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는 정부의 산과 교육의 산이 서로 만나는 중요한 지점에 위치해 있다. 물론 다른 산들도 있다. 모든 산들은 어느 선에서는 서로 다 연결되어 있다. 서로는 서로에게 영향력을 미친다. 예를 들면, 미디어의 산을 점령하면 나머지는 다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어느 정도로는 맞는 마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부의 산을 취하면 다른 산을 얻게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산들은 각각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얻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가 교육의 산에 대해서 탐구하는 동안 우리는 이 산이 얼마나 중요하며 영향력이 큰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What is Education? - 교육이란 지식 또는 기술이 배움의 과정을 통해서 습득되거나 발전되는 것을 가리킨다. 서양에서는 많은 경우에 교육의 원래 목적들이 그 의미를 빼앗겼다. 이 산은 원래 그 산의 정상에 있어야 할 것들에 반대하는 세력에 의해 침투당하고 빼앗겼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미국 교육 기관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교육하고 가르치는 곳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우리가 회전하는 세계관의 맥락 속에서 가르침이 주어졌었다. 하나님은 배움의 모든 부분의 기초셨다.
미국 내의 공립학교는 1635년에 유명한 청교도 목사인 존 코튼(John Cotton)에 의해 처음 설립되었다. 실제적으로 모든 초기 공립학교의 교장들은 목사들로 이루어졌다. 읽기, 쓰기, 수학은 모두 하나님에 관한 가르침과 비교할 때 항상 둘째의 위치를 차지했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의 준비하기 위해서, 학생들은 하나님과 삶을 연관시킬 줄 알아야 했고,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중심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했다.
하버드(Harvare), 윌리엄 메리(William and Mary), 예일(Yale), 그리고 프린스턴(Princeton)과 같은 학교들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네 개의 교육 기관들이다. 각 학교는 유명한 대통령들과 지도자들을 배출해 왔다. 그리고 네 학교 모두 자신들의 뿌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나와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원래의 목적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하버드 대학교는 1636년에 설립되었다. 학교를 위한 중요한 기증자는 존 하버드(John Harvard)라는 이름을 가진 목사였는데, 그의 이름으로부터 학교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랜된 교육 기관이며 청교도 가치들을 소유한 목사와 학자들을 교육시켜서 사회 속으로 방출하는 목적을 가진 기관이었다. 학교의 표어는 ‘베리스타(Veritas)’인제 ‘진리’라는 뜻이다. 이 학교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받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금액은 약27,6천억 원에 이른다. 조지 W. 부시를 비롯한 일곱 명의 미국 대통령이 하버드 대학을 다녔다. 이 학교는 아마 틀림없이 전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교육기관일 것이다.
윌리엄 메리 대학은 1963년에 세워졌고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교육기관이다. 이 학교는 원래 성공회 학교로서 세워졌다. 학교의 교장은 영국 성공회 회원이어야 했고 성공회의 39개 조항에 동의하는 자여야만 했다. 세 명의 전 미국 대통령이 여기서 교육을 받았다.
예일 대학은 1701년에 10명의 회중교회 목사들에 의해서 세워졌고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교육기관이다. 이 학교에 기증되는 금약은 하버드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유명한 부흥사이며 신학자이고 대각성 운동의 창시자인 조나단 에드워드가 예일 대학을 다녔다. 이학교의 신학부는 그의 사역을 연구하는 일에 중점을 둔 조나단 에드워드 센터를 가지고 있다. 다섯 명의 미국 대통령이 예일 대학 출신이다(조지 W. 부시는 대학은 예일은, 그리고 대학원은 하버드를 다녀서 두 학교 모두에 포함된다).
프린스턴 대학은 1746년에 형성되었는데 미국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교육기관이다. 이 학교의 표어는 “하나님의 능력 아래서 번영한다”이다. 프린스턴은 장로교인들에 의해 세워졌으며 장로교 목사들을 훈련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조나단 에드워드가 천연두 예방 접종으로 인해 죽기 바로 전인 1758년에 잠시 교장직을 맡았었다.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이 프린스턴을 통해 배출되었다.
누가 교육을 지배하는가 –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에 있던 세 번째의 적은 아모리 족속이었다(신7:1). 아모라이트(Amorite)라는 단어는 ‘자랑하다’, ‘불룩 내밀다’, ‘산을 오르는 자’, ‘교만하게 행동하다’, ‘마음에 교만을 품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모든 정의들은 다 함께 인본주의의 기본적인 자세를 설명해 준다. 아모리 족속은 교육의 산을 점령하기 위해서 반드시 무찔러야 할 대상이다.
인본주의는 우주적인 인간의 가치와 지식을 최우선시 하는 윤리 철학이다. 이것은 이성주의에 의해서 강화된다. 인본주의는 초월적인 의로움, 즉 믿음에 대한 의지와 초자연적으로 또는 신적으로 부여된 계시와 같은 것들을 부정한다. 그리스 철학과 철학자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방법의 근원인데, 이것이 서양사회에서 편만하게 된 것은 인간 이성을 참된 지식의 근거로만 인정할 것을 강조한 18세기의 계몽주의 때부터이다. 물론 사탄적인 권세와 능력들은 이러한 주의들 뒤에 존재하는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악한 영적 존재’들이다.
인본주의와 흡사한 쌍둥이가 바로 무신론이다. 무신론은 하나님이 없다는 주의이다. 곧 우리는 더 이상 이와 관련해 논의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신판이 분명히 나타나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에는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질문은 오직 이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를 숭배할 것인가 아니면 파괴할 것인가? 문제는 간단하다.
