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어두운 곳에 대한 바른 인식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22:13)
하나님나라 낙원이나 왕국이나 시온에서는 슬피울며 이를 가지 않습니다. 그곳은 기쁨이 충만하고 희락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바깥 어두운 곳"이라고 하신 그곳은 어디이어야 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고린도후서 두 곳에서 이곳을 베마(βημα)하고 경고하였습니다.
βημα는 “연단장, 재판석, 법정, 층계를 올라가는 곳” 등으로 위치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 단어의 뜻에서는 분명히 연단 또는 심판이란 징계를 나타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단어를 인용하여 “상급심판”으로 설명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상급은 잘한 일에 대한 보상을 주는 것이며, 심판은 잘못한 일에 대한 벌을 내림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상급과 심판을 같은 의미로 해석하며 설명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상급은 하나님나라가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반대로 심판은 하나님나라를 얻지 못하는 저주입니다.
두 단어를 함성시킬 수 없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베마를 우리말로 “심판대”로 표기되었다 하여 원어를 찾아보지도 아니하고 추론으로 단어가 지니는 성격자체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은 연단장이라는 단어자체를 성경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분명히 성경에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연단장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까요? 몰랐던 것이 첫 번째 이유가 됩니다.
두 번째는 자신이 가야될 곳이기 때문에 그 단어자체가 듣기 싫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성경에 그런 말이 없다고 주장함으로서 스스로 위로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바램과는 상관없이 어느 날 그것에 가서 체험하여야 깨닫게 되고 인정하게 되는 곳이 연단장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βηματι) 앞에 서리라.(롬14:11)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β?ματοs)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심판대를 로마서에서는 여격단수로 표기되었고, 고린도후서에서는 소유격 단수로 표기되어 있는 베마(βημα)라는 의미는 “연단, 법정, 재판석, 층계를 올라가는 곳”등으로 다양한 해석이 있으므로 어떤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서 성경을 인식하는 각도가 달라집니다.
1. 바깥 어두운데로 가는 대상 = 성경에서 예수를 믿었어도 불법을 행하는 자(마7:23, 13:41), 넘어지게 하는 자(마13:41, 18:7),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은 자(마22:13), 무익한 종(마25:30), 나라의 본 자손들(마8:12, 21:41,43, 눅13:28), 남을 판단하는 자(롬14:10), 악한 종(24:51),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계22:15)등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고 경고한 그 곳은 어디이어야 됩니까?
2. 바깥 어두운 곳의 위치= 바울 사도는 몸으로 행한 행위를 따라 받게 되는 ‘베마(β?ματοs)’라 했습니다. 베마는 우리말로 ‘연단장’이며 ⓐ바깥 어두운 곳, ⓑ성 바깥 등으로 성경은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느 곳을 가도 어두운 곳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어느 곳에서도 슬피 울며 이를 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둡고 캄캄하고 풀무가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은 어디이어야 됩니까?
3. 현실적인 추세= 대부분의 믿는 사람들이 연단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연단장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원인은 믿기만 하면 다 구원되는 줄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연단장이 명시되었는가? 그렇습니다. 그것도 많은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4. 성경은 증거한다 = 헬라어 원전에는 교육(παιδε?α-파이데이아)받는 낙원을 파라데소스(παρ?δεσοss)로 표기되었고(눅23:43,고후12:4,계2:7), 연단을 받는 베마(β?μα-롬14:11, 고후5:10)는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마8:12, 13:42, 50, 22:13, 25:30, 눅13:28). 이 사실을 부정한다면 성경을 부정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5. 바른 인식= 혹자들은 이곳을 지옥 또는 음부라 하는데, 지옥은 ‘게엔나(??εννα)’이지 음부나 연단장은 아닙니다. 음부라는 해데스(aδηs)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들이 백보좌 심판이전까지 대기하는 곳입니다. 연단장이라는 베마(β?μα)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서 거듭나지 못하고 벌거벗은 온전치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곳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eνδυμα g?μου)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eξ?τερον) 어두움(σκ?τοs)에 내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κλαυθμos) 이를 갊이(βρυ?μ?s)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κλητο?)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eκλεκτο?)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1~14)
앞에서 1층천 낙원과 2층천 왕국과 3층천 시온과 시온 공중에 떠 있는 예루살렘을 알아보았습니다.
