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브래너 목사
한국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예배회복의 비전을 품고 사역하고 있는 스캇 브래너 목사. 현재 미국 미주리주 캔사스 시티의 IHOP교회(마이클 비클목사)를 섬기고 있는 그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고, 한국어 방언을 받았으며, 한글로 '아버지 사랑합니다', '성령의 불로' 등을 작곡하는 등 한국과 매우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의 영동제일교회(김혜자 목사)에서 사역의 대부분을 을 하고 있다. 그동안 영동제일교회 찬양팀 '다윗의 장막'과 함께 여러차례 앨범을 낸 바 있는 스캇 브래너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가 한국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이유,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예배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스캇 브래너 목사. 그는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랐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성경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명으로 느끼게 된 것은 13살 때였다. 부르심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그 부르심이 너무 심각하고 무겁게 느껴질만큼 하나님의 부르심을 두려워하던 그는, 그래서 5년 동안을 저항하고 미루다가 18살에 비로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스캇 브래너 목사는 18살에 텍사스 베일러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소명을 받은 후 버지니아 리버티 침례신학대학에 편입,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필라델피아와 뉴욕 등의 길가에서 말씀을 전하고, 빈민촌에서 사역을 하면서 점점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신약성경 중 초대교회에 대해 읽다가, 현재 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지 못하며,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신학이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 다시 법대에 입학했다.
"저는 전부터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경배와 찬양이 있기는 했지만, 사역의 타이틀이 될 정도는 아니었죠. 그런데 나중에 사도 바울이 텐트를 만들면서 사역의 기틀을 만들었던 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공부를 해서 이를 통해 삶을 꾸려가면서 사역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법대에 갔어요."
하지만, 스캇 브래너 목사는 법대에 가서도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는 '이것이 과연 내가 가야 할 길인가'에 대해 몇 번이고 생각했다. 그러던 그는 법대에서 공부를 하면서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 때 첫 앨범을 내기도 했는데, 스캇 브래너 목사는 "그 때부터 경배와 찬양 사역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는 법대 졸업 직전까지 경배와 찬양 사역이 나의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법 중에서도 저작권법 등과 같은 찬양사역과 관련된 법들을 공부했어요. 그리고 레코드 사업에서 재능을 쓸 수 있기를 기도했는데, 결국 나중에 레코드 회사의 변호사로 취직하게 됐죠. 레코드 회사에서 저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음악작업의 실질적인 것들과 그 외적인 것까지도요."
레코드 사에서 음악도 만들고 하면서부터 스캇 브래너 목사에게는 점점 경배와 찬양 집회를 이끌어 달라는 요구가 많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책상에 앉아서 사무일을 볼 때 느끼지 못했던, '이것이 나의 사역이구나' 하는 확신을 경배와 찬양 현장 사역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일과 찬양사역을 병행하면서 갈등하던 그는 처음 전임 변호사의 길을 택했지만, 찬양 사역은 끊임없이 그에게 요구되어졌다. 결국 변호사를 접고 달라스의 한 교회 전임사역자로 가게 된 스캇 브래너 목사는 그곳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며 새로운 사역의 시작을 맞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역은 한국 사역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저희 교회의 어느 사역자분께서 제가 한국에서 사역하게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신실한 분들이셨고, 그래서 그분들이 아무 의미없이 혹은, 나쁜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때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가기 원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말이죠. 그런데 그 무렵, 저에게 아시아 사역이 점점 열렸고, 또 한국에 초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경배와 찬양에 대해 가르쳐 달라는 사역이 들어왔죠. 그래서 한국에서의 사역이 하나님의 뜻이라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는 한국 사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점점 더 많은 기도를 해 가면서 놀라운 체험을 하기도 했다. 그가 전혀 알지 못했던 한국어 방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한국 사역자분과 함께 방에서 단둘이 기도할 때였습니다. 기도 중 그가 나에게 손을 얹었는데, 제가 우리나라 말이 아닌 다른 나라 말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도가 끝났을 때도 저는 그것이 한국말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 분께서 저에게 그것이 한국말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거든요. 다시 한국말로 방언을 하는지 보려고 2달 동안 저에게 그 사실을 말씀하시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나중에야 그 분께서 저에게 말씀해 주시더군요. 제가 '주님 제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연이어 5번을 말했다구요. 그래서 그 분은 처음에는 방에 다른 한국인이 들어왔나 하고 기도 중에 눈을 뜨고 방 주위를 돌아보기도 했다더군요. 하지만 아무도 없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랐다고 하셨습니다."
