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장막의 회복에 대한 메시아닉 유대인의 관점-AVNER BOSKEY (Part2)
1. Isn’t “911” an Emergency Call? (911은 비상전화가 아닌가?)
다윗의 장막의 회복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아모스 9:11의 맥락과 의미를 고려해보자. 이사야가 그의 자신의 두루마리에 글을 쓰기 일세기전에 아모스가 썼지만, 아모스 9장과 이사야 1-11장은 같은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아모스 9장의 1-10절은 YHVH의 심판이 유대 백성에게 올거라는 것을 묘사한다. 8절에서 아모스는 마지막날에 심판후에 이스라엘에 오게될 자비에 대해 예언을 하기 시작한다. 주님은 하나님에 대항하여 반역한 그들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에 의해 그들의 죄때문에 어떤 나라들을 일소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멸절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죄에 불구하고 다른 불굴의 운명을 갖는다 (8b-9 절).
이스라엘의 물리적인 심판의 날후에,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회복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하나님은 멸망과 포로의 황폐함을 회복할 것이고 유대인들을 West Bank와 Golan,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회복시키실 것이다 (렘50:4-5, 17-20). 그곳에 그들은 폐허를 재건하고 포도원을 다시 심으며 그들의 땅에 영원히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그들 자신이 심겨질 것이다 (13-15절).
이런 맥락의 장소와 더불어(1-10절, 13-15절), 우리는 이제 아모스 9:11-12로 돌아갈 것이다. 이곳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정부, 즉 유대 국가를 다스리는 다윗왕 (이스라엘의 왕)의 왕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리고 이 왕은 유대백성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또한 이스라엘의 적인 에돔(에서의 후손인 아랍인들, 창25:30, 27:38-40, 시137:7-9, 오바댜1-21)과 전세계를 다스릴 것이다.
(암9:11-12) 그 날이 오면 내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고, 그 터진 울타리를 고치면서 그 허물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워서 그 집을 옛날과 같이 다시 지어 놓겠다. 9:12 그래서 에돔 족속 가운데서 남은 자들과 나에게 속해 있던 족속을 이스라엘 백성이 차지하게 하겠다. 이것은 이 일을 이루실 주의 말씀이다.
다시 한번, 이곳의 맥락은 통치적(governmental) 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다윗계보의 왕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모든 열방들을 다스리실 것이다. 이러한 비전은 시편 89:22-27에서도 똑같다: 유대 왕이 다윗 자손으로부터 와서 전 지구상을 다스릴 것이다. 아모스 9:11이 다윗의 회복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같은 히브리어 어원의 용어, 즉 “무너진 터에 울타리는 치는 (gadarti et pirtzeihen)”은 예루살렘에서 다윗 계보의 통치적 다스림이 무너진 것을 애도하는 에단(Ethan)의 시편에서 반복된다 (paratzta khol gderotav, 시편89:40).
아모스는 다윗의 예루살렘에서 왕궁의 찬란함을 자신의 눈으로 보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이러한 솔로몬의 찬란함이 어느날 무너지고 다윗의 자손들이 궁전대신에 sukkot (field huts, 들판의 오두막집)에서 그들의 피난처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다윗 계보와 다윗의 유대백성들의 이러한 겸손케 함 이후에야, 회복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즉, 유대 백성들을 심판한 후에), 내가 무너진 다윗의 초막(sukka)을 일으키고, 그 터진 울타리를 고치면서 그 허물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워서 그 집을 옛날과 같이 다시 지어 놓겠다.” 아모스 9:11은 통치적 권위 회복, 이런 권위의 전세계적인 휩쓸음, 이러한 권위의 유대적 다윗 계보의 기반을 예언하고 있다.
다윗계보의 다스림이 예루살렘에 회복될 때 모든 종류의 축복이 올 것이다. 다윗 계보의 통치적 다스림의 온전한 회복이 오면, 성경에 묘사된 미래의 축복은 평화 (사2:4), 우주적 공의 (사9:7), 타락의 영향의 제한(사11:6-9), 에루살렘내 YHVH의 실질적인 임재 (렘31:6, 겔48:35, 사33:21-22), 유대인들의 풍미와 더불은 모든 열방을 위한 기도의 집이 있게 될 모리아 성전 산 (Temple Mount Moriah, 사56:7). 사시사철 물의 공급과 더불어 장미처럼 꽃을 피는 Negev 사막 (사35:1-10), 그리고 이스라엘과 전세계를 비로 축복하는 것 (욜2:18-27, 슥14:17)을 포함한다. 다윗의 언약의 온전한 회복은 이스라엘과 전세계에 실질적인 축복이 넘쳐흐리게 할 것이다 (사27:6, 55:3, 12-13).