앞엣것만 읽고 끝나면 좋은 면만 생각하고 신앙생활이 안일해지겠기 때문에 계속해서 연단장을 알아야 온전한 믿음을 지키게 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연단장(β?μα-베마)’이 있는 것조차 모릅니다. 연단장이 어떤 곳이며, 어떤 사람들이 그곳에 있으며, 그곳에서 어떻게 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서 보았다고 간증하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왔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믿으면 누구나 다 하늘나라의 같은 곳으로 갈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자신의 일방적인 사상이나 이론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보상 제도를 엄격하게 시행하시는 분이심을 생각하지 않는데서 생겨나는 발상입니다.
나라와 본토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8:12,22:13)
때로는 연단장을 낙원이라고 말할 것이며, 연단을 교육이라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낙원은 밝고 빛나는 곳이지만, 연단장은 어둡고 캄캄한 곳입니다.
낙원은 기쁨과 희락이 있지만, 연단장은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는 곳입니다.
낙원에서는 천사들이 때리거나 고통 주는 곳이 아니지만, 연단장에서는 연단사자들이 때리고 짓밟고 매질하는 곳입니다. 낙원은 끊는 물이나 불붙는 고통이 없지만, 연단장에서는 끓는 물가마속과 불로 고통을 주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연단장을 낙원이라는 사상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연단장을 낙원으로 착각합니까? 입신 또는 영으로 하늘나라에 처음 도착하는 곳은 낙원입니다. 그곳에는 주님과 만날 사람들을 만나서 환영을 받게 됩니다.
다음에는 생명강에 가서 생명수도 마시고 목욕도 하고 생명과일도 맛보게 합니다. 그리고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구경을 시킵니다. 이러한 이동은 눈 깜짝할 순간에 수만리를 옳기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원리의 법칙 때문입니다.
그 후에 연단장에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낙원에서 연단장으로 이동하는 시간은 순식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서 혼돈합니다. 처음에 낙원에 도착한 것만을 생각하고, 연단장으로 옮겨가서도 낙원에 있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단장을 낙원으로 알고 있는데, 성경에 근거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체험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자신이 보았다는 것을 주장할지라도 성경과 다르게 표현하거나 묘사할 때는 그러한 비진리로 말미암아 마귀가 그를 악용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벗나나는 내용을 주장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나라는 누구든지 자신이 행한 대로 배치된다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만세전부터 당신의 예지로서 많은 영혼들을 택하시기로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자들만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씨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에서(Ησαυ)와 야곱(?Ιακωβ)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선택된 하나님의 국민이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불 때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두 사람 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은 복중에 잉태될 때 택한 자라 하셨고, 에서는 택하지 않았다 하셨습니다.
택함 받은 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만,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합니다. 가령 믿을지라도 건성으로 믿든가 아니면 형식적으로 믿습니다. 예수는 믿으면서 진정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가려고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을 마련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도로 자청했었던 가리옷 사람 유다(Iοδ?αs)가 그랬습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많은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그랬습니다. 가리옷 유다도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달과 명성과 재물의 야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는 그리스도의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마귀의 씨라고 주님께서 경고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찾고 성경을 가지고 읽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속성이나 영원성은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길로 갈 것이며 그 길에서 돌이키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쇠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몇 구절의 말씀과 같이 부름은 받았으나 택함은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은 한 명의 영혼이라도 당신이 택한 자는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의지를 주셨기에 각기 주어진 의지를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서 온전한 아들이 될 수도 있고, 절뚝바이 백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더라.(마22:13)
거기로 표기된 바깥(eξ?τερον-에쏘테론)은 eξ?τεροs의 목적격 단수로서 ‘더 바깥에’ ‘더 먼 곳에’ ‘가장 먼 곳에서’ 등. 비교급으로 쓰이므로 낙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연단장(β?μα-베마)임을 명심해야 됩니다. 로마서는 동사 여격 단수로 β?ματι라 하였고, 고린도후서는 소유격 단수 동사로 β?ματοs로 표기돼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과 영어 성경에는 심판으로 잘못인식 하게끔 표기되어 있습니다. 연단장에서의 연단에 대하여
회개하는 과정을 직고(λ??ον-로곤)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직고는 자신의 허물을 자백한다는 뜻이요, 동사로서 β?ματι는 죄를 씻으며 더 좋은 곳으로 한 단계씩 올라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연단장의 내용을 아는 자만이 그곳에 가지 않는다 하셨기에 연단장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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