한국 방언을 하면서 스캇 브래너 목사는 환상을 보았다. 그는 환상 속에서 그와 함께 기도하던 사역자와 함께 한국을 바라보면서 '저 곳에 어떻게 닿을 수 있습니까?'하고 주님께 물었다. 그러자 모세 앞의 홍해처럼 바닷물이 활짝 열렸다. 스캇 브래너 목사는 그 신비를 체험하고, 한국 사역의 사명을 더욱 확실히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장모인 김혜자 목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영동제일교회에서 한국의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기자는 '진정한 예배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마지막 질문으로 건내 보았다. 과연 스캇 브레너 목사가 생각하는 진정한 예배란 무엇일까?
"정말 완전한 예배는 예수님께서 희생의 제물을 드림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희생... 그것이 예배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예배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을 때, 휘장이 둘로 갈라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분리가 완전히 떠나고, 그 관계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 문이 열렸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 동안에 성도들은 하나님과 더욱 가까와져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예배를 드릴 때 멀찍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가 멀어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에 반응하는 것, 표현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경배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신선하게 받게 되고, 그 은혜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한국어 찬양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스캇브래너 목사
'아버지 사랑합니다', '성령의 불로', '나를 세상의 빛으로' 등의 곡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Scott Brenner 목사.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일본, 호주, 독일, 영국 등 전세계 예배회복을 위한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가 작곡한 찬양 경배곡들은 AIDS 환자를 치유하는 성령역사가 일어나는 등 잔잔한 주님의 임재 가운데 강한 기름부음이 있는 것으로 호평받고 있다.
한국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예배회복의 비전을 품고 사역하고 있는 스캇 브래너 목사. 현재 미국 미주리주 캔사스 시티의 IHOP교회(마이클 비클목사)를 섬기고 있는 그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고, 한국어 방언을 받았으며, 한글로 '아버지 사랑합니다', '성령의 불로' 등을 작곡하는 등 한국과 매우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의 영동제일교회(김혜자 목사)에서 사역의 대부분을 을 하고 있다. 그동안 영동제일교회 찬양팀 '다윗의 장막'과 함께 여러차례 앨범을 낸 바 있는 스캇 브래너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가 한국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이유,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예배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스캇 브래너 목사. 그는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랐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성경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명으로 느끼게 된 것은 13살 때였다. 부르심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그 부르심이 너무 심각하고 무겁게 느껴질만큼 하나님의 부르심을 두려워하던 그는, 그래서 5년 동안을 저항하고 미루다가 18살에 비로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스캇 브래너 목사는 18살에 텍사스 베일러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소명을 받은 후 버지니아 리버티 침례신학대학에 편입,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필라델피아와 뉴욕 등의 길가에서 말씀을 전하고, 빈민촌에서 사역을 하면서 점점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신약성경 중 초대교회에 대해 읽다가, 현재 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지 못하며,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신학이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 다시 법대에 입학했다.
"저는 전부터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경배와 찬양이 있기는 했지만, 사역의 타이틀이 될 정도는 아니었죠. 그런데 나중에 사도 바울이 텐트를 만들면서 사역의 기틀을 만들었던 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공부를 해서 이를 통해 삶을 꾸려가면서 사역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법대에 갔어요."
