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2009

예수님의 인성


1. 육신 안에 나타난 하나님
성육신 안에서 그리스도는 육신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딤전 3:16). 그분은 아들로서 뿐 아니라 아버지, 아들, 영이신 온전한 하나님으로 육신안에서 표현되셨다. 바로 그 하나님인 말씀으로서 그리스도는 육신이 되셨다(1:14). 그러므로 그분은 육신 안에 표현된 하나님 - 삼일 하나님- 이시다.

우리가 성육신 되셨던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서뿐 아니라 온전한 하나님으로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요한복음 1 14절은 하나님인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말한다. 말씀이신 이 하나님은 부분적인 하나님이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온전한 하나님 - 아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영 하나님 - 이시다. 신약은 육신 되셨던 말씀이 아들 하나님이셨다고 말하지 않는다그 대신 신약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은 온전한 삼일 하나님, 즉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셨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성육신 안에서 그리스도는 육신 안에 나타난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전통적인 가르침의 영향 때문에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이 아닌, 아들 하나님만 성육신이 되셨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실상 신약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 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약은 하나님이 육신 안에 나타나셨다고 말한다. 이것은 온전한 하나님이 성육신 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육신과 인간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은 육신안에 나타나셨다. “육신 안에서”란 말은 사람의 모양 안에서, 사람의 형체 안에서를 의미한다.(8:3,2:7-8). 사람의 모양으로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으나 그분은 사람 안에 나타난 하나님 이셨다.

2. 하나님의 본질을 갖고 성령으로 잉태됨
그리스도는 하나님 - 사람이시다. 하나님 - 사람으로서 그분은 신성한 본질을 갖고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1:35, 1:20). 누가복음은 하나님 - 사람이 어떻게 잉태되셨는가를 우리에게 말함에 있어서 독특하다. 그분은 사람이 아닌 신성한 본질을 가진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성령은 사람에게 도달하신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 - 사람의 잉태 안에 성령은 인성 안으로 오셨다.

하나님- 사람이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그분은 거룩한 본질, 하나님의 본질을 갖고 계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본성보다 한층 더 내재적인 어떤 것을 지칭하는 강한 의미로 ‘본질’ 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본질이란 어떤 실체의 내재적인 구성요소이다. 하나님 - 사람은 신성한 본성뿐 아니라 신성한 본질을 가진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하나님 - 사람의 잉태에 대하여 누가복음 1 35절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말한다. 구름이 변형의 산(17:5)과 성막(40:34,38)을 덮은 것처럼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었다. 이 구절에 따르면 성령은 그녀가 주 예수님을 잉태하도록 능력으로서 다만 마리아의 위에 오셨던 것 같다. 그러나 마태복음 118절과 20절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을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성령으로부터 나온 거룩한 본질이 그녀가 주 예수를 낳기 전에 마리아의 태에서 생성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3. 사람인 처녀에게서 나셔서 사람의 본질을 갖고 계심.
하나님-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사람인 처녀에게 나셨으므로 인간의 본질을 갖고 계신다.(1:31,4:4). 그리스도는 사람의 본질을 가진 사람인 처녀에게서 나셨다. 누가복음 1 27-31에서 우리는 마리아라 이름 하는 한 처녀가 그 이름이 예수라 하는 한 아들을 그녀의 태 중에 잉태하여 낳았음을 본다.

