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주님, 저를 선반에 놓치 마세요! 저를 치우지 마세요. 사람들이다가와서 저를 보고 ‘이 사람은 한때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그릇이었다’하고 말하지 않도록 해주세요”하고 끊임없이 말했던 사도바울의 심장뛰는 소리를 이해한다. 이것이 유럽과 미국에 해당되지 않기를 나는 기도한다. 나는 이 회의에세 당신들이 정결케 되기를 기도하고 탄원한다. 우리는 후반전에 당신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당신들을 필요로 한다.
얼마전에 내가 언급했듯이, 후반전은 지난준 땅끝 타이티에서 시작했다. 이 후반전에서 코치(성령님)는 “다윗의 장막”이라 불리는 전략을 갖는다. 당신은 다윗의 장막뒤에 있는 비밀을 이해한다면, 성령님께서 하늘의 무기들중 가장 강력한 것을 푸는 이때를 왜 기다려왔었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다윗의 장막은 대위임령 (Great Comission)을 끝내고자 하는 하늘의 전략이다. 다윗의 장막은 우리가 밤낮으로 기도하는 등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다. 다윗의 장막은 그 이상이다. 당신과 내가 아는 어떤 것보다 더 큰 것이다.
나는 사도행전이 전반전에 우리를 붙잡았다면, 후반전에는 계시록이 우리를 붙잡는다고 말하고 싶다. 사도행전이 전반전이라면, 계시록은 후반전이다. 계시록에서 우리는 다윗의 장막을 본다. 계시록 4장을 읽어보아라. 보좌(throne)라는 말이 14번 나온다. 반복해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본다: 보좌앞, 보좌 주위에, 보좌 앞, 보좌 주위에…. 나는 다윗이 그의 장막을 그가 본대로 지었다고 말하고 싶다. 성경 어디에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지지하는 구절이 없으나 나는 다윗이 하늘에 가보았다고 주장한다. 시편들을 읽어보아라. 당신은 다윗이 삼층천에 가보았다고 확신할 것이다.
이것을 믿기 어려워할 이유가 있나?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 요한, 바울도 천국에 가보았다. 왜 우리는 다윗이 그곳에 가보았다는 것을 기대하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다윗이 그곳에 가보았다고 믿는다. 왜? 다윗이 다윗의 장막을 지을 수 있는 다른 방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장막을 지은 방식은 모세의 방식과 상관이 없었다. 어떤 다윗의 장막을 위한 전례가 없었다.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다윗, 당신은 어디서 이 모델, 청사진을 얻었나요?” 다윗은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나는 위에 가보았어요. 나는 그것을 그곳에서 보았어요.” 다윗이 보좌룸 (throne Room)에 있었을때, 그곳에 보좌가 있었다.
모세의 장막이나 솔로몬의 성전과 달리, 다윗의 장막에 있었던 것은 단지 그 중간에 언약궤 (하나님 보좌의 상징) 하나였다. 언약궤 위에 속죄소(mercy seat)는 누군가가 앉는 자리이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쉐카이나 영광 (shekinah glory)이 머무는 보좌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보좌를 차지하시는 곳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졌던 것이고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어디서 그의 청사진을 얻었을까? 그것은 계시록 4장에서 발견된다; 보좌 앞, 보좌 주위, 보좌 앞, 보좌 주위… 다윗은 하늘의 보좌에 있었던 그 다이나믹스를 이땅에 풀어지게 했다. 그가 그렇게 한 순간, 무언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언약궤가 다윗의 도성에 온 직후 (대상16), 3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이것들은 또한 우리가 후반전에 보게 될 것들이다.
1. 예배의 이동 (transfer of worship)
2. 부의 이동 (transfer of wealth)
3. 나라들의 이동 (transfer of the nations)–사탄의 통치로 부터 그리스도의 통치로
다윗이 그의 장막에 언약궤를 놓았고 밤낮으로 규칙적으로 주님앞에서 섬길 선택된 사람들을 불렀다. 이것이 일어났을때, 예배가 이동되었다. 이스라엘의 역사상 처음으로 온나라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한다.