자유주의의 대세는 인본주의와 무실론주의의 정치적인 구실이다(나는 여기서 자유주의라는 말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가지로 들릴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 자유주의는 실제로 더 보수적인 관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여기서 미국 정치적인 관념에서의 자유주의를 뜻하고 있다). 나는 자유주의가 이러한 철학을 위한 구실로 보는데, 그 이유는 자유주의에서는 누군가가 하나님의 기준들(삶의 거룩, 이성과의 결혼을 통한 섹스 등)을 받아들임 없이 이론적으로만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새롭고 더욱 향상된 하나님, 그분의 도덕적 기준들이 자유적인 사회에 맞는 것 같아 보이는 하나님에 대해서 계속 소개하고 있다. 만약 그들의 관점이 정확하다면,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결혼에 더 이상 가치를 두지 않으신다. 대신, 그분은 무엇이든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인정하신다(흥미롭게도, 사탄의 경전의 표어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이다). 자유의 신은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았지만, 그러는 그는 은밀한 형태로 존재한다.
인본주의는 대부분의 철학적 위선을 야기한다. 성 관계시 상대와 성을 선택하는 것의 자유를 주창한 사람들이, 바로 세상에 있는 에이즈로 인한 고아들과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것을 강하게 목소리 높여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위 말하는 자유가 그들이 분노하는 것들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일단 당신이 창조주 주위를 회전하는 것을 멈추면, 당신은 완전히 길을 잃은 존재가 된다. 인본주의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주위를 회전하고 있다. 만일 그분이 존재한다고 본다면 말이다.
아모리 족속의 왕 – 교육의 산의 아모리 족속은 인본주의와 이것의 부산물인 무신론, 자유주의 그리고 이성주의이다. 이러한 주의들은 모두 거짓말인데, 산 정상에 앉아서 그의 아모리 군대를 지위하는 어떤 권세에 팔린 것들이다. 이 권세자는, 내가 믿기로 바알세불이다. 그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파리들의 주’인데, 파리들은 그가 하는 거짓말을 뜻한다. 그는 거짓말의 바알이다. 그는 사탄의 다른 얼굴이거나 혹은 사탄 자신일 수 있는데, 분명히 루시퍼를 위해 일하는 대장이다. 그의 정확한 신분과는 상관없이, 바알세불이라는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그가 일을 해나가는 수단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준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모든 효과적인 거짓말은 어느 정도의 진실을 포함한다.
쥐의 경우를 예로 들면, 쥐는 죽이는 독을 포함한 치즈가 이에 해당한다. 바알세불은 쥐덫을 교육의 여러 가지 영역에 펼쳐 놓았다. 쥐 덫이 깔려 있는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하나씩 열거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수년간 일해 온 힘들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나님은 곧 온 세상에 울려 펴질 중심 되는 진리를 세우심으로 이 모든 취덫들을 제거하려고 하신다.
바알세불의 거짓말들을 반박할 하나님의 진리들은 다음과 같다.
* 하나님이 계시다.
* 그분은 사람의 일에 관여하고 계시다.
* 그분은 도덕적 행동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계시다.
* 당신은 반드시 그분을 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분의 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특별히 사탄의 속임수를 공격하거나 무효화하기 위해서 나타난다. 다가올 심판들은 하나님이 존재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를 의심하는 특별한 곳이나 지역, 또는 나라의 죄의 상태에 따라 집중될 것이다. 자신들의 죄 가운데서 죽는 자들은 이 관계를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다. 뉴올리언즈가 재앙에 약했고 또 다시 그럴 것임에는 이유가 있다. 샌프란시스코가 매우 취약한 곳임에는 이유가 있다. 어떤 나라들은 심각한 심판을 받을 여기가 매우 높고, 이러한 심판은 마지막 때의 분명한 표시가 될 것이다.
심판은 도시와 나라들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지고 오기 위해 하나님의 영적 쓰나미와 함께 작용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와 복음의 전파를 통해 나라들을 설득하셨다. 하나님은 이제 그분의 의로운 심판들은 통해서 설득하실 것이다. 처음에 그분의 심판은 은혜의 행동일 것이다. 그것은 회개를 위한 설득이다. 그분의 마지막 심판들은 황폐화시키는 것일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여전히 마음을 굳게 하는 자들에게 임할 것이다.
교육의 산이 취해지는 것과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나타나는 것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현이 있을 것이다. 이사야 26장9-10절은 특별히 세상의 거민들이 의로움에 대해서 배워야 함을 말한다. 의로운 자가 이 산을 다스릴 때, 그들이 보여줄 첫 번째 가르침은 의로움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이고, 그 지혜는 교육의 목적이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경외함 없이 시작되는 지혜란 있을 수 없다. 그 경외함이 바알세불의 거짓말을 불태워 버릴 것이다. 만일 바알세불이 다니엘 10장 20절에서 언급된 그리스의 왕(헬라의 군주)이라면, 또는 그 왕과 동조하는 자라면, 교육은 심각하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그리스의 왕은 이성과 이성주의의 배후에 있는 강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기르치는 자들의 중요성 – 처음 두 미디어의 산과 정부의 산에 대해서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은사인 복음 전도자와 사도들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교육의 산을 차지하는 데 있어서는 가르침의 은사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세속적으로 인정받은 교사들과는 반대로 성령에 의해 능력이 주어진 자들이어야 한다. 그 은사는 교사들에게 능력을 주어 이 산으로 오는 적의 거짓을 파괴하게 한다.
교회로서 우리는 이러한 교사들을 교회 내에서보다 교회 밖의 교육 체계 속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인 은사가 주어진 교사들을 교육 체계 전반에 배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인증 체계와 교과 체계가 반드시 새로 짜여야 한다.
<일곱산에 관한 예언/조니 엔로우/순전한나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