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하이드가 선교부 연례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려 그를 변호하게 위해 의사에게 진단서를 요구하는 신중함을 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또한 선교부측에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려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책상에서 압지를 치우더니, 나에게 선교부 연례 모임에서 보낼 6폐이지로 된 편지와 보고서를 보여 주었습니다. 나는 “즉시 우편으로 보내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완성하지 못했어”라고 조용한 음성으로 대답했습니다. 그 편지와 보고서는 끝내 보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혹심한 두통이 일어나 결국 마무리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이때의 두통은 밤새 열이 펄펄 끓더니 몸이 쇠약해졌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나의 십자가라면, 짊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가 내게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즉, 형제들과 세상의 오해를 받아 결국 면직을 당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심령은 더욱 강건해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
이렇게 말한 다음, 이 친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이드를 통해 자신에게도 기도의 삶을 가르치셨는지, 그리고 나중에 자기도 하이드처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해 그분과 함께 더 깊숙이 겟세마네의 후미진 장소에 나아감으로써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크신지를 깨닫게 된 그 과정을 자세리 기록하고 있다.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약4:5)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과 교제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이러한 소원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구하지 않아도 요청하지 않아도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사50:4).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구하고 요청한다면 훨씬 더하시지 않겠는가! 이렇게 볼 때, 아침에 일어나 깨어 기도하는 시간이야말로 말할 수 없이 귀하고 영광스러운 시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 바로 그분의 권리이자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침이 시작되는 순간에 우리와 교체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항상 최선의 것, 곧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에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이토록 귀중한 특권이 우리에게 부여되었다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도록 힘쓰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행해야 할 엄숙한 의무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소성케 하시고 능력을 주실 것이다.
겟세마네를 기억하라! 위기의 순간을 앞에 두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말씀했다. 주님께서는 잠든 제자들이 사탄의 유혹에 빠지게 될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에, 거듭 세 번이나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셨다.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 곧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세상과 교회가 위기에 처한 순간에 “너희가 나와 함께 잠시라도 깨어 있을 수 없는가?”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교회의 갱신은 우리의 기도 생활에 달려 있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것, 곧 그분과의 조용한 교제 시간을 갖는다면, 앞으로의 세상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게 될 것이다.
캘커터의 친구는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우리는 감옥에 갇혀 죽임을 당하게 된 순교자들에 관해서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 사역으로 인한 매일의 과로를 이기지 못해 요절한 사람에 관해 들어 본적이 있나요?” 나의 이 말에 인도에 있던 한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제여, 그것은 요절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었습니다. 존 하이드는 인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의도적으로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과연 누가 그의 뒤를 따를 것입니까?
<잠들지않는기도의사도/존 하이드/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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