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경험하는 부르심
A. 성령님은 교회에게 하나님과 깊은 친밀의 관계로 가도록 초청하고 계신다. 나의 초창기 사역은 복음 전도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나에게는 부흥을 위해 기도한다거나 하나님과의 친밀감에 관한 신학적 이론이 없었다. 그러나 1983년 5월, 21일간의 교회 금식 기간중에, 주님은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시편 27 편 4절의 본문을 말씀하셨다: “내가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하는 하루 24시간 기도하는 사역을 부어줄 것이다.”
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편 27:4)
B. 1988년 7월 내가 아가서 8장 6절을 읽고 있을때, 밥 존스가 하나님이 그에게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신 내용인 아가서 8장 6-7절대로 살아갈 수 있게 전세계에 있는 예수님의 지체에게 은혜를 내려주실 거라는 약속과, 나의 사역의 중심이 이 주제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기 위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 “불의 인(seal of fire)”을 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경험할 수 있는 은혜를 점진적으로 받는 다는 것을 말한다.
6너는 나(예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하나님의)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죄, 압박)이 꺼치지 못하겠고 … (아 8:6-7)
C. 왕실의 인: 고대시대에 중요하게 보호되어야 할 문서들은 왕의 싸인이 들어간 반지에 의해 밀랍으로 봉인되었다. 그 왕실의 봉인 도장은 왕의 모든 자원을 통해 보호되어졌다.
D.육체적 죽음은 강력하다, 또는 아무도 피하지 못한다. 자연에 속한 그 어떤 영역도 죽음의 권세를 피할수 없다. 우리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도 죽음처럼 강력하다. 우리 삶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피할수 없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어떤 부분에서도 타협하거나 빠져나가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고 계신다. 우리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 사랑을 계속 받게될 때 어떠한 유혹의 홍수보다도 더욱 강력하다.
5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로마서. 5:5)
E. 물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불이외의 모든 불을 끌수 있다. 원수는 이 불을 끄기위하여 우리에게 많은 양의 고난과 유혹, 실망, 그리고 고통을 보낼 것이다(계 12:15; 사 43:1-2).
F. 우리는 그저 그분의 임재로 우리 마음을 만져주시기를 구하면서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품고, 입어야 한다. 그분을 우리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예수님께 은혜를 달라고 해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만지심을 느끼는 것이다.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G. 기도와 금식,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두어 주시는 은혜를 더 자유롭게 받게 도와준다.
H. 아가서는 8장으로 구성되 있는 사랑의 노래이다. 아가서는 2가지 방법으로 해석될수 있다:
1) 자연적 해석: 솔로몬왕과 그의 신부, 술람미 여인과의 관계를 묘사한 이 관점은 부부의 사랑의 아름다움을 높여주는 성경적 원칙들을 강조한다.
2) 영적인 해석: 솔로몬왕과 그의 신부와의 관계는 왕된 예수님과 그의 교회의 관계에 대한 영적인 진리에 관한 상징이다. 결혼은 없어질 것이지만 (아가서를 포함한)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게 될 것이다(마22:30).
II.신부의 정체성을 지닌 마지막때 교회
A. 마지막때 교회는 성령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것을 그대로 말하고 행함으로 성령과의 깊은 연합을 갖게 될 것이다. 성령님이 행하고 계신 것은 무엇인가? 그분은 능력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중보하고 계신다. 성령님이 말씀하고 계신 것은 무엇인가? 성령님은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시고 계신다.
17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계 22:17)
B. 계 22:17은 마지막때 교회의 기능에 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다
1)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음,
2) 중보기도에 적극적으로 동참함,
3) 신부의 정체성을 확립함, 그리고
4) 놀라운 추수를 거둠.
C. 다시오실 예수님을 위한 마지막때 교회의 3가지 기도:
1. 친밀함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소서(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마음의 돌파구)
2. 부흥을 위해 우리에게 오소서(지역이나 나라의 영적 부흥을 통한 영적돌파구)
3.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오소서(예수님의 재림에 의한 역사적 돌파구)
1. 친밀함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소서(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마음의 돌파구)
2. 부흥을 위해 우리에게 오소서(지역이나 나라의 영적 부흥을 통한 영적돌파구)
3.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오소서(예수님의 재림에 의한 역사적 돌파구)
D. 신랑되신 예수님의 메세지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의 부르심이다. 이 친밀함으로의 초청은 하나님의 마음(감정, 사랑)을 깊이 경험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친밀함은 예수님을 나의 남자 친구나 또는 애인으로 바라볼 것을 말함이 아니다.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12우리가 ….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0-12)
E.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를 상속할 자로 하나님의 보좌를 경험할 지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감정과 마음을 경험할 지위를 지니고 있다. 이 두가지 지위는 모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특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되신 하나님에 관한 메세지를 이해하는 것은 신랑되신 예수님에 관한 메세지를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F. 대부분의 기독교 여성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때문에 그들에게 여성스러움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 남성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것이 그들의 남성스러움을 포기하라는 것으로 오해하여 종종 곤욕스러워하곤 한다. 그리스도의 신부의 본질에 관한 메세지를 경험하는 것은 결코 남성스러움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강화시킨다.