하지만, 스캇 브래너 목사는 법대에 가서도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는 '이것이 과연 내가 가야 할 길인가'에 대해 몇 번이고 생각했다. 그러던 그는 법대에서 공부를 하면서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 때 첫 앨범을 내기도 했는데, 스캇 브래너 목사는 "그 때부터 경배와 찬양 사역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는 법대 졸업 직전까지 경배와 찬양 사역이 나의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법 중에서도 저작권법 등과 같은 찬양사역과 관련된 법들을 공부했어요. 그리고 레코드 사업에서 재능을 쓸 수 있기를 기도했는데, 결국 나중에 레코드 회사의 변호사로 취직하게 됐죠. 레코드 회사에서 저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음악작업의 실질적인 것들과 그 외적인 것까지도요."
레코드 사에서 음악도 만들고 하면서부터 스캇 브래너 목사에게는 점점 경배와 찬양 집회를 이끌어 달라는 요구가 많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책상에 앉아서 사무일을 볼 때 느끼지 못했던, '이것이 나의 사역이구나' 하는 확신을 경배와 찬양 현장 사역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일과 찬양사역을 병행하면서 갈등하던 그는 처음 전임 변호사의 길을 택했지만, 찬양 사역은 끊임없이 그에게 요구되어졌다. 결국 변호사를 접고 달라스의 한 교회 전임사역자로 가게 된 스캇 브래너 목사는 그곳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며 새로운 사역의 시작을 맞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역은 한국 사역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저희 교회의 어느 사역자분께서 제가 한국에서 사역하게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신실한 분들이셨고, 그래서 그분들이 아무 의미없이 혹은, 나쁜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때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가기 원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말이죠. 그런데 그 무렵, 저에게 아시아 사역이 점점 열렸고, 또 한국에 초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경배와 찬양에 대해 가르쳐 달라는 사역이 들어왔죠. 그래서 한국에서의 사역이 하나님의 뜻이라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는 한국 사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점점 더 많은 기도를 해 가면서 놀라운 체험을 하기도 했다. 그가 전혀 알지 못했던 한국어 방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한국 사역자분과 함께 방에서 단둘이 기도할 때였습니다. 기도 중 그가 나에게 손을 얹었는데, 제가 우리나라 말이 아닌 다른 나라 말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도가 끝났을 때도 저는 그것이 한국말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 분께서 저에게 그것이 한국말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거든요. 다시 한국말로 방언을 하는지 보려고 2달 동안 저에게 그 사실을 말씀하시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나중에야 그 분께서 저에게 말씀해 주시더군요. 제가 '주님 제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연이어 5번을 말했다구요. 그래서 그 분은 처음에는 방에 다른 한국인이 들어왔나 하고 기도 중에 눈을 뜨고 방 주위를 돌아보기도 했다더군요. 하지만 아무도 없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랐다고 하셨습니다."
한국 방언을 하면서 스캇 브래너 목사는 환상을 보았다. 그는 환상 속에서 그와 함께 기도하던 사역자와 함께 한국을 바라보면서 '저 곳에 어떻게 닿을 수 있습니까?'하고 주님께 물었다. 그러자 모세 앞의 홍해처럼 바닷물이 활짝 열렸다. 스캇 브래너 목사는 그 신비를 체험하고, 한국 사역의 사명을 더욱 확실히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장모인 김혜자 목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영동제일교회에서 한국의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기자는 '진정한 예배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마지막 질문으로 건내 보았다. 과연 스캇 브레너 목사가 생각하는 진정한 예배란 무엇일까?
"정말 완전한 예배는 예수님께서 희생의 제물을 드림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희생... 그것이 예배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예배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을 때, 휘장이 둘로 갈라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분리가 완전히 떠나고, 그 관계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 문이 열렸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 동안에 성도들은 하나님과 더욱 가까와져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예배를 드릴 때 멀찍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가 멀어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에 반응하는 것, 표현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경배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신선하게 받게 되고, 그 은혜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한국어 찬양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스캇브래너 목사
'아버지 사랑합니다', '성령의 불로', '나를 세상의 빛으로' 등의 곡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Scott Brenner 목사.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일본, 호주, 독일, 영국 등 전세계 예배회복을 위한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가 작곡한 찬양 경배곡들은 AIDS 환자를 치유하는 성령역사가 일어나는 등 잔잔한 주님의 임재 가운데 강한 기름부음이 있는 것으로 호평받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나라, 한국을 사랑합니다.”