역대상 18장에서 예배가 계속되는 동안 다윗은 용맹한 군사들과 더불어 말을 타고 가다가 적진에 들어가서 약탈을 한다. 그가 그렇게 했으때 너무나 많은 금과 은을 얻었고 성경 고고학자들은 아마다 500억 달러의 가치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상당히 큰 돈이다. 부의 이동이 예배의 이동과 함께 즉시 따라왔다. 역대상 19장이후에 다윗은 그가 모은 부와 더불어 주님의 집을 짓기를 위해 준비한다. 솔로몬은 이러한 성전을 짓고 다윗의 도성(City of David)은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으로 변모한다. 시바 영왕은 그곳에 가서 보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다윗의 도성은 하나님의 도성으로 변모했다.
이것이 다윗의 장막안에 있는 본래의 파워이다. 자신들을 다윗의 장막에 드리는 사람들에게 있어 다윗의 장막은 보좌(throne)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일어날때, 모든 다른 것들이 따라온다. 계시록 4장에서 시작하여, 6장과 7장에서 봉인이 열렸을떄 예배가 이동된 것을 볼 수 있다. 8-14장에서 나팔이 불었을때, 부(wealth)가 이동하였다. 15-18장에서 대접이 부어졌을때, 통치가 이동하였다. 그러므로 19장에서 예수님이 오신다.
체스의 고수들은 3번 움직으로 당신을 checkmate 할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계시록에서 하신 것과 같다. 봉인, 나팔, 대접, checkmate! 봉인 (6-7장), 나팔 (8-14장), 대접(15-19장), checkmate! 예수님이 오시고 게임이 끝난다. 전쟁의 장군들은 3가지 단계로 어떤 나라를 삼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beachhead(해안교두보), bridgehead (거점교두보), 그리고 advance (진격). 이것이 예수님이 하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예배, 부, 통치를 푸는가? 무엇이 이런 이동이 일어나게 하는가? 그대답은 계시록 4장의 다윗의 장막이다. 그것은 공격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전반전에 했던 방식으로 후반전을 경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반전에 12번째 사도가 제자리에 놓여지기까지 경기를 시작할 수 없었듯이 후반전에도 그 기초가 제자리에 놓여지기까지 경기가 시작될 수 없다. 그 기초들이 놓여질때, 경기는 계속될 것이다. 하나님은 후반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기초들이 제자리에 놓여져야 한다.
여기서 우리 모두는 12 관문들(gates)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Tom Hess(톰 헤스)에게 세계를 보여준 방식때문에, Tom Hess에게 빚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훌륭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12 관문들은 우리가 성경적으로 세계를 볼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작년에 내가 자카르타에서 Luis Bush와 함께 강단에 설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Luis Bush는 “10/40 window” 용어를 만든 사람이다. 그는 첫번째 강사였고, 나는 두번째 였다. Luis Bush가 10/40 윈도우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연을 하고, 휴식시간에 어떤사람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10/40 윈도우안에 없습니다. 어떻게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 나라를 10/40 윈도우로부터 배제할 수 있습니까? Luis Bush는 당황했고 대답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직사각형의 윈도우를 그렸기에 인도네시아는 그안에 들어가있지 않았다. 나는 이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기회라고 느꼈다. “내가 당신들에게 12 관문들과 East Gate(동문)으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내가 East Gate를 제시했을때, 나는 “우리가 10/40 윈도우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East Gate안에서 발견되는 나라들일 뿐,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Tom Hess형제가 12관문들을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1998년이다. 나는 그가 이미 그전에 그것을 보았다고 확신한다. 이스라엘이 Jubilee(희년)을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이다. 그해에 Tom Hess형제는 12관문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 했고 나는 처음으로 그 관문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것이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자 마자, 하늘은 “기초들이 제자리에 놓였다. 후반전을 시작하자”하고 말한다고 나는 느낀다. 나는 후반전이 타이티에서 지난주에 시작되었다고 강조한다. 이제 그것이 시작됨에 따라 끝이 있을 것이다. 사도행전 1장에 빠진 선수가 있다, 기억하는가? 12번쨰 사도. 유다는 그의 자리를 버렸다; 빠진 선수가 있었다. 성령님은 다락방에서 사도들이 12번째 사도를 찾도록 하셨다. 12번째 사도가 발견되었을 때, 경기가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당신에게 제안하고 싶다. 후반전 시작점인 지금, 빠진 선수가 있다. 우리 나머지가 이 빠진 선수를 찾아 주님앞에 데려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경기를 할 수 없다. 우리는 그를 찾아야 하고 그의 자리로 데려가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이 빠진 선수가 태평양의 섬들 (the Pacific Islands)이라고 겸손하게 제안해도 되겠는가? 이것은 당신에게 어려울 수 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에게 이것을 말씀하시도록 한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경기 전반전이 장자와 함께 시작했다면, 후반전이 막내와 함께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는가? 이들 섬들은 하나님앞에 막내이다.