G. 몇몇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남성들)은 그리스도의 신부 정체성에 관한 메세지의 본질적인 실재를 경험했다.
다윗왕 은 이스라엘 왕중에 가장 위대한 용사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예배자이기도 했다. 사도 요한은 우뢰(천둥)의 아들이라고 불렸고, 그는 자기 스스로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5번이나 자신을 묘사하기도 했다(요 13:23; 19:26; 20:2; 21:7, 20). 세례 요한은 선지자로서 예수님에 의해 가장 큰 자로 불려졌다(마 11:11). 그는 예수님을 신랑되신 하나님으로 이해했다(요 3:29).
H. 신랑의 메세지는 신랑되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감정들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신랑 예수님은 부드러운 자비하심으로 가득차 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자상함으로 대해 주신다. 어떤 이들은 대적하는 것과 미성숙함을 혼동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 반항하는 것에 노하시지만,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진실되지만 미성숙한 성도를 향해서는 부드럽게 대하신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우리를 기뻐하신다 (시 18:19, 35; 130:3-4).
I. 신랑 예수님은 즐거운(행복한) 마음을 소유하신다. 예수님은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즐거움을 더 많이 소유하셨다(히 1:9). 교회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우리와 연관되어 있는 하나님은 거의 성나거나 슬픈 하나님으로 보여져 왔다. 그러나, 신랑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불같은 사랑 또는 불타는 소원을 갖고 계신다. 교회는 소중한 예수님의 마음을 경험할때 정결케 될 것이다. (엡 5:26-29). 열정적인 신랑으로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은 머지않아 우리 자신을 소중한 신부로 바라보게 한다.
J. 주님의 교회는 하나님 마음의 사랑의 노래를 주님께 다시 불러 드린다. 교회가 부르짖는 전투적 중보기도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실 사랑의 노래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K. 1995년 11월에 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헵시바’로 부르도록 권면하는 하나의 예언적인 꿈을 꾸었다.
4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바가 될 것임이라5마치 …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6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7또 여호와께서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사 62:4-7)
L. 헵시바의 메세지는 하나님이 우릴 기뻐하신다는 것과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아가서의 내용과도 같은 내용이다. 수년간 나는 헵시바의 메세지를 경험하지 못한 채 부흥이 오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중보 기도자들을 지치게 만든 하나의 이유가 부흥을 기다리는 수년의 시간 동안에 예수님과의 대면(만남)이 부족했었던 것에서 왔다라는 것이다. 이사야62:4-5의 신부의 정체성의 계시는 이사야 62:6-7에 나오는 24시간7일 기도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A. 마 24-25장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관해 가르치셨다(마 24:3-44). 그리고 마지막 심판에 관해 묘사하기 전에(마 25:31-46) 그것을 3가지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리더로(마 24:45-25:30) 부른 자들에게 적용하셨다. 마태복음의 이 2개의 장은 마지막때에 리더를 준비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하나의 가르침”이다.
B. 예수님께서는 마 24-25 장에서 신랑으로서, 왕으로서, 그리고 심판자로서 자신의 사역의 3가지 면을 강조하셨다. 마지막때에 성령님은 예수님의 특성으로서 이 3가지 측면을 강조할 것이다(마 24-25, 계 19; 사 61-63; 시 45). 신랑으로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열망을 경험할 수 있다. 왕으로서, 우리는 그분의 권능을 경험한다. 그리고, 심판자로서, 예수님의 열심이 사랑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없앤다. 신랑되신 예수님과 심판자로서의 예수님은 모순관계가 아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분의 지도력과 그의 백성들을 압제하는 자들을 대적하고 제거하는 그분의 심판으로 표현된다.
