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8:3)
오늘은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해 주신 것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롬7:12)/(딤전1:8) 그러나 그 선(善)한 율법이 도리어 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을 의롭게 하는 일은 못 한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 증언이 로마서 3장20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한 바로
그 증언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11절에서도 율법으로는 아무나 의롭게 되지 못함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법대로 정죄하는 일 밖에는 못합니다. 율법은 도리어 진노를 이루게 합니다. (롬4:15) 율법은 죽이는 일은 해도 살리는 일은 못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하려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갈5:4)가 되는 엄청난 저주를 받는 것이나 다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본절에 나타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 이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그 뜻은 육신을 입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아무나 연약하다는 것을 성경이 입증을 해 주고 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그 누구라도
율법의 완전한 요구를 이룰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할
수 없는’ 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증언하는 말씀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이 연약한 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 여기서
그것은 또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길, 즉
죄인을 의롭다고 여겨주는 일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한다고 합니까? ‘하나님은 하시나니’ 라고 가르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로 하나님이
친히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만 할 정죄를
자기 아들에게 대신 죄를 정하시고 그 아들을 죽이심으로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4) 는 복음의 증언이 성립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복음의
진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21절에 보면은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귀절 속에는 보시는 봐와 같이 죄의 왕과
은혜의 왕이되는 두 왕이 나옵니다. 죄라는 왕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다고 합니다. 사단은 사망의 세력(권세)를 잡은 자 입니다.(히2:14)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죽기를 두려워 함으로 그에게 쉽게 굴복하는 것입니다.
반면 은혜라는 왕은 무슨 권세로 왕노릇 합니까?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은혜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은혜의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 이 땅에 나타난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줄 수 있는 권세가 그분의 의로 인해 은혜의 왕이 되시는 예수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은혜의 권세가 우리에게 없었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의롭게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복음을 깨달은 자의 신앙 간증의 노래를 들어 보십시요!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리이다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의 곧 주의
의만 진술하겠나이다 (중간 생략)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대사를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
” (시71:14-19)
주의 의(義)를 우리는 찬양 해야 합니다. 종일 토록 주의 의만 구원이 됨을 찬양
해야 합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소망을 주의 의에만 품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설교자)는
“주의 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대회 중에서 은휘치 아니하였나이다” (시40:10)라고 하는 신앙
양심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참 된 성도는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 (시119:7) 하겠다는 신앙심을 자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롬10:3)
하면 절대 안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노를 이루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 율법의
요구가 연약한 우리 사람들의 육신에게 직접 임하게 되면 하나님의 공의가 저주로 임하게 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의로우신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으로 우리에게 은혜로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일명 칭의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대신 정죄를 받으셨습니다. 그 사건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4:9) 로 나타 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를 참아 보지 못하시는 (합1:13)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곳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자만 의롭다 하십니다. 성경은 밝히 기록 합니다. 성경의 기록을우리는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복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른 복음을
좇아 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말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3:21-27)
율법의 마침은 예수님에게 끝이 났습니다.(롬10:4) 우리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이 엄청난 축복의 복음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또렷하게 증언
하십니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10:29-30) 합니다.
이 복음을 듣는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시여, 부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고백하십시요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시119:142) 하는 신앙심의 고백을 부디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올리시길
바랍니다.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시119:2) 아멘!
<출처: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