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6:13에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 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하늘의 별은 계1:20에 ...별은 교회의 사자(使者)요...라고 했으며 고후 8:23...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使者)요...라고 합니다. 따라서 하늘의 별들은 하나님 안에 있는 형제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 3:12)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키질을 통해 바람을 일으키셔서 알곡은 주님 품으로 품어 안으시고 쭉정이는꺼지지 않는 불 못에 떨어지게 하실 때 온전한 믿음의 삶을 드린 자(者)는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 하니 얼마나 복된 자 입니까?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禍)가 있으리로다" (마24:19)
그러나 위의 말씀처럼 그 날은 주께서 바람으로 키질하시는 날인데 아이 밴 자들(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므로하나님과 연결되지 아니한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신령한 하늘의 것을 먹이지 못하고 땅의 것을 먹이는 사자들: 형제들)에게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계 6:13에 선 과일 (알곡 되지 못한 열매)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들은 온전한 믿음 생활을 드리지 못해 키질할 때 떨어지는 자들입니다. 알곡은 자기 † 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로서 주님을 모신 자이므로 속이 알차므로 키 안쪽으로 점점 들어오고 쭉정이는 †를 지지 않으므로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시지 않기 때문에 가벼워서 바람에 날려 키 밖으로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온전한 믿음을 드리지 못하는 자들은 계시록에서 재앙에 들어갈 대상인 땅에 거하는 자들이므로 하나님께서7인(印)으로 시험하실 때 떨어지는 자인 것을 말라기서 3:11에 기록된 말씀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이번 성령께서 성경을 열어 보여 주시므로 제 자신에게는 경이로움이므로 감사와 찬미를 끊임없이 올려 드리고 있습니다.
* 땅이 아름다워짐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뿔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사 62:4)
네 “땅”을 쁄라 (하나님과 결혼한 여자)라 하고 헵시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고 하신 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히브리어 “야다”와 헬라어 “기노스코”는 하나님과 한 몸(한 영)되어서 동침한다는 뜻 입니다. (야다 : 영접, 알다, 믿다) 온전한 믿음의 삶을 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여 한 몸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서의 고난을 받는 것은 바로 그 분과 일치되어서 그 분과 영원히 사는 신부가 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 (고후 5:15)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요일2:6)
온전한 믿음을 드린 자는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신부들의 일원으로서 영원 무궁토록 그 분을 섬기도록 아름답게 꾸며 주신다고 하시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계 21:1,2에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대해 표현하기를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다고 하십니다. 말 3:11에 땅을 아름답게 하신다 하심은 곧 신부단장을 시키신다는 것과 같습니다.
"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계 19:8)
그러므로 계 21:9,10에 신부인 어린양의 아내를 보이시는데 그 아내는 곧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서 인간의 방법으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요한은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시므로 신부들이 조화롭게 연합되어 아름다운 각종 보석으로 나타나서 빛을 발하는 것으로 계 21:11~21 까지 기록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2:43에 같은 뜻으로 " ...아버지...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하였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드리는 것은 빛에 속해서 이 땅에서 나를 버리고(비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말합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온전한 믿음의 삶을 올려드리며 신랑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들은 영원히 그 분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만일 본문의 ' 너희 땅이 아름다워진다 ' 를 문자적으로만 보아 물질적인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은 경우를 보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니 무(無) 소유한 청빈한 자가 된 어떤 사람이 있는데, 자기 땅이 한 평도 없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름답게 하셨다는 말입니까?
또한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을 말씀대로만 설교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설교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하시는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치기만 한다면 오히려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성령님께서 역사 하시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지혜가 지금 이 시대에 정말로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 (딤후 3:16)이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에 (벱후 1:21) 성령의 사람이 아니면 성경 말씀은 문자로만 보이는 닫혀 있는 글이라 하는 것이 옳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눅 8:10에 "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글자들을 모아놓은 문자 정도로만 보았을 때는 하나님의 깊은 진리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아직 열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성경을 통해 바라보고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시며 영안을 열어 문자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크신 비밀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사물을 비유로 하여 말씀으로 전하신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길, 포도나무이다’라는 구절과 같이 예수님 자신을 이 세상에서의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비유해 자신을 설명하고 알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사물을 비유로 하여 말씀으로 전하신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길, 포도나무이다’라는 구절과 같이 예수님 자신을 이 세상에서의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비유해 자신을 설명하고 알리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지하고 죄에 속해 하나님을 아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승천하시면서 행 1:4,5에 성령을 받으라고 사랑의 권면을 하셨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인간의 시각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눈으로 성경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문자 그 너머에 숨어 있는 깊은 영적 세계에 속한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초래될 것입니다. 떡만 보면 예수님, 예수님 하고, 어떤 빛만 보면 예수님, 예수님. 또 양 우리 문 앞에서 예수님, 예수님, 또 양치는 목동만 보면 예수님, 예수님, 길만 보면 예수님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포도나무가 예수님이고, 나는 가지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으므로 예수님 오실 때까지 포도나무 가지를 꼭 붙들고 “ 나는 주님께 붙어 있는 가지에요. 제발 빨리 오세요. 포도나무 가지를 붙잡고 있는 것이 고역이네요. 제발 빨리 오세요.”라고 할 것입니다.
이 끝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단 (다른 길로 가서 끝이 지옥불로 떨어지는 사단의 회)이 아닌 주님의 길, 옳은 길, 의의 길이라는 것입니까 ? ‘말씀대로, 말씀대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말씀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 (눅 6:26) 이와 같이 성령의 사람은 사람들에게 칭찬 받기 위해 외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께서 이끄시므로 순종할 뿐인 것입니다.
"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찌니라 " (눅 17:10)라고 말씀드릴 뿐 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하나님의 종 된 자(者)의 길이요 성령의 사람으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밝히 말씀하시는 것에 (딤전 4:1) 귀를 기울이고 성령으로 사는 자로서 성령으로 행하기 위해 (갈 5:25) 항상 깨어서 근신하여 말씀(성경을 읽고 묵상)과 기도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서 하나님과 연결되지 아니하면 주님 앞에 서는 날 죽은 자로서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라는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누군가를 판단할 아무런 자격이 없다는 것을 성경은 여러 군데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 자리에 버티고 앉아 이단(異端)이다, 삼단이다 하는 것은 성령의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1,2)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 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 (롬 2:1,2)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 (약 4:10-12)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主)시니라" (고전 4:3,4)
따라서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낮아지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구원의 반열에 들어선다고 창세기-계시록까지의 말씀에 대단히 많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서 우리 모두 한없이 하나님 앞에 낮아지는 지혜를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이후의 교회사를 보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자행되었음을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종교 재판이라는 이름을 빌어서 자신들이 정해 놓은 교리나 전통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단으로 몰아서 희생당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 이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살후 1:6-8)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한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심판 날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머리는 하나입니다. (엡 1:22, 골 1:18) 그러나 적 그리스도의 머리는 일곱입니다. (계 13:1)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곧 적 그리스도에 속해 이끌림을 받는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만 상대방을 판단하는 재판관이 되기 전에 상대방을 사랑으로 감싸주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고전 13:4) 그러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워지고 그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은 그러한 뿔라와 헵시바가 되려는 우리들을 찾으십니다.(요 4:23,24)
<출처 :깨어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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