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메시지에 부제목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행1:8)"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에 있는 우리에게는, 예루살렘은 우리가 사는 곳이고, 유대는 우리의 이웃이며, 사마리아는 더 넓은 공동체이고 땅끝은 또 다른 장소를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나로 하여금 이구절을 지리적으로, 즉 보여지는대로, 보도록 하셨다. 예수님이 그가 사도들에게 대위임령과 더불어 사도들을 파송하셨을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의도가 있으셨다, “….첫째는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서, 너는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땅끝”이라는 말은 우리를 곤란하게 했고 관심을 회피했었다. 그러나 성경은 “땅끝”이라는 단어로 가득차있어서, 이 말을 피하기가 어렵다. “땅끝”은 지구의 한부분임에 틀림없다. 미국, 중국, 인도, 영국은 땅끝일 수 없다. 모든 지구상에서 땅끝이라고 불릴 수 있는 한 장소가 있다.
성경은 예루살렘이 이땅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공과 같은 지구를 상상해보자. 지구의 중심이라는 예루살렘에 당신이 있다면, 대각선으로 그 반대가 지구의 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땅끝이 태평양의 섬들 (islands of the Pacific)이라고 제안한다. 성경이 땅끝에 대해서 이야기 할때마다, 그것은 세상의 그부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메시지이다. “내게 청하여라. 뭇나라를 유산으로 주겠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네 것이 되게 하겠다 (시2:8).” 땅끝? 소유? 그것에는 어떤 것이 있다. 내가 나누고자 하는 것에 당신의 마음을 열어보라. 그래서, 이러한 배경과 함께, 내가 믿기에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나누고자 한다.
어떤 사람에게 교회사를 공부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교회사 2000년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 분량이 많다. 많은 이름과 사건들이 있기에, 우리는 그 공부를 회피한다. 교회사 2000년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무시할 수 없다. 역사로 부터 배우는 것을 실패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다. 주님은 역사를 알도록 부르시고 계신데, 역사는 정말로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에 대해 이해할때 까지 우리는 예언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두가지는 함께 간다.
우리가 구약의 어떤 선지자로 부터의 계시를 연구할때 마다, 역사적인 요소와 예언적인 요소가 있가. 학자들은 이것이 fourth telling과 foretelling이라고 말한다. fourth telling은 과거와 연관된다. Foretelling은 미래와 관련이 있고 이 두가지는 함께 간다. 예언자들은 단지 미래 만을 이야기하는 것(foretelling)으로 하나님의 백성앞에 서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예언은 역사로 부터 나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과 내가 이러한 이중적 실재를 알아야 하는 것이 이시점에서 필요하다: 역사가 예언을 해석해야만 한다.
역사는 어렵다. 그래서 주님의 도움으로 나는 우리가 익숙한 것 즉, 축구경기(football)에 비유하여 교회사를 간단하게 하기를 원한다. 여기에 모든 사람들은 축구경기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축구경기의 기본은 전반전(first half), 중간휴식 (halftime), 후반전(second half) 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교회사를 전반전, 중간 휴식, 후반전으로 이해하여 설명하고 싶다.
전반전은 사도행전에서 성령님께서 다락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임하셨을때 시작했다. 그곳에서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대부분은 사도행전 1장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안다. 8절에서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바로 직후에, 사도들 눈앞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가셨다. 예수님이 승천하시자, 흰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그들 곁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하고 말하였다; 이것은 “가서, 예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을 행하라”는 의미이다.
성경은 그들이 다락방으로 가서 10일동안 계속 기도했다고 말한다. 그들이 예수님으로 부터 들은 모든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받을때 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약속을 언제 받을지 예수님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10일째 너희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단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받을때까지 기다리라”고만 하셨다. 하루 하루가 지나갔지만, 약속은 내려오지 않았다. 다락방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왜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말하고 하나님 아버지로 부터 약속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는가? 언제 그일이 일어날 것인가?”하고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시나리오에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사도행전 1:15-26에 쓰여져있다. 유다는 죽었고 다락방에 11명의 사도들만 있었다. 갑자기 베드로가 11명중에 일어나 “우리는 12번째 사도를 찾아야만 합니다”하고 선포한다. 많은 학자들과 해석학자들은 이것이 사도 베드로의 육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들은 베드로가 그렇게 해서는 안되었다고 말한다. 다른 학자들은 이 구절들을 성경에서 무시해야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모든 성경이 하나님으로 부터 영감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면, 이 구절들은 어떤 목적이 있어 쓰여졌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이 무엇일까? 그것은 성령님은 12번째 사도가 그의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성령님께서 오실 수 없고 오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장의 마지막 구절은 “맛디아가 뽑혀서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의 수에 들었다(행1:26)”하고 말한다. 11에 1명이 더해져 12이 되었다. 12번째 사도가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그즉시 (행2:1),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셨다. 나의 요점은 경기가 시작될 수 있도록 팀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숫자 12는 하나님에게 중요한 숫자이다. 12은 근본 (foundation)과 통치 (government)의 숫자이다 (예를 들어 12지파, 12사도). 그러므로 하나님은 12번째 사람이 제자리를 잡도록 주장하셨다; 12번째 사도가 자리를 차지했을때, 성령님께서 오셨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두번째 것은 경기의 전반전은 장자인 이스라엘과 함께 시작했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4:20-23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의 장자로 생각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장자라며 하나님은 다른 아들을 갖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하나님이 단지 외동아들만 두었다면, 하나님은 장자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것이 나의 장자이다”라고 말을 했을떄, 하나님에게 다른 아들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이 어떤 나라 출신이든지 당신은 하나님앞에서는 자식(son)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라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나라들을 볼때, 문화, 자본 등을 본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나라를 바라보실때, 그는 자식으로 본다. 이것은 새로운 관점이다. 어째튼, 경기의 전반전은 올바르게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경기는 천천히 시작(slow start)하였다.
