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2009

예언의 은사3

예언의 은사는 설교와 가르치는 은사인가?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예언의 은사는 설교하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라고 이해한다. 과연 이런 해석이 옳은 것일까? 성경에 보면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예언을 기록한 책이며(벧후 1:20, 21; 3:2; 1:3), 성경 기록이 끝났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직접적인 계시로서의 예언을 사라졌다는 가정 아래이런 해석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
첫째, 만일 이것이 바른 해석이라면 고전14:1의 적용에 문제가 생긴다"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특별히 예언하려고 하라" "특별히 설교하고 말씀을 가르치려고 하라"는 의미가 된다. 이 구절은 전체적인 신자를 향한 명령인데, 만일 이들대로의 주장이라면 지금 현재 절대다수의 신자들이 설교하고 가르치라는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는 결과가 된다. 하기야 직통 계시적인 예언을 구하지도 않으니 순종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지만.

둘째, 성경은 예언하다와 설교하다(전파하다) 또는 가르치다를 분명하게 구분한다. 은사의 종류를 말하는 고린도전서 12장에서도 선지자와 교사를 구분한다.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고전 12:29).

마지막으로, 만일 이들의 주장이 옳다면 고전 14:29-30 적용에 문제가 생긴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은 다른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찌니라."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자는 한 번에 둘이나 셋이 해야 하고 다른 이들은 그들이 설교나 가르침을 제대로 했는지를 분변해야 한다.

또한 곁에 앉은 다른이가 설교하고 가르칠 일이 있으면 먼저 하던 사람은 금방 중지해야 한다. 과연 그런가? 결론적으로 예언의 은사는 설교나 가르침의 은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예언의 은사 1.성경의 예 - 정확무오한 구약의 예언과는 다른 신약의 예언의 예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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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마게도니아의 환상을 통해 사역지를 바꾸었다(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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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비록 결박과 환란이 있을 줄 알았지만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결심했다(20:23). 그러나 나중에 예언하는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만류했고 (21:4), 선지가 아가보도 바울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말하면서 사람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행을 만류했다(21:10-14). 그러나 바울은 다시 한 번 예루살렘행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인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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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흉년을 예언한 아가보( 11:28).

2. 예언의 은사가 임하는 방법  - 예언의 은사가 임하는 방법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나 영 분별의 은사가 임하는 방법과 비슷하지만 내용은 보다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경우가 많다.

. 환상이나 꿈을 통해.  - 이렇게 오는 경우 해석이나 적용에 각별한 조심을 해야 한다.

. 내적 음성,  - 세미한 음성 또는 불쑥 들어오는 생각이나 불쑥 나오는 말을 통해.

. 계속 이어지는 말을 통해.  - 내적 음성이나 세미한 음성을 통해 말씀을 주실 경우 어떤 핵심적인 단어나 문장을 주시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말을 계속하거나 기록하면 예언의 말이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예언하다의 히브리어는 나바(예언하다), 나비(선지자)인데 이 말은 "거품이 일 듯 부글부글하다"(bubble up), "입에 거품을 내며 지껄이다"(boil forth)는 뜻이 있다.13)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 어느 교수는 강의에 집중하면 입에 거품을 내며 열변을 토했다. 마찬가지로 성령에 감동되어 예언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거품을 내며 지껼이는 수도 있다. 구약 당시 선지자들이 아마 이런 모습으로 예언을 한 것 같다.

물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더 신령한 것은 아니다. 한 두 마디나 문장을 전해주더라도 핵심을 찌르는 경우가 있고 수십 분을 말해도 변죽만 올리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예언 사역자의 기름부음의 정도,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성숙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여자들이 남자보다 말을 잘하니까 오랫동안 전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자매는 한 시간 이상 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알맹이를 보면 한 두 가지인데 이런 양념, 저런 치장을 하고, 같은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고, 내용을 반복하다 보니 한 시간도 금방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 하면 듣는 사람의 집중력이 떨어지므로 반드시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 주시는 말씀의 기록이나 녹음을 통해  - 오늘날 예언 사역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예언해 줄 때 반드시 녹음할 것을 권장한다. 예언의 말씀은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이루어질 수도 있고, 또 바쁘다 보면 잊어버리기 쉽고 나중에 예언의 신빙성이나 책임 문제도 따르기 때문이다.

또한 기록해 놓거나 녹음해 놓고 계속 읽거나 들으면서 그 예언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면 기도하면 상황이나 환경에 매이지 않고 믿음이 늘 새로워지는 것을 많이 체험한다.

어떤 경우 예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예언이 틀릴 수도 있고 받은 사람이 순종하지 않아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예언을 듣는 자는 중요한 내용이라면 반드시 여러 사람을 통해 확인을 받을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예언임이 확실하면 꼭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말씀하셨듯이 예언의 말씀에 믿음을 화합하여 끝까지 인내하는 자만이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가 있다( 13:18-23 참조).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개인 예언은 대부분이 조건적인 것이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제 일 세대가 비록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불평과 불순종으로 인해 그 열매를 누리지 못했듯이, 예언의 말씀을 멸시하여 방치하거나, 잘 간직하다가 환란이 올 때 쉽게 넘어지거나, 세상 재미에 빠져 소홀히 하면 예언의 말씀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구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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