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2009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복음(1)


갈라디아서는 그 처음이  저주를 받을 찌어다 로 부터 시작하는 격앙된 어조로 시작하는 성경이다. 사도 바울을 격분 시킨자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거짖 형제 들로서  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와 많은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었던 자들이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다고 17절에서 분명히 말한다. 이 말은 다른 복음은 없으니 다른 복음은 그야말로 거짓 복음이라는 것이다. 바울의 변증을 들어보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쫓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찌어다.(1:6-8)

오늘날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상실한 것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대적자에 대한 적개심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바르지 못한 것에 대한 격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44:23)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2:2)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분별은 분명히 교만하거나 잘못된 행위가 아닌것이다. 옳지 않은 것을 분별하지 않거나 못 한다면 이는 마치 진리를 바로 깨달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바울이 전해준 십자가의 도를 속히 떠나 버렸다. 그리고 다른 복음(거짓 복음)을 쫓아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3:1)하고 책망을 한다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1:1)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옹호한다. 자기는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 고 한다. 그러한 그가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것도 아이고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갈라디아교회에 복음을 전하였것만 그 복음을 지키지 않고 다른 복음을 쫓아간 그들에게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아 너희를 누가 꾀더냐고 격분된 그는 힐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짓 형제들은 복음을 어떻게 변질 시켰는가?
그들은 크게 두가지를 들어 바울을 공격했다. 첫째는 바울은 참 사도가 아니라고 하며 자신들이야 말로 예루삼렘에서 파송된 참 사도라고 자처했다. 그리고 두번째는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할례를 받아야 함은 물론 율법에 명시된 절기들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까지 옹호 하면서 갈라디아 교인들을 사람들아! 라고 비하하면서 까지 저렇게 격분해 있는 까달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필히 수호하기 위해 서였다. 왜 그?는가 복음은 여러것이 아닌 단 하나로서의 존엄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 외에는 다른 복음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복음만이 곧 진리에 속한 복음이라는 것을 갈라디아 교인들이 알아야만 하나님으로 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바울은 먼저 깨달고 있었던 것이다.

올바른 것은 권위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바른 것이 틀린 것으로 될때 격분되야 하는 것 역시 맞다. 기독교가 이토록 진리에 속한 권위를 상실하고 쉽게 비뚤어진 방향으로 흘러갔기에 이단도 나오고 비진리에 속한 설교도 남무한 것이다.

혹자들은 고상한 자신의 도덕적 인품을 내세우며 자애스러운 태도로 다음과 같은 식의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저들이(갈라디아인들과 현 교인들) 예수를 안 믿는 것도 아니고 어쨋던 좀 틀리게는 믿어도 예수 믿고 있는것은 확실한것 아닌가? 너무 편협된것 아닌가? 이래 믿으나 저래 믿으나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구는가? 도리어 까다롭게 구는 너가 잘못된것 아닌가? 하는 등등의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듣기는 그럴사 하고 이해를 해줘야만 하는 듯한 심정이 가는 설득인듯 싶으나 미안하지만 이 역시 분명 맞지 않다.

구원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만 얻어지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다시말해 예수님의 피와 살의 제사를 기념하는 것만으로 행하며하나님 존전으로 나가지 않으면 누구든지 온전한 죄씻음과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 진리요 참 복음인 것이다. 이 복음에 다른 그 무엇을 첨가 시키려는 행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1:7)하는 다른복음(거짓복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거짓복음을 쫓아가는 사람들은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5:4)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순수한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만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온전한 구원이 되는 것이다. 구원은 100% 하나님의 은사요,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교인들은 마치 이 구원을 얻음에 있어서 자신들도 무엇인가를 보태고 행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한다. 타락한 이 육체에서 나오는 그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그러나 그것은 무모한 짓이다.

인간의 죄성은 구원을 얻었다 하여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의 죄성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저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월절날 그들의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졌듯, 우리 역시 이 죄성위에 발라짐으로 인해 저주가 넘어가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인정 된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그 복음이요 우리가 저주를 받지않고 피할 수 있는 참 복음인 것이다.

육신은 자꾸만 자랑 하려 한다. 공로를 세우려 한다. 그러나 이 모든것은 성경이 부질없는 교만이요 탐심이라고 증거를 한다 바울은 이 복음을 깨달기 전에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였다. 복음을 깨달고 난 후에 율법으로 흠이 없던 자가 아니였다. 다시말하지만 바울은 복음으로 구원 얻는 이 복음의 비밀을 깨달고 난 후에 자기의 의와 율법으로 흠이 없는 것 이 모두가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 것인가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10:3)하려는 이 육신의 자랑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것 (4:16)이 되는 것이다.

또 다시 바울을 보자 그러나 나도(바울)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3:4) 라고 바울은 말한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3:7-9)라고 말한다 허나 이뿐만이 아닌  이제 다음에서는 또 무엇이라 하는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위의 뜻은 무엇인가? 바울은 스스로를 자랑한다 쳐서 율법으로도 따진다면 누구보다도 흠이 없을 자신이 있고, 육체를 신뢰하여 구원을 얻는다 해도 누구보다도 더 그 구원에 이를만한 자격이 갖추어진 자신이 있는 자다 한다.  그러나 복음이 말하는 구원은 바울 자신의 그런 육체의 자랑 꺼리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으로 바울은 영적으로 잘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갖은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그 의는 하나님께로서 난 의가 된다고 자신의 믿음과 구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믿을려면은 우리의 율법적 행위와 육체적 신뢰감을 떨쳐 버리는 것이 먼저 되야만 한다. 우리의 의와 육체 가운데서 나오는 모든 것은 다만 배설물로만 여겨야 한다. 육신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본질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육신에게 억지로 모양새를 갖추거나 억지로 온전하고자 노력을 가한다 해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다른 복음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만으로만 사람이 의롭게 되고 구원에 이르게 되고 온전한 천국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영적으로 분별하여 보는 영안이 열려야 한다.

<출처: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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