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3/2010

요한계시록 2-3장에 나타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 (Eternal Rewards to Overcomers in Revelation 2-3) <마이크 비클>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 : 영원한 상급
예수님은 그분의 상급에 대한 깊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22가지 상급들을 언급). 그분은 그분의 마지막 때의 계획 안에서 영광과 위기를 풀어 놓는 동안, 우리가 동기부여되고 견고해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셨습니다. 그분은 재림하실 때 우리가 받는 상급을 보여주십니다( 11:15-18).

이것들은, 확신을 가지고 영원 안에 있는 것을 굳게 붙듦을 통해서, 우리를 참고 견디도록 함으로서 우리의 선택들이 영원 안에서 상급을 받게 할 것입니다. 고난이 하나님의 빛 안에서 나타날 때, 그것을 통해 위협하는 세력들은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구원의 은사를 받은 신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늘의 상급을 받는 방식으로 살도록 신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원이나 칭의는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존귀함( 2:8-9)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상급은 우리의 행위에 의해서나, 위대한 구원을 우리에게 주심에 대하여 예수님께 감사하는 반응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각자 자신의 상급에 있어서 영광의 분량에 있어서 다양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22가지 상급의 대부분은 최소한 초보적인 수준에서는 모든 신자들이 받게 될 것입니다. 2-3장의 논점은 신자가 받는 상급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가에 해당됩니다.

이기는 자만이 이러한 상급의 충만한 분량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계 2-3장에서 이기는 자가 되라고 하실 때에 예수님이 의도하신 것을 가장 합당하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상급들은 모든 사람이 받는 영원한 생명의 기본적인 축복의 다양한 분량들을 의미합니다(고전 15:41).

이러한 상급들은 부차적이거나 무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부르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이 상급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순종은 우리의 상급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상급이 모든 신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와 관계없이 그들에게 충만하게 주어진다고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관점은, 어떤 일들로부터 회개를 요구하시고 끝까지 신실하도록 하는 맥락에서 이 상급을 이해합니다. 계시록 2-3장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거듭나라고 권고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거듭난 신자들에게, 유혹과 박해를 직면했을 때, 더 큰 열심을 갖게 하는 동기로서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약속한 22가지의 상급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로부터 먹음 (2:7)
생명의 면류관을 받음 (2:10)
둘째 사망에 의해 해를 받지 않음 (2:11)
숨겨진 만나를 먹음 (2:17)
흰 돌을 받음 (2:17)
돌에 새겨진 새 이름을 받음 (2:17)
나라들을 다스릴 권세를 받음 (2:26)
새벽별을 받음 (2:28)
흰 옷을 입음 (3:5)
생명책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받음 (3:5)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예수님이 그의 이름을 시인하심 (3:5)
그들을 박해하던 자들이 그들의 발 앞에서 엎드려 절함 (3:9)
그들의 박해자들이 예수님이 그들을 사랑하심을 앎 (3:9)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됨 (3:12)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그들 위에 기록된 예수님의 새 이름을 얻음 (3:12)
사람을 부유하게 할 금을 받음 (3:18)
흰 옷을 입음 (3:18)
더 많이 볼 수 있는 기름부음 받은 눈을 가짐 (3:18)
예수님과 함께 먹음 (3:20)
그분의 보좌에 앉음 (3:21)
  
이기는 자의 부르심에 대한 이해  
이러한 맥락에서 이기는 자는, 예수님이 그들의 삶에서 강조하신 신실함의 특별한 영역들 안에서 성숙하게 된 자입니다.

에베소 교회에게 이기는 것이란, 그들의 삶의 마지막 까지 예수님을 향한 처음 사랑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서머나 교회에게 그것은, 박해 가운데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버가모와 두아디라 교회에게 이기는 것이란, 그들의 삶의 남은 기간 동안 부도덕성과 우상숭배를 저항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사데교회에게 그것은, 그들이 주의 깊게 되거나, 기도 생활을 개발하고, 하나님이 그들의 초기의 시기로부터 그들에게 위임하셨던 것들을 굳게 붙잡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이기는 것이란, 그들의 삶의 남은 기간 동안 성숙한 순종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이기는 것이란, 미지근함을 저항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기는 것이란 자신의 성격에 있어서 완전함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끊임없이 우리의 힘을 다하여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커다란 부드러움으로 우리를 평가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매우 친절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커다란 신실함일지라도 아직 흠이 있으며, 억누르고 깨뜨려 버리려는 욕망 가운데서 유지되는 것입니다. 연약함 가운데서도 신실하다고 평가될 사람의 두 가지 실례는 다윗과 아브라함입니다. 바울은 다윗이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이루었다고 기록했고( 13:22), 아브라함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4:20).

번역 : AHOP 사도적 기도의 집 김재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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