지난주 타이티에서 Tom과 나는 번갈아 가며 태평양섬들의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는 한가지 임무를 받았다: 주님의 메시지를 가장 어린 막내인 섬사람들에게 가져가는 것. Golden Gate(황금문)를 알게 된 여러분들은 모두 에스겔 48장을 읽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장에서 황금문이 Benjamin gate(벤자민 문)라고 불리워 진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Benjamin은 가장 어린 막내 아들이다. 그섬들이 가장 어리고, 그 이유 때문에 무시당하고 소외당했다.
그러나 대위임령의 후반전이 막 시작하려고하는 이 마지막 순간에, 나는 사무엘상 16장으로 당신을 데려가고 싶다. 사무엘 선지자가 베들레헴에 가서 다음 왕에게 기름붓도록 명령을 받았다. 사울의 해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후반전이 시작한다. 다윗이 나타나야할 때였다.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와 그의 가족들앞에 나나나서 “너의 아들들을 불러 세워라”하고 말했을때, 이새는 장자부터 어린아들까지 아들들을 불러세웠다. 한명씩 그들이 사무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아니다. 이사람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7번째 아들까지 주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사무엘은 이새에게 “다른 아들이 있습니까?”물었다. 이새는 “네, 막내가 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사무엘은 그가 어디있는지를 물었고, 이새는 들판에 있다고 대답했다. 사무엘은 “왜 그가 이곳에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성경은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다윗이 거부, 무시당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수 있다. 아버지는 다윗이 그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다윗은 7명의 형들이 사무엘 앞에 세워질때 들판에 있었다. 그때서야 이새는 “내게 한명의 아들이 더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다윗이 불려왔다. 그가 들어온 순간, 하나님은 “이사람이 바로 그다,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막내가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렇게 땅끝 타이티에서 톰과 나는 그 섬사람들이 전에 무시당하고 거부당했던 막내 (벤자민)라고 그들에게 말하라는 확신을 주님으로부터 받았다. 우리는 그들을 격려했다. “일어나세요! 당신들은 막내, 다윗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장막을 필요로 합니다. 앞으로 나오세요!” 그리고 그들이 나왔다.
이러한 성경적 이해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은 유대인 12명 사도를 파송하며 “너희는 우선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아들들의 용어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가? 나는 하나님에 관한한 하나님이 나라들을 자식들(sons)로 보고 있고 하나님은 복음의 선물이 우선 장자인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땅끝인 막내에서 끝이 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유대 가족의 방식이다. 나는 당신이 이러한 실재 (장자 이스라엘이 있고 막내 Pacific Islands가 있다)를 알도록 이것을 말하고 있다.
지금이 왜 태평양 섬들의 시대라 믿는지에 대해 다른 이유가 있다. 계시록이 우리에게 후반전이 어떻게 경기되어지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시한다면, 계시록 1:4-5에서 우리는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라는 말을 보는 것은 우연인가? 역사적으로 우리는 아시아는 Asia Minor (터키)를 의미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시아가 East Gate를 나타내는 곳을 의미한다고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아시아의 시대이다. 후반전은 아시아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왜 하나님은 밧모섬이라는 섬에서 하나님의 후반전 계획을 사도요한에게 계시하도록 선택하셨는가? 사도요한은 밧모섬에 있었고, 계시록 전체에 섬들에 대한 많은 언급이 있다. 갑자기 섬들이 계시록에서 살아있게 되었다! 섬들은 성경의 모든 곳에서 숨겨져 있었다. 성경 마지막에서 갑자기 섬들이 살아있다! 지금은 그들의 시대이다. 하나님이 섬에 대한 그의 계획에 대해 계시하시고자하는 것은 지금이 섬들의 계절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들은 빠진 선수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데리고 들어와야만 한다. 전반전이 장자와 더불어 시작했다면, 후반전은 막내와 더불어 시작한다.
