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2010

그리스도 이후의 선지자들

어떤 이들은 선지자의 역할이 예수님이 사역을 마치시고 교회시대가 시작되었을 끝이 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적인 기록들이 그리스도의 지상사역 이후에 신약성서에 언급되어 있는 아가보, 바나바, 유다, 실라, 요한 그리고 바울을 포함한 많은 선지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가보는 당시에 있었던 흉년에 대해서 예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그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대로 사도바울을 붙잡히게 것임을 예언했다. “여러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21:10-12)

아가보는 그리스도의 선지자였으며, 바울에게 다가올 일들을 준비할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신약성서의 정경에 포함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의 죽음이후로, 그를 따랐던 사도들과 하나님의 음성을 경험했던 다른 사람들의 예를 포함한 일들의 역사적인 기록이다.

초대교회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초자연적인 표현이 성령의 은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예언은 영적인 지도자들의 새로운 운동에 의해서 표현되어졌을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 모두에게 주여졌고 모두에게 유익했던 은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2세기 중엽에 브루기아에서 새로운 선지자인 몬타누(Montanus) 나타났다. 또한 그를 따르는 여선지자인 프리스라(Priscilla) 막시밀라 (Maximilla) 나타났었다. 참으로 예언은 새로운 운동에 있어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3세기에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순교자의 죽음을 당한 젊은 여선지자인 퍼피튜아(Perpetua) 발견할 있다.

디다케(Didache) 초대교회에서 1세기말 혹은 2세기 초에 사용한 훈련 교본이다. 우리는 디다케에서 선지자에 대한 여러 가지 참고 문구들을 발견할 있다. 이것은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시대에 선지자들의 사역을 존종했었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역사를 통해서 많은 선지자들이 존재했으며, 그리고 어떤 이들은 16세기에 살았던 노스트라무스와 같이 세계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흥미로운 예언을 했던 이들도 포함한다. 그는 그의 예언을 사행시의 형태로 선포했으며 예언들은 치밀한 조사, 검사, 그리고 해석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노스트라무스가 교황의 죽음, 세계대전들, 그리고 2001년에 있었던 세계무역센터의 공격까지도 예언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사행시의 많은 부분들이 매우 애매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예언을 정확하게 해석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예언들 자체로 그것이 진리였는지 분별하기가 불가능하다.

1917 포르투갈 파티마 근처의 3명의 어린 목동이 성무 마리아의 출현 경험했다. 그들은 예수의 어머니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3가지 비밀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파티마 예언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성령 하나님께서 이러한 예언들의 영감을 목동들에게 주었다고 믿고 있다. 번째 비밀은 어린아이들에게 지옥의 비전이 보였다고 한다. 번째 비밀은 러시아의 흥왕과 역사에 있어서 러시아의 흥미로운 역할에 대한 상세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번째 비밀이 가장 흥미로운 것인데 1981년에 있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암살 시도 이후에 이것에 대한 것이 밝혀졌다.

다음이 이것이 포함된 메시지의 중요한 부분이다. “흰옷을 입은 주교, 교황이 순교당한 많은 사람들의 주검 가운데에 있는 십자가를 향해서 나아가는데 그도 역시 총소리가 후에 바닥에 넘어졌고 보기에 죽은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경고의 예언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스도의 선지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셔 말하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응하는 메시지를 말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음악, , 혹은 특별한 행동을 포함하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느낌들 혹은 메시지의 다른 세부사항들을 전달한다. 선지자는 절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박하지 말아야 하며, 비록 그들의 예언들이 전통적인 종교의 견해들에 도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정확하게 나타내야만 한다.

오늘 날도 선지자들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떤 위기의 순간에 선지자는 반대의 상황을 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하고 이것의 성취를 위해서 그와 함께 동의 하도록 한다. 그는 오늘 있는 위기 너머를 보며 미래의 영감으로부터 소망의 말씀을 드러낸다. 고통 가운데 그는 기쁨을 느낀다. 가난 가운데 그는 풍성함으로 인해 감사한다. 선지자의 삶과 메시지는 현재의 제한적 요소들에 대한 반론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피할 없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중재를 신뢰하도록 영감을 불어넣는다.

가톨릭 교회와 선지자들-예언의 가지 유형 1907 3, 가톨릭 교회는 처음으로 가톨릭 사전을 집대성 했는데 그것은 가톨릭의 관심사, 행동, 그리고 교리들에 대한 권위 있는 정보를 전체적으로 모아 분류해  놓은 것이다. 사전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성취한 모든 것들과 예술가, 교육자, 시인 그리고 과학자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지적, 전문적으로 추구했던 것을 공문서화 함으로서 교회를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각각의 주제는 주의 깊게 연구되었고 조사되었다.