하나님- 사람은 신성한 본질이 있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사람의 본질이 있는 사람인 처녀에게서 나셨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신성한 것과 사람에 속한 것의 두 본질이 있다. 신성한 본질과 인간의 본질 둘 다를 갖고 이루어진 사람인 처녀 안에서의 성령의 그러한 잉태는 제삼의 본성을 산출하지 않고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을 둘 다 소유하고 있는 온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사람이신 분, 하나님-사람을 산출하는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과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성육신 안에서의 가장 놀랍고도 뛰어난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하나님- 사람의 잉태는 신성한 능력에 의해서 뿐 아니라 신성한 본질에 사람의 본질이 더해져서 두 가지 본성들 - 신성과 인성- 을 가진 하나님- 사람을 낳는 것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성육신이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육신 안에서 그분이 표현되실 수 있도록 그분 자신을 인성과 연합시키셨다. 어떤 성경교사들은 그리스도의 잉태에서 연합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실패했다. 고대의 연합이란 단어에 관한 논쟁은 주 예수님의 인격에 있어서 신성한 본질과 인간의 본질의 연합에 관한 논쟁이었다. 이러한 연합을 이해하지 못했던 어떤 이들은 그것이 신성하거나 인간에 속한 것이 아닌 어떤 재삼의 본성을 산출되게 했다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하나님도 아니고 완전히 사람도아닌, 하나님도 사람도 아닌 어떤 재삼의 본성을 가진 제 삼의 실체라고 말하는 것은 커다란 이단이다. 주 예수님에 대하여 신성한 본질과 인간의 본질과 의 연합이 완전히 인성에도 속하지 않고 완전히 신성에도 속하지 않은 본성, 제삼의 본성을 산출했다고 말하는 것은 이단적인 것이다. 웹스터의 소사전(Webster's Abrided Dictionary)에 주어진 연합이라는 단어의 첫 번째의 정의는 “( 가지를 다른 것과 혹은 둘 또는 그 이상의 것을 함께) 결합하고 연결하는 것, 특히 그 결합에서 원래의 요소들은 그 결합 안에서 구분할 수 있는”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둘 또는 그 이상의 것들이 함께 연합될 때, 그것의 본성들은 잃지 않고 구분할 수 있도록 남아 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상항이다. 그분은 두 가지 본질, 신성한 본질과 사람의 본질로 잉태되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시다. 그러나 그분 안에는 신성한 본질과 사람의 본질이 남아 있고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본질들은 제 삼의 본성을 산출하지 않고 한 사람이신 그분 안에 연합되어 있다. 하나님- 사람이신 그분은 두 가지 본성을 소유하고 계시며 그분 안에서 각 본성은 구분될 수 있다.

4. 인간 생활 안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앞 장의 메시지들에서는 주로 신성한 요소 안에서의 그분의 인격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요소 안에서 그분의 인격을 볼 필요가 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리스도의 이러한 측면 역시 하나님의 분배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의 존재 안으로 분배하시기 위해서 그분이 사람이 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기 전에 먼저 그분 자신을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분배하셔야만 했다. 우리는 성육신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되어 사람인 처녀에게서 나셨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잉태와 출생을 인하여 그분은 신성한 본질과 사람의 본질 둘 다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셨을 때, 그분은 신성한 본질과 사람의 본질을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사람이셨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사람이신 그분을 그분의 인생에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5. 사람의 아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심
인생 안에서 그리스도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난 인자이셨다. 그분은 인자이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한 사람으로 사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8 20절에서 주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인자이신 그분 자신을 언급한다. 그분의 삶 속에서 주 예수님은 계속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사셨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2 8절은 그분의 인생에서 그분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말한다. ‘모양’이라는 말은 외부적인 모습, 외관을 뜻한다. 이것은 빌립보서 2 7절의 ‘형체’의 특별한 반복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인성 안에서 보였던 것은 사람의 모양으로 되어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사람의 모양,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심은 그분의 자신의 낮추심이었다. 이는 그분이 사람이었을 때 그분의 어떤 것도 주장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다. 첫째,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자신을 비우셨다. 그 다음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실 정도로 자신을 낮추셨으며 죽음에 이르도록 순종하셨다( 2:7-8)

6. 뱀의 모양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뱀의 모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듣고 매우 놀랄지 모른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4-15). 여기에서 주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들어 올린 놋 ,을 자신에게 적용시킨다(21:4-9).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고 반역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불뱀 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더라" (민 21:6). 그럴 때 백성들이 모세에게 와서 그들이 여호와와 모세를 거스려 말하는 죄를 범했음을 자백했다. 그들은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제거해 주시도록 기도해 주기를 구했다.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을 때 주님은,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8)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놋 뱀을 만들어 그것을 장대위에 달았다."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9).

