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첫째와 둘째 사망이 있습니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아담이 죄를 지은 후, 하나님께서는 즉시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구속의 경륜을 알리시고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기회가 두 번째 기회이며 이 기회를 주신 분은 우리의 형벌을 대신 짊어지시고 돌아가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은혜로운 사실을 요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는데 사람들은 이 은혜에 대하여 잘못인식하고 은혜를 주신 주님을 모독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이에 보니 흰 말(ἵπποs λευκόs)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活-τόξον)을 가졌고 면류관(στέϕανοs)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6:1~2)
성자 하나님께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어두움과 싸우는 내용입니다. 아담 때 빼앗겼던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에서 많은 선지자들을 보냈었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직접 세상에 와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게 하였습니다. 그의 십자가 사건이후에 사도들과 제자들은 진리의 말씀을 유럽으로 전달하면서 온 세계로 전파되는 시대적인 상황입니다. 당시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해진 박해가 이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서 믿음의 승리를 보여 왔고, 그 결과는 오늘날의 복음세계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잘못 해석하는 내용들을 보면,
첫째는 ‘흰말을 탄자가 적그리스도이며, 그가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어두움의 권세’다.
둘째는 ‘흰말은 희다는데서 성결을 말하지만 면류관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로 가장하는 어두움의 속임수’다.
셋째는 ‘손에 활을 가지고 이기려하므로 주님이 누구와 싸우시겠다고 활을 받았겠느냐? 만물을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주님이 아니라 원수’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해석이 한국교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흰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τόξον)을 가졌고....(2)
살 활(活-life)로 해석될 ‘토쏜(τόξον)’을 영어와 한글성경은 ‘활(弓-bow)’로 잘못 번역되었음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주어 ‘엨온(ἔχων)’은 ‘얻음’이므로, ‘活(τόξον)’은 생명(Relief)을 살림입니다.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를 ‘그(리스도)가 살리는 생명을 가졌고’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뜻이라고 성경은 교훈한다.(요3:17)
활(τόξον)은 성자께서 아버지와 함께 만세전부터 “살리는 생명을 가지셨습니다.” 이것이 τόξον입니다. 인류를 살리기 위해 육신으로 오실 때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심판하는 권세를 받으(ἔχων)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자 예수가 “아담 때 빼앗겼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고 자신이 지상에 온” 뜻이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흰말을 탄자는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리고 흰말은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사자입니다. 어두움의 권세는 결코 성결할 수 없고, 또한 면류관(στέϕανοs)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의 손에는 활을 가지고 이기고 또 이기려 하더라는 말씀은 일찍이 인류에게 주어진 생명이 아담 때 빼앗긴 것을 다시 찾으시려는 그리스도의 노력을 말합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여야 할 조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두 번째 은총을 통하여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 것입니다.
이것이 원죄에서 구원하심(Justification)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첫 시험에 실패한 결과를 변경하거나 없애버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아담으로부터 유전되는 인류의 "원죄를 사해(Justification)" 주셨다고 해서 "완전한 구속(Glorification)"을 이뤄주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첫 번째 실패에 대한 형벌인 죽음을 집행함으로써 하나님 스스로의 존엄성과 권위를 유지하며, 동시에 또 한 번의 기회를 아담과 그 후손들에게 주셔서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놀랍고도 단순한 방법으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의롭게 살든지, 또는 악하게 살든지를 불문하고 제한된 삶의 기간을 연장시킨 후에 죽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첫 번째 죽음은 첫 시험에서 아담이 실패한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아닌 첫 번째 죽음에서 생명이 연장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서서 죽기 전에 자신의 생애 동안에 개인적으로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답해야 합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영원한 운명은 두 번째 시험이었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Sanctification)의 조건을 어떻게 이루었느냐(성화)에 따라서 하늘나라와 연단장(Bema)으로 결정될 것이며, 같은 하늘나라일지라도 첫째하늘(Paradais), 둘째하늘(Baselleia), 셋째하늘(Sion), 예루살렘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사람이 두 번째 시험에서 실패한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의 시험의 기회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죽음은 “둘째 사망”이라고 불리는 영원한 죽음(유황불 못)이 될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2)
인류는 아담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모두 죽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사망입니다. 이 사망에서 인류를 구원시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구원의 문을 열어놓으셨을 뿐이지 이 자체만으로 인간을 성화시켜 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삶을 얻었다”하지 않으시고 “삶을 얻으리라(ζωοποιηθηονται)”하셨는데, 이 단어는 미래 직설법 수동태이므로 개인적인 삶의 결과(성화)에 따라서 완전한 구원(Sanctification)이 결정된다는 말씀을 오역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속의 계획 속에서 첫째사망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삶이 연장되도록 하신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기초한 심판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그 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단지 유황불 못에 던져 죽이려고 악인들을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너무 잔인하고 독재적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왜 그들을 그냥 첫째사망의 권세아래 놔두시지 않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죽음은 아담의 후손인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위와 결정에 따라 심판을 받는 것이 공정한 처사입니다. 그래서 행함대로 심문받고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기에 성화가 이뤄지지 않은 원죄사함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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