2. Doesn’t Prophecy Concerning the Jews Really Refer to the Church? (유대인들에 관한 예언이 정말로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질문은 많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종종 드는 질문이다. 이 질문 바탕에는 어떤 신학적 주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숨겨진 주장들을 추적해보아야 한다.
이러한 주장의 Part 1은 예수아 (예수님의 히브리 이름)는 다윗의 더큰 자손 (David’s Greater Son)으로 유대 백성들과 전세계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성경적이고 진실이다.
Part 2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대다수가 메시아를 거부했을때, 예수아는 유대 백성들에 대한 그의 원래 약속을 거부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이것은 거짓이다; 롬11:1-2을 보라). 예수아가 새언약 (New Covenant)을 시작했을때, 그는 메시아닉 왕국의 모든 성경적 약속의 의미를 영원히 변화시켰다 (이것 또한 진실이 아니다, 롬11:29을 보라). 십자가 사건전에는, 있는 그대로 이러한 약속 (이땅에 하나님 나라가 올것이고 예루살렘에 중심을 두고 유대백성 주위를 도는 하나님 나라가 올 것이라는 약속)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십자가 사건 이후, 이러한 약속은 이제 어떤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것 또한 진실이 아니다; 눅22:29-30을 보라).
Part 3는 예루살렘에서 전세계에 대한 다윗의 통치(Davidic rule) 회복을 포함한 실질적인 유대의 회복의 모든 약속들이 다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유대백성을 통해 전세계를 다스리는 것으로 말하는 대신, 예수님이 모든 크리스천 신자들을 다스린다는 의미로 이해되야 한다. 어떤 유대적 맥락도, 어떤 유대 회복도, 어떤 다윗 왕조도 없다. 이러한 신학은 다윗과 그 자손을 예언적으로 거세하는 시도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모든 약속들은 다시 재해석되거나 (당신의 관점이 이방인의 것이라면) 또는 빼앗긴다 (당신의 관점이 유대적이라면). 이제 이러한 약속들은 주로 이방인 교회를 말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입장은 대체 신학 (Replacement Theology, 즉 하나님이 유대인을 이방인으로 대치했다는 신학) 또는 교체 신학(Supercession Theology ,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교체했다는 신학)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신학은 사실상 영성에 있어 신학적으로 강도 행위에서 오는 허위이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1:18,20,25,29에서 이방인 신자들에게 경고한다: “유대백성들에게 교만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향해 우쭐해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부르심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의 메시아에 의한 유대백성들의 부르심과 은혜의 선물은 철회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왕조의 실질적인 회복을 포함한다. 어떤 이방인들이 YHVH가 메시아닉 왕국을 약속한 원래 백성들을 버렸다고 말할때 조차,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준 그의 선한 말씀들을 성취하실 것이다 (렘30:17, 31:20).