스캇브래너 목사와의 인터뷰Scott Brenner
찬양은 하나님을 느끼는 한 방법입니다.
스캇 브레너, 그와의 인터뷰는 늘 유쾌하다.
언제나 기대 이상의 솔직한 답변으로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기 때문이다.
찬양은 하나님을 느끼는 한 방법입니다.
스캇 브레너, 그와의 인터뷰는 늘 유쾌하다.
언제나 기대 이상의 솔직한 답변으로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기 때문이다.
바쁜 일정으로 몸살에 걸렸는지 인터뷰 내내 기침을 하면서도 시종일관 진지함을 잃지 않았던 고마운 사람.
지난 번에는 안 그랬는데 오늘은 유난히 하얗게 샌 그의 흰 머리에 시선이 꽃힌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기도하며 세상을 살아온 흔적.
그의 흰 머리를 보며 또 다른 생각을 해 본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와의 만남이 언제나 이렇게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꾸미지 않고 솔직한 그의 자연스러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한국어 찬양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스캇브래너 목사
'아버지 사랑합니다', '성령의 불로', '나를 세상의 빛으로' 등의 곡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Scott Brenner 목사.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일본, 호주, 독일, 영국 등 전세계 예배회복을 위한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가 작곡한 찬양 경배곡들은 AIDS 환자를 치유하는 성령역사가 일어나는 등 잔잔한 주님의 임재 가운데 강한 기름부음이 있는 것으로 호평받고 있다.
찬양사역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것입니까?
원래 크리스천 가족에게서 태어난 저는 13세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무엇인가 사역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는 찬양사역이 지금처럼 활발하던 때가 아니라 고민했습니다. 또래 청소년들이 그러하듯 무엇을 해야 할지 방황도 많이 했죠. 그러다가 18세에 순종하자는 마음을 가졌고 온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깊은 부르심과 그분의 임재를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보수적인 침례교 신학대에서 찬양과 경배 인도를 처음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베일러 남침례 대학으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하면서 찬양사역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이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감각이 있었지만 그것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는 연결시키지 못했고 다양한 교회를 다니며 목사가 되겠다고 기도했었습니다.
지금은 찬양사역 리더면서도 목사입니다. 저는 이것에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찬양사역이라 하면 음악에 목적을 두고 사역이라고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역이고 음악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하고 하나님 안에서 비전을 갖고 공부를 많이 해야 찬양사역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는 열정과 비전이 확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엔터테이너가 아닙니다. 찬양사역은 즐기는 연예사업이 아닙니다. 신성한 기운이, 성령이 나를 인도하십니다. 전문가 사역자를 기르고 싶은 것이 제 소망입니다.
한국에서는 영동제일교회와 함께 사역하시고 계십니다. 영동제일교회와 사역은 언제부터 시작하신 것입니까? 미국에서 6000명이 모이는 집회가 있었는데 그 때 김혜자 목사님이 참가하여 와서 예배자 학교를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때 기도해보고 참가하게 된 것이 시작입니다. 한국에 대해 항상 비전을 품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이끌어주신 것 같습니다.
찬양사역을 하시면서 젊은이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젊은이들도 누구냐, 어디냐에 따라 매우 다릅니다. 미국의 경우를 보자면, 미국은 15년동안 찬양을 혁명해왔습니다. 그 결과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있지요.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붙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찬양을 통해 교회를 회복하셨습니다.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것을 고수하지 않고 현대적인 스타일을 덜 두려워합니다. 전통을 끝까지 고수하다 보면 교회의 영적 수준은 깊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을 오게 할 수 는 없지요. 반면 영적 수준은 낮은데 찬양으로 젊은이들을 모으고 즐기고 마는 문제점을 갖는 교회들도 많습니다.
갈급하는 젊은이들을 분리시키거나 문제점없이 성장케 하려면 목회자는 젊은이에게 지혜를 주고 지도하고 덮어줄 수 있는 장년세대도 함께 길러야 합니다. 청년들은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올바로 지도해 줄 수 있는 장년층과 같이 발전해가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더 할 나위없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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