사도행전의 처음 몇 장들에서, 사도들은 복음때문에 파송받았지만 마지못해 움직이는 선수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골문 가까이에서 방어 경기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안전지대로 부터 나와 이방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을 어려워 한다. 그들은 방어 경기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보고 계시면서 “너희들은 방어적으로 경기하는 것에 의해 이 경기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사도들은 모두 유대인이었기에, 그들의 안전지대로 부터 마지못해 움직여 나온다. 그러나 빌립이 이 안전지대를 깨고 나와 사마리아로 갔을때 몇 골을 넣는다. 도시가 즉시 기뻐한다! 이제 그들은 공격적인 경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아직도 그자신들을 골대가 가까운 예루살렘에만 제한하고 있었기에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안전지대로 부터 나오게 해서 적진으로 뛰어들어 몇점을 더 얻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오래 걸리는 선수들을 관찰하고 계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아, 너가 들어가라”하고 말씀하신다. 사도 바울은 필드에 들어갔고 9번 center forward이다. 바울은 데이빗 백컴이다; 그는 로날드이다. 그가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이 공격적이 되었다! 바울은 공을 경기장 다른 편으로 찼고 그 곳에서 연속해서 골인에 성공한다. 적들은 “저 선수가 도대체 누구냐? 어디에서 왔냐?”하고 울부짖는다. 그들은 경기를 느린 속도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잘 싸웠다. 수많은 해가 지났을때, 뭔가가 잘못되었다.
200AD후에 어떤 새로운 선수들이 필드에 들어섰다; John Chrysostom, Gregory of Nyssa, Clement of Alexandira, 그리고 Origen. 교회사는 이들을 초대 교회 아버지들로 부른다. 나는 그들을 star player라고 부른다. 내가 언급한 이들 star player들은 아주 잘했다. 그들은 경기를 잘했고 점수를 냈다. 불행하게도 이들 star player들은 이방인들이었다. 어느정도 그들은 그들의 마음에 교만을 허락해서 유대인 형제들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는 이경기를 싸울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 없이 싸울 것이다” 하고 말했다.
그들은 사도행전에서와 같이 유대인 형제들이 이 경기를 할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라. 당신은 일세기 교회가 새로운 한사람 (one new man)의 교회였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하나인 무적의 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할때, 그들로 부터 무적의 “One New Man Team”이 나왔다. 사탄은 이 “One New Man Team” 을 절대적으로 두려워한다. 결과적으로 이방인들이 축구경기장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당신, 유대인들은 그대로 있어라. 이것은 이제 우리의 경기이다”하고 말했다. 다음 천년이상동안, 이경기는 이방인들에의해 전적으로 독점되었다. 유대인들은 이 경기에서 배제 되었다.
이것이 일어나기 시작했을때, 우리는 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잘 시작했다. 사도행전은 교회가 전반전에서 얼마나 점수를 대량, 그리고 멋있게 공격적으로 얻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반전 막바지에 이르렀을때, 결과는 낙담스러운 것이었다. 전반전은 복음이 예루살렘 (지구의 중심)으로 부터 땅끝까지 전해졌을때 끝났다. 내가 전에 말했던 것 처럼, 땅끝은 남태평양 (South Pacific Islands), 특히 Tahiti이다.
복음이 타이티까지 전해졌을떄, 경기의 전반전은 공식적으로 끝이 났다. 전반전이 끝났을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교회는 2점을 득점했고 적은 4점을 기록했다. 나는 이것이 어떻게 계산된 건지를 설명할 것이다. 1998년에 전세계 인구는 60억이고, 60억중 20억이 그리스도를 믿으며 40억에 사탄을 숭배한다고 보고 되었다. 그래서 교회의 전반전 결과는 2점을 얻었다면, 적은 4점을 얻었다. 우리는 졌다! 우리는 잘 시작했으나, 중간에 유대인들을 배제하고 이경기는 이방인이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에 의해 심각한 실수를 했고, 우리는 이경기를 졌다.