그러므로 진실은 하나님이 유대인보다 이방인을 더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의 유대백성들을 거부했거나, 그가 그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롬11:1-2). 이스라엘의 전체 영토에 유대인들의 실질적인 회복의 약속 (렘31:5-6, 50:19), 전 유대 국가의 영적 구원 (렘31:31-34; 50:20), 그리고 다윗 왕조의 통치적 회복 (암9:11-12, 사2:1-5, 렘33:19-26) 은 이스라엘에 실현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the zeal of the YHVH of armies)이 이를 이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3. Amos 9:11 in the New Testament (신약에서 아모스 9:11)
사도행전 15:13-18에서, 사도 야고보는 아모스 9:11을 언급하면서 이방인들이 유대주의로 전향하는 것 없이 메시아의 유대적 몸 (Jewish Body of Messiah)에 받아들여져야만 하다고 선포했다. 그의 주요 논점은 3가지이다: 하나님은 최근에 이방인들의 구원에 관심을 나타내셨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히브리인 예언자들의 비전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과정을 가능한한 복잡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야고보의 아모스 9:22에 대한 인용은 septuagint (LXX), 히브리 성경의 그리스 번역본에서 왔다. 이번역본은 히브리 본문을 약간 다르게 읽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다른 의미가 다윗의 장막 개념에 대한 의미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그것은 다른 단어 “Edomites”와 연관된는데, 질문은 그 말이 Edomite로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인류 나머지로 읽어야 하는가 이다. 이것은 다음 시간에 토의할 흥미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야고보의 요점은 단순히 이것이다. 사도들은 마지막대에 하나님께서 전세계에 대한 다윗의 메시아닉 왕국을 재건설하실 것을 알았다. 그들은 이것이 예수아의 부활 바로 직후에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으나 (행1:6-7), 예수아는 이러한 정확한 날짜는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다윗의 보좌의 온전한 회복을 기다렸기에, 야고보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메시아를 찾기 시작하는 것에 유대인 신자들이 놀라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왜 그런가? 이곳에서 야고보는 마지막 때에 이방인들사이에 있을 영적 각성이 어떤 방식으로든 다윗 왕조의 회복과 연관된다고 예언한 아모스의 예언적 증언을 상기 시킨다.
지금 우리시대에도 다윗 보좌의 충만함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26:6-7, 딤후2:9, 히2:8, 마19:28, 시122:5, 롬11:12). 성경은 또한 대부분의 신자들의 충만함이 열방과 유대인의 추수의 충만함을 기대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는 것에 의해 다윗 왕조 시대의 회복의 충만함을 기대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요약하면: 야고보는 아모스 9:11이 다윗의 메시아닉 아들 (Messianic Son of David)이 나타나는 때에 이방인들이 믿음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우리를 준비시키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야고보는 많은 유대인들이 메시아 예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갖을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십자가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야고보는 그가 죽은 몇세기후에 어떤 이방인들이 이상한 가르침 (다윗왕조와 유대인의 온전한 회복이 일어날 것을 부정하는 것)을 들었을때 매우 놀라고 화가 났으텐데…. “여러분, 당신들은 그것을 볼 수 없습니까? 이방인 구원에 대해 아모스의 말씀들이 우리 시대에 실현되기 시작했다면 언젠가 아모스의 다윗의 통치 회복을 설명하는 미래에 대한 말씀들도 또한 실현될 것이입니다!”
많은 세기동안, 많은 유대인들과 더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아를 믿었으나, 다윗의 왕조의 충만함은 아직 꽃피지 않았다. 그러나 곧 엄청난 수의 이방인들이 믿음을 갖게 될 것이고, 나라로서 이스라엘이 불을 통해 구원을 받을 것이고, 예수아가 예루살렘의 다윗의 보좌를 세우기위해 돌아올 것이다.
4. Honor the Jewish People - Don’t Steal Their Promises! (유대백성들을 존중하라 - 그들의 약속들을 훔치지 말라!)
RDTM이 다윗의 장막의 예언적 회복이 교회의 예배와 중보기도에 의해 성취될 것이라고 가르칠 때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 결과는 많은 이방인들이 예언에 대한 분별력이 무디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에 대한 예언적 약속들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의 충만함은 오직 이방인 교회를 위함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바울은 가지들(branches)의 이러한 교만에 대해 경고한다. 이것은 유대백성에게 주어진 약속들을 훔치는 일이다. 이것은 또한 매우 나쁜 방법이다.
이런 문제의 다른 파트는 성경이 유대인을 저주하는 자들을 저주하도록 명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12:3), 이것은 소위 “Israel mandate”라고 불리워 진다. 유대인들로 부터 그들의 예언적 미래를 강도질하는 것, 예수아의 현재 그리고 미래 다윗 계보에 관해 교회를 혼동시키는 것,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중보기도해야하는 교회의 우선순위에 대해 침묵하는 것, 이러한 행동과 태도는 메시아 예수님의 교회에 대한 영적인 저주를 야기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몸이 예언적 예배를 통해 교화되고 격려받기를 의도하신다. 하나님은 중보기도와 더불어 이땅에서 그의 마음의 목적을 성취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이방인 자녀들이 열방중에 그의 첫번째 자녀인 이스라엘을 존중하고 우선순위를 두기를 원하신다.