민수기 21장에 있는 사건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예표를 계시하기 위하여 하나님에 의해 주권적으로 예비 되었다. 장대 위에 달린 놋 뱀은 요한복음 3 14절에 따르면 뱀의 모양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타락한 모든 사람들인 우리 모두는 악한 자, 뱀에게 물렸다.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뱀에게 물려 독을 주입받았을 때 물린 바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본성 안의 뱀의 독을 가지고 있는 뱀 같은 존재들이다. 하나님의 눈에 모든 타락한 인류는 독 있는 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한 뱀들인 우리에게는 어떤 대체물이 필요했다. 우리에게는 뱀의 모양은 있으나 뱀의 독 있는 요소는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어 주시는 것이 필요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뱀의 모양을 가지고 계셨지만 뱀의 독성을 갖지 않았다는 것에 매우 분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상 뱀과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 안에서 옛 뱀, 마귀의 자손들이기 때문이다.(요일 3:10). 이런 이유 때문에 주 예수님은 마태복음 12 34절에서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 이라고 부르셨다. 마태복음 23 33절에서 그분은 그들을 가장 독이 많은 뱀의 종류의 자식, 뱀들, 독사의 자식들이라 부르셨다. 마귀는 죄인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에(8:44), 죄인들은 마귀의 자녀들이다. 죄인들은 또한 뱀들이며, 독사의 자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에 우리는 타락한 본성 안에서 죄가 있을 뿐 아니라 뱀과 같은 존재이다.

뱀은 ‘옛 뱀’이라고 불리 우는 마귀의 상징이다. (12:9). 의심할 여지없이 주 예수님은 사탄, 마귀, 옛 뱀을 ,처리하기 위하여 뱀의 모양을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주 예수님은 옛 뱀, 마귀의 머리를 깨뜨린 것도 뱀의 모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하심을 통해서였다( 3:15). 그런 방식으로 그분은 이 세상의 통치자를 심판하셨다

7. 육신을 입으심
성육신 안에서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으셨다. 육신 안에서 이 사람은 의복에 비유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이 ‘의복’을 걸치셨고 입으셨다. 그러므로 그분이  땅에서 살고 행하셨을 때 내적으로 그분은 하나님이셨으며 외적으로는 육신 안에 계신 사람이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의복이신 이 사람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에 대하여 히브리서 2 14절 상반절은,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혈육에 참여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리킨다. 우리는 본성에 있어서 우리와 다른 구주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똑 같이 되셨지만 죄는 없으셨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하나 되기 위하여 육신 안에 오셨고 혈육에 참여하셨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바로 하나님이 육신 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 14절에 따르면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왜 그분은 육신은 육신이 되셨는가? 그분은 우리와 같이 되시려고 육신에 참여하셨다. 그러므로 성육신을 통하여 그분은 우리 수준에 사람으로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실지라도 그분은 우리의 수준으로 오셨고 우리의 본성에 참여하셨다.

요한일서4 2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여기의 ‘영(spirit)'은 예수의 신성한 잉태를 시인하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셨다는 것을 확신하는,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으켜진 참된 선지자의 영을 가리킨다. 그러한 영마다 분명히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예수는 그 영으로 잉태되셨다(1:18). 예수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시기 위해 신성하게 잉태되셨음을 시인하는 것이다(1:31-35). 그분은 육신으로 태어나시기 위해 그 영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그 영은 그분의 신성한 잉태를 통하여 육신 안에 오셨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성육신 안에서 그분의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육신 안에 계신 사람 곧 육신을 입은 사람이 되셨다.