C. 예수님의 주된 권고는 마지막때에 깨어있을 것과 성령님과 연합된 마음을 발전시킴으로써 준비되는 것이다(마 24:36, 42-44, 50; 25:13; 막 13:33-38; 눅 21:36; 계 16:15).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 25:13)
D. 우리는 신약에서 마지막 때에 관하여 깨어서 기도할 것을 10번이나 권고받았다.( 마24:42; 25:13; 막 13:9, 33, 34, 35, 37; 눅 21:36; 살전 5:6; 계 16:15). 깨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성령의 능력을 받는 자세를 지니는 것을 말한다. 그곳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께 순종하고 사람과 사회에 영향을 끼치도록 권한을 위임받는 장소이다. 이런한 시간은 연료없는 차를 미는 것 대신에 차에 연료를 넣는 시간으로 비교될 수 있다. 성령님과 연합없이 사랑안에 거함을 구한다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다.
IV. 마지막 때의 천국(왕국)의 지도력: 현명한 지도력 정의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마 25:1-2)
A. 처녀들: 예수님의 의를 통해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앞에서 처녀로 정의된다 (고후 5:17).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 11:2)
B.등: 각 처녀들은 등을 가지고 있다. 그 등은 하나님의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역을 말한다 (마 5:15-16; 계 1:20; 2:5; 11:3-6; 슥 4:2; 사 62:1; 요 5:35).
C. 신랑: 모든 사역자들은 신랑되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의 계시를 갖고 있다. 그들은 신랑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만나러 나가, 대면한 사람들이다.
D.그때에: 우리는 그때가 언제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때”란 말은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종말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때는 열처녀가 신랑을 만났던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그 기능을 발휘하는 때를 말한다.
V. 슬기로운 다섯 처녀: 사역의 등불을 비취도록 기름을 담아라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마 25:2-4)
A. 이 “기름”은 우리가 하나님과 시간을 보낼 때에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말한다. (고후 1:21; 1 요 2:20, 27).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우리의 마음을 다양한 방법으로 만지신다.
B. 미련한 처녀들은 등(사역)은 가졌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사역은 열심히 했지만, 예수님과의 친밀함의 관계는 그들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C.현명한 사역자들은 그들의 그릇에 기름을 채웠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사역을 형성하고 확장하는 것보다 우선순위로 그릇에 기름을 채우는 것을 우선으로 추구한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꿈” 은 예수님과의 관계이지, 우리의 사역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다. 두명의 증인들은 “기름 발리운 자들”이다(슥 4:14).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마 25:8-9)
E.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름을 살 것(준비할 것)을 권면하시거나, 또는 하나님이 정한 그분과의 친밀함을 얻는 과정에 참여할 것을 권면하신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친밀감을 얻도록 투자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말한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계 3:18)
VI.앞으로 임하실 성령님의 물결을 위해 예비하라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Mt. 25:10-12)
A. 이 구절은 구원의 상실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예수님은 신랑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그들을 알지 못하신다고 하셨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표현한 구절은 그들의 구원이 결핍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친밀함이 결핍되어 있음을 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악한 종(마 24:48);, 사악하고 게으른 자, 저주를 받은 자(마 25:26, 41);로 부르는 대신에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마 7:23).
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마 7:23)
B. 고대 유대인의 결혼풍습은 며칠 밤을 지내면서 축하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었다(부자들은 원칙적으로 7일밤을 지냈다). 결혼하는 신랑, 신부와 가까운 사람들은 첫째날 밤과 그후에 따라오는 밤들에도 초대 받았다.
C. 결혼 축하연이 7일동안 진행되는 동안, 유대인들은 각 밤마다 각기 다른 부분을 강조하여 축하하곤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도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될 마지막 때에 완전한 부흥이 이루어지도록 각기 다른 “성령의 물결”을 부어주신다(계 19:7-9).
D.오로지 신랑되신 예수님을 가까이 함으로 준비되었던 자들만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지막때의 부흥에 강력하게 사용되기 위해 준비된 자들을 말한다.
E. 열처녀중에 단지 준비된 자들 만이 어린양과의 혼인잔치의 첫날과 그후에 있을 날들의 연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외 남은자들은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라고 부르짖었다. – 마지막 부흥의 때에 우리를 유용한 자리에 있게 하소서.
F.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권면은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열고 신랑되신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산 많은 자들은 미래에 더 이상의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 25:13)
G.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으러 갈 때에, 지혜로운 자들이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계속적으로 가꾸는 것을 게을리함으로 미련한 자가 되지 말것을 경고하신다(마 25:1).
H. 기름을 채우는 가장 실재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섭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들이 하나님의 총애를 더 얻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은혜를 더욱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자세를 갖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출처: IHOP-ONETHING 2009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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