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2009

예언의 은사 1

1.정의 -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프로페테이아)"(고전 12:10).

몇 가지 정의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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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 (또는 생각)에 하나님이 즉흥적으로 주시는 것을 사람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다(David Pyt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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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은사는, 모인 사람들이나 그들 중의 소그룹이나 또는 개인에게, 신적인 기름부음을 받은 언어로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주시는 메시지를 받아서 전달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어떤 사람들에게 주신 특별한 능력이다(C. Peter Wa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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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은사는 신적인 기름부음을 받은 언어로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주시는 메시지를 받아서 전달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어떤 사람들에게 주신 특별한 능력이다(Bobby Clinton.

위의 두 사람의 정의는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예언의 은사는 신자들을 권면하고 건덕하고 안위하고,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확신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예측적인 것은 물론 설명적인) 진리를 표현하는 능력이다 (Kenneth Hagin). 


성경의 권위에 종속되는 예언의 은사 - 사도 바울은 고전 14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전 14:29-31).

시카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웨인 그루뎀 교수는 [신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에서, 신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란 "우리 마음 (또는 생각) 에 하나님이 즉흥적으로 주신 것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오늘날의 예언은 성경의 권위에 종속되는 것으로서 안위와 권면으로 교회의 덕을 세우고 (고전 14:3), 회개와 전도를 하는 것 (고전 14:25) 이 그 주된 기능이라고 주장한다.

위의 성구에 의하면 예언과 계시는 동의어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언이나 계시는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것이다. 그루뎀은 고전 14장의 자세한 주석을 통해 오늘날에도 예언의 은사가 지속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예언이나 환상을 보는 자들을 무조건 신비주의자로 정죄하고 이단시하는 정통보수신학에 제동을 건다. 그루뎀 교수는 특히 예언의 은사를 부정하는 존 맥아더의 견해를 강렬하게 반박한다.

동시에 그는 오늘날의 예언은 기록된 성경 말씀과 같이 정확무오한 것이 아니라 오류의 가능성도 있으므로 분변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신의 예언을 과신하는 자들에게도 따끔한 경고가 된다.

오늘날의 예언은 기록된 성경말씀과 어떤 상관이 있는가? 오늘날의 예언은 우리들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 즉 절대적인 신적 권위를 가지며 오류의 가능성이 없는 기록된 성경 말씀과는 다른 것이다. 오늘날의 예언은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고전 14:29)라고 말하며 또한 "예언을 멸시하지 말며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 5:20-21)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실수를 하지 않으시며 우리에게 틀린 계시를 주시지 않지만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한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며, 하나님이 주신 것일지라도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 어려우며 (, 10장에서 베드로가 받은 보자기 속의 동물 환상), 또한 우리의 생각 때문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이 자기가 받은 계시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하는 것은 구약의 예언을 잘못 이해한데서 생긴 오류이다. 오늘날의 계시는 성경에 기록된 구약의 계시와는 다르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모세나 예레미아나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셨다고 기록한다( 18:18-20; 1:9; 2:7).
                                           

2. 단어 - 예언(prophecy), 예언하다(prophesy)는 말은 프로페테이아(명사), 프로페튜오(동사)인데 프로페튜오는 프로(앞으로, 내다, 대신)와 페미(말하다)의 합성어에서 생겼다. 따라서 예언하다는 말은 "전하다, 미리 말하다, 대신 말하다"는 뜻이다.

성경에서도 예언은 하나님을 말씀을 전하는 대언(forth-telling)과 말 그대로 미래의 일을 말하는 예언(fore-telling)으로 구분한다.

. 대언 -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언을 통해 자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전달한다. 대언을 통해 안위, 권면, 책망, 심판 및 인도의 말씀을 주신다.

. 예언. -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미리 예고해 주시거나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 즉 비전을 주신다.

선지자들이 전한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말하고 기록한 예언은 절대적인 신적인 귄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시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의 권위를 '보증'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한 예언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예언이며 전 시대를 위해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다(딤후 3:16).

신약에서도 구약의 선지자들같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기록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선자자가 아니라 사도들이다.

신약의 사도들 (및 일부 사도의 지도하의 제자들)이 구약의 선지자들같이 절대적인 신적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기록했다(고전 2:13; 1:8-12). 베드로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동격에 두고 있다. "곧 거룩하신 선지자의 예언하신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하노라"(벧후 3:2).

신약에는 사도나 사도의 위임을 받은 일부마가, 누가만이 완전히 영감된 성경을 기록했다. 그러나 예언의 은사를 가진 신자들은 예루살렘( 11:27), 안디옥( 13:1), 두로( 21:4), 가이사라( 21:8-9), 로마 ( 12:6), 고린도(고전 14), 에베소( 4:11) 및 데살로니가(살전 5:20) 등 전 교회에 골고루 흩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신약이 말하는 예언과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성격을 구분한 그루뎀은 절대적인 신적인 권위를 가지며 오류의 가능성이 없는 성경말씀과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사적인 계시의 두 가지로 구분한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그루뎀은 '하나님께서는 계시를 두 가지 통로를 통해 교회에 주신 적이 없다'는 리차드 개핀3)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루뎀에 의할 때 개핀의 주장은 어떠한 성경 구절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독단적인 주장이다.

달라스 신학교 구약학 교수 출신인 잭 디어도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에서, 기록된 말씀이나 직접적인 음성을 통해 지금, 이곳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보다 기록된 성경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집착하는 성경 이신론자들(Bible deists)5)의 오류를 책망한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성경을 우상화하여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한다<구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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