전반전이 끝났을때, 중요한 시간인 중간휴식 시간이 되었다. 축구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내가 설명하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간휴식 시간에 우리는 코치와 락커룸에 모인다. 전반전 결과(2 대 4)때문에 코치는 행복하지 않다. 코치는 우리가 전력을 다해 이기도록 훈련해왔다. 경기에서 우리가 이기게 하는 것이 코치의 목적이다: 코치는 우리가 이길수 있도록 밤낮으로 그자신을 우리에게 투자해왔다. 중간 휴식시간동안 코치는 몇가지 결정을 해야만 한다. 대개 그는 3가지 결정을 한다.
1. 코치는 선수들을 재배치 할것이다. Center forward로 뛰던 선수는 왼쪽 날개에서 경기하게 될 것이다. 미들필드에서 뛰던 선수는 앞으로, 앞에서 뛰던 선수는 미들필드로 재배치 되었다. 선수들의 재배치가 있다. 코치는 코치가 후반전에 점수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바대로 자유롭게 재배치한다.
2. 코치는 경기에서 몇몇 선수들을 불러 “너희들은 후반전에 뛰지 말아라. 나와있어라”하고 말한다. 그때 코치는 몇몇 새로운 선수들을 집어넣는다. 코치는 그 선수들이 싫어서 빼는 것이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 그 선수들을 뺀다.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전반전 경기가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믿는다. 우리는 또한 후반전이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우리는 후반전이 지난 주에 막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나는 이것을 지지할 수 있는 어떤 성경구절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성령님이 진리의 영이시라면, 그는 당신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이것들을 드러내시면(요16), 그분이 우리에게 증거하실 것이다.
후반전이 공식적으로 지난주에 타이티에서 시작되었다고 내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이다. 첫번째 Golden Gate Convocation (황금문 회의)가 지난주에 타이티에서 열렸다. 나는 많은 회의들, 컨퍼런스들에 다녔지만, 이번에는 다른 때와는 달랐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며, 나는 이회의가 하나님께서 후반전을 시작하시는 순간이었다고 확신했다.
후반전이 심판의 호각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2주전에 이곳 이스라엘에 Rosh Hashanah 축제에 있었다. Rosh Hashanah는 나팔절 (Feast of Trumpets)이라는 말이다. Shofar (뿔나팔)가 불어졌다. 후반전이 시작했다. 그러나 코치가 중간휴식시간에 한 다른 것이 있다. 나는 이미 당신에게 두가지를 말하였다: 코치는 선수들을 재배치하고 몇몇 선수들을 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중 몇몇은 전반전에 다쳤거나 또는 파울을 범했기 때문이다. 다친 선수들이나 파울을 범한 선수들을 후반전을 더이상 경기할 수 없다. 전반전에 사도행전에서 시작했던 주전선수들 (30AD에서 전반전 끝까지)은 유럽과 미국과 같은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전반전에 주전 선수들이었다.
미국, 그리고 유럽이라 말할때 프랑스, 독일, 스위스, 벨기에, 영국, 그리고 다른 유럽 나라들을 의미한다. 중간휴식동안 하나님은 몇몇 선수들을 부르셔서 “너는 더이상 경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가 다쳤거나 파울을 범했기 때문이다”하고 말씀하신다. 전반전에 경기했던 나라들중 몇몇은 후반전에 경기하도록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애통하는 마음으로 이것을 말한다. 전반전에 경기했던 나라들중 몇몇은 후반전에 경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심각하게 다쳤기 때문에 경기를 할 수 없거나 그들이 하나님앞에서 심각하게 어떤 잘못을 했기때문에, 그들은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당했다.
3. 이제 이들 나라들과 관련하여 당신이 속한 곳이 어딘지를 보아야 한다. 당신이 다쳐서 후반전에 뛸 수 없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 하나님이 당신을 치유하게 해라. 당신이 파울을 범했다면 당신은 하나님앞에 나아가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전반전에 뛸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고 “주님, 후반전에 저에게 어떤 역할을 주시옵소서. 저를 제하지 마시옵소서”하고 탄원하라. 유럽과 미국 출신인 분들에게 하나님앞에 겸손히 나아가기를 나는 요청한다.
당신들은 점수를 많이 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 서있을 수 있는 것은 당신들 덕분이다. 당신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복음을 알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교도였을 것이다. 유럽, 감사합니다. 미국, 감사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은 더 이상 영광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회의 (ANCJ 2004)에서 유럽과 미국에게 호소한다. 주님앞에 겸손히 나아가 “후반전에 우리가 뛸 수 있게 해주세요. 저희를 빼지 마세요”하고 요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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