(출4:22-23, 신21:15-17, 롬1:16, 2:5-11, 3:1-2, 9:1-5). 이것은 RDTM이 그들 자신의 찬양과 기도 관점으로만 다윗의 장막 회복을 정의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다윗적 회복(Davidic restoration)은 왕되신 예수아에게만 속한 것이고 그것은 예수님이 그의 유대백성과 전세계에 대한 그의 통치적 다스림을 발휘하고자 보좌위에 오실때 예루살렘에서 능력있게 성취될 것이다.
메시아닉 유대인 신자로서, 우리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간청한다: “여러분이 우리의 ‘장난감들’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메시아닉 약속들, 그중 몇몇은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을 사용한 후에, 그것을 제발 훔쳐가지 마세요! 하나님의 사랑과 이스라엘의 사랑으로 그것들을 선반위에 다시 제대로 놓아주세요. 우리 백성들은 이 약속들이 우리의 구원과 생존, 그리고 국가적 부흥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위해 기도할 여러분들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의 보호, 우리의 구원, 열방들에 부흥을 가져올 우리의 부르심의 성취를 위해서….” (롬11:15).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중심에 세우기를 원하시는 유대적인 기도의 집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사56:3-8). 우리는 예배와 중보기도에 대한 계시가 얼마나 많은 지역들로 퍼져나가고 있는 지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어느날 하나님 자신의 가르침이 시온에서 퍼져나오게 되고 주님의 말씀의 순수한 엑기스가 예루살렘으로 부터 빛을 발할 것을 기억하자 (미4:1-5). 지금 이순간 조차, 미래를 살기 시작하자!
5. A Heart Like David’s (다윗과 같은 마음)
RDTM의 마음은 선하다. 그것의 대부분은 선한 믿음속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열린 마음의 예배와 민감한 중보기도로 주님을 섬기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운동의 장점으로 부터 잇점을 이끌어내기를 원한다.
RDTM은 예배를 향한 다윗의 마음에 촛점을 맞춘기에 히브리어 성경으로 부터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자라는 묘사를 끌어낸다. 다윗의 삶과 마음은 쫓아가야할 놀라운 모델이다. 이 운동이 모델로서 다윗에게 촛점을 맞추는 한, 그리고 “우리는 다윗이 했던 것처럼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영으로” 하고 말하는 것에 의해 그들의 활동을 묘사하는 한, 그들은 안전한 영역에 있는 것이다. 그들의 가르침과 준비됨은 수백만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여기서 IHOP(International House of Pryaer, Kansas City)의 마이크 비클에게 주어진 원래 예언적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가치있다: “1983년, 주님은 매일 24시간 전 도시에 걸쳐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주님을 섬길 것이라 예언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예배와 중보기도 자체가 다윗의 장막의 회복이 아니라 “다윗의 장막의 영의 회복”으로서 예배와 중보기도를 언급하셨다!
RDTM의 리더쉽들은 예언적 찬양과 중보기도로 믿는자들을 훈련하여 아모스 9:11에서의 다윗의 장막을 예언적으로 회복하고 있다고 계속 가르친다면, 그것은 그생명력에 있어 위험하고, 이러한 성경적 잇슈에 대해 다윗의 자손 그분 자체와 반대하는 것이 된다. 성경적 정당성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예언적 가르침은 성경이 그자체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해야한다.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안에서 우리는 빛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다윗 왕의 마음을 닮고, 중보기도로 하나님을 섬길때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자. 유대인들을 성경말씀 그대로 보도록 노력하고 교회가 다윗의 sukka을 회복하기 위해 교회가 시온을 위해 분명히 중보할 수 있도록 교회를 깨우자.
(눅1:68-79)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돌보아 속량하시고 1:69 우리를 위하여 a) 권능의 구원자를 당신의 종 다윗의 집에서 일으키셨다.
(a.그, "구원의 뿔") 1:70 예로부터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으로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1:71 우리를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셨다. 1:72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 자기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다. 1:73 이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이니, 1:74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주셔서, 두려움이 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 1:75 우리가 평생 동안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게 하셨다. 1:76 아기야, 너는 가장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니, 주님보다 먼저 가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1:77 죄 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1:78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정에서 오는 것이다. 그분은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 1:79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Postscript: David Versus M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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