선지자들과 예언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그들이 주의 깊게 성경과 다른 역사적인 문서들을 연구하며 게시에 걸쳐 존재하던 오해들을 정리하여 지혜롭게 설명하고 있다.

아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산학대전에 나오는 예언에 관한 가지 설명들이다. 가톨릭 사전에 1913년경 기록된 것으로 나타나있다. 『신비신학의 저자들은 예언을 드러난 주제들과 그 지식이 인간의 마음에 전달해 주는 마음의 조명에 관한 것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조명이라는 근거로 예언은 완전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완전하다고 할 때 어떠한 것들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그 계시 자체도 예언자가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언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는 그 메시지를 받는 사람이 그 계시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거나, 혹은 이것이 예언적인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영이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이다. 이것은 예언적 본능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치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에게 그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삼하7:3)라고 한 경우이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왕에게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는 영과은 다윗왕이 아닌 그의 아들이 누릴 것임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 베네딕트 14세가 인용하였고 성 그레고리가 설명한 어떤 거룩한 선지자들은 자주 예언을 선포하는 것을 통해서 어떤 것들을 예측하기도 하는데, 그들이 예언의 영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고 믿는다.

이 문제를 고찰함에 있어서 성 토마스에 따르면 세 가지 다른 예언이 존재한다: 종결을 통보하는(denunciation) 예언, 예지(foreknowledge)의 예언, 그리고 예정(predestination)의 예언

1. 종경을 통보하는 예언
* 첫 번째로, 하나님은 부차적인 요인들의 순서대로 미래의 일들을 계시하시기도 하신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필요로 하는 원인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종국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지자는 그것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사건들을 선포한다. 예를 들면,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세 선포한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38:1), 이런 종류는 약속의 예언에 속해 있는데, 사무엘상 2:30절의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라고 한 이 예언은 성취되지 않았다. 이것은 엘리 제사장에게 주셨던 조건적인 약속이었는데, 이것의 성취는 다른 원인들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이었다.

2. 예지의 예언
* 번째로 예지의 예언은 하나님이 미래의 일들을 계시하실 나타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원으로부터 현재를 바라보고 계시는 관점과 창조되어진 자유의지에 의존하는 사건들이다. 이러한 예언은 삶과 죽음, 전쟁과 왕조들, 교회와 국가의 일들 그리고 개인의 삶에 대해서 말씀한다.

3. 예정의 예언
* 번째로 예정의 예언은 하나님 혼자만이 하실 있는 일이며, 영원으로부터의 선물이며 또한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계시하실 일어난다. 이것은 은혜와 영광의 예정에 관한 비밀들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과 능력으로 성취하기 원하시는 것과 반드시 성취되어질 것을 포함한다.

예언의 목적 또한 인간의 지식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해 있다.
* 예언이 선지자의 자연적인 지식으로 없는 사건들인 경우에, 인간의 이성적인 영역 안에서 그리고 사건들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알려져 판단된다. 파이우스 5세에게 계시되었던 레판토 해전의 결과를 예로 있다.

* 예언의 주제가 모든 사람의 지식을 뛰어넘는 것일 , 이것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적인 인간의 사고로는 받을 없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의 신비 혹은 예정의 신비로움등을 예로 있다.

* 예언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없는 것들일 , 이것은 그것 자체로는 없는 것들인데 왜냐하면, 그것들에 관한 진리는 자유의지에 결정되어지는 미래가 이직 결정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역이 가장 완벽한 예언의 목적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가장 일반적이며 알려지지 않은 것이며 모든 사건들을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기뻐하는 방법을 사용하셔서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실 있다. 하나님은 자주 예언적인 소통에 있어서 천사들을 사용하시거나, 하나님께서 직접 선지자에게 말씀하셔서 그의 마음을 일깨워 주신다. 초자연적인 예언의 빛이 지성 혹은 감각, 상상을 통해서 전달 되어질 있다. 그러나 이것은 황홀경(rapture)이라고 불리는 신비신학의 용어이다.

토마스는 선지자에게 감각의 인상을 통해서 어떤 것이 전달되어질 감각의 활동이 중지 되지 않으며, 마음이 즉각적으로 깨달음을 얻었을 , 감각의 활동이 중지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계시가 상상력이 만들어 것이라면, 적어도 비전을 보는 순간 혹은 계시를 듣는 순간에는 감각이 정기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이유는 사람이 상상하는 것에 의해서 계시되어지는 대상에 존재하는 외부적인 영향을 전체적으로 고정시키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정지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 영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예언적인 비전이 생성된다는 것에 온전한 판단을 없는 이유는 그것들에 대해서 온전하게 이해하는 필요한 감각들이 활동할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홀경으로부터 온전하게 깨어나 그가 비전의 본질을 분별하고 바르게 있는 때에만 가능하다.

<나는하나님의음성을 듣는다/ 클레멘트/순전한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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