8.믿는이들을  위해 죄가 되심
그분의 죽음 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시기까지 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고후5:21).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를 죄가 되게 하셨음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접촉이나 개인적인 체험에 의한 그러한 방식으로는 죄를 모르셨다(8:46, 벧전2:22, 4:15,7:26). 체험적으로나. 직접적 접촉에 있어서 주 예수님은 죄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으며,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죄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도록 죄가 되사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
  
죄는 하나님을 거스려 반역한 사탄으로 부터 왔으며(14:12-15), 사람안으로 들어가(5:12) 사람으로 죄인 되게 했을 뿐 아니라 죄 그 자체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육신 안에서 사람이 되셨을 때(1;14), 그분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있도록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에 의해 심판받기 위해(8;3)죄가 되셨다(죄가 있는 것이 아님). 그분이 십자가에 계셨던 마지막 세 시간 동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눈에 죄가 되셨다. 하나님이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던 것은 바로 그 시간 동안이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셨던 분으로서 우리의 대치 물이신 그리스도는 영 단번에 하나님에 의해 심판받으셨다.

9.육신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죄로 하여금 하나님에 의해 육신 안에서 정죄되게 하심
그분의 죽음 안에서 혈육을 입은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죄로 하나님에 의해 육신 안에서 정죄 받도록 했다. 로마서 8 3절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라고 말한다. 육신은 죄에 속한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은 진실로 육신이 되셨다(1:14,2:14,딤전3:16). 그러나 그분은 단지 육신의 모양으로 계셨을 뿐, 육신의 죄에 참여하지 않으셨다. 로마서 8 3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육신 안에서 죄를 정하셨다.

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 형태로 보내셨다. 이것은 죄가 어떤 요소 안에 거주한다는 것과 이 요소는 사람의 육신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의 육신은 죄의 거처이다. 죄는 우리 육신 안에 거한다. 더군다나 죄는 사실상 우리 육신과 하나가 되었으며, 우리 육신은 사실상 죄의 성육신이 되었다. 성육신이란 전에는 밖에 있던 어떤 다른 것이 그것 안으로 들어와 그것과 하나 되는 것을 말한다. 어느 날 하나님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는 성육신 되셨다. 이런 식으로 사람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되었다. 동일한 원칙으로 죄는 우리 육신과 하나가 되었으며, 그것은 죄의 성육신 이었다.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하나님을 죄에 대하여, 죄를 처리하기 위하여, 심지어 그것을 폐하기 위하여 보내셨을 때, 그분은 죄 있는 육신의 실재 안에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죄 있는 육신의 모양, 형태 안에서 보내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죄의 성육신인 육신의 모양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을 죄에 대하여, 죄를 처리하기 위하여 보내셨다. 로마서83절은 하나님이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음을 분명히 계시한다. 누구의 육신 안에서 하나님은 죄를 정죄하셨는가? 그 대답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심을 받았던 분인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 안에서 하나님이 죄를 정죄하셨다는 것이다이 육신 안에서 하나님은 죄를 정죄하셨다. 요한복음 1 1절과 14절에 의하면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영원한 말씀의 성육신인 이 육신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셧을 때, 하나님은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 안에서와 그분의 죽음 안에서의 그분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다.
  
그리스도는 혈육을 입은 사람이셨으며, 혈육을 입은 사람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한 혈육을 입은 사람으로서 그분은 죄에 속한 육신의 죄 있는 본성이 아닌 죄의 육신의 모양만을 가지셨다. 그분의 육신 안에는 어떤 죄도 없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죄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인성은 어떤 면에서 죄와 관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분이 혈육을 입은 사람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죄로 육신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정죄 받게 했다. 다른 말로 한다면,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역사를 통하여 내주하는 죄를 정죄하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신 것을 통하여 그분의 죽음 안에서 어떤 역사를 성취하셨다.

<출처: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