내가 당신에게 나누고 싶은 한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여러 나라들에서 온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특히 이스라엘게 특별한 것이다. 다윗이 어린 소년으로 팔레스틴과의 전쟁에 나가 골리앗 장수와 더불어 싸우게 되었을때 다른 형들은 다윗에게 “왜 너가 여기 있냐? 교만이 너의 마음에 가득하구나. 너는 여기에 있어서는 안된다. 가라”하고 말했다. 당신이 이 이야기의 나머지를 알고, 하나님이 다윗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안다. 당신이 알다시피, 우리 나라들은 그 형들과 같다. 어느 정도 우리는 하나님이 섬들에게 주셔왔던 역할(운명)을 단지 볼 수 없었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인가? 그들은 대양(ocean)의 중요치 않은 점들(dots)이다.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하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태도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이다. 다윗이 나와서 그의 단을 취할 때 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막내인 벤자민, 태평양섬들을 위한 룸(room)을 주라고 제안한다. 지금은 그들의 시대이다. 사울이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사울 자신의 방식(그의 투구와 방패)으로 싸우라고 주장했었다는 것을 이해하라. 그러나 다윗은 “아니요.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나는 나의 방식으로 싸울 겁니다” 하고 말했다. 후반전에 우리가 이기려면 (우리는 계시록에서 말한대로 이길 것이다) 역사상 없었던 전세계 대량의 추수가 있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대중(masses)이 예배를 이동하고, 그와 함께 통치가 예수그리스도에게 이동될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일어나려면, 우리는 다윗이 후반전에 다른 방식으로 뛰도록 룸을 주어야만한다. 우리자신끼리만 있다면, 우리는 전반전에 우리가 했던 방식으로 후반전을 경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아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반전을 경기하는 사람들(유럽, 미국)에게 훈련되어져 왔다. 그러나 후반전에 우리는 그방식으로는 경기를 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경기를 해야하고, 그 열쇠는 다윗의 장막이다. 그것이 전략이다.
우리는 전반전 선수들이 저질렀던 실수들을 반복할 수 없다. 경기 전반전 초반에, 바울과 바나바를 포함한 예루살렘의 사도들 모두 경기를 뛰었고 그리고 나중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one new man으로 모두 경기를 뛰어 승리를 거두었다. 그들은 골을 넣었다! 거의 모든 로마제국이 교회에 의해 차지 되었다. 그러나 200AD후에, 특히 콘스탄틴이 황제가 된 300AD후에,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spotlight(스포트라이트)이 이방인들에게 옮겨졌다. 교회 조상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유대인과 같이 뛰는 것을 거절한 이방인 star palyer들이었다.
그들이 유대인들을 배제했을 때, 우리는 전반전 경기를 졌다. 점수는 2대 4였다. 20억의 인구가 그리스도를 예배했고; 40억인구는 사탄을 숭배했다. 우리는 전반전을 졌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후반전을 시작함에 따라, 우리가 막내 벤자민에게 룸을 주어 들어오게 함에 따라, 이스라엘에 있는 우리가 막내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이 장자이기 때문에, 장자인 우리는 막내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하늘과 땅이 증인이 되어 오늘 아침 이곳에서 일어나야 한다. 이스라엘이 막내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합당한 존경과 영광을 줄 때, 후반전은 시작한다.
이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취해야하는 것이다. 이제, 섬사람들 (islanders)들이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중국사람들, 인도네시아인들, 그리고 인도인들이 들어올 것이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위해 룸을 주어야만한다. 이것은 우리의 경기가 아니다. 우리는 전반전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그와 함께, 하나님은 새로운 선수들, 아랍인들을 데려오실 것이다.
아랍인들은 이집트와 레바논에서 부터 들어올 것이다. 그들이 들어올 것이고 점수를 내는 star palyer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위대한 미사일이 발사되기 바로전에, 우리는 “이스라엘아, 들어와라! 이스라엘아, 들어와라”하는 소리를 들을것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들어올 것이다. 이제 우리는 one new man으로 완전히 작동하는 상태(in full gear)가 된다. 적은 어떤 기회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경기를 승리로 끝낼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찬양할 것이다. 이것이 경기가 어떻게 끝나는 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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