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2010

진정한 의는 소금

부도덕과 우상숭배, 낙태 그리고 살인은 부흥이 오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단지 조그만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가장 죄악은 바로 식어서 냉랭해진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냉랭한 마음이 영적 아버지 안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이상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식어진 마음이 결국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며 두려움을 가져오고 희망을 파괴하며 사람들의 믿음을 제거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로자와의 교제를 잃어버리게 되며 결국 모순되고 혼동되는 나쁜 소식의 복음 선택하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그러나 만일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다만 쓸데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니라”(5:13) 말씀하셨다. 예수님 당시에는 음식물을 저장하기 위한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소금이 고기를 신선하게 유지하는 필수품이었다. 비유를 통해 주님은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진노와 악한 영들의 파괴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신다.

이것에 관한 좋은 예가 바로 요셉이다. 그의 의로운 삶이 공동체 전체의 축복을 가져왔던 것을 지난 장에서 살펴보았다. 애굽에서의 그의 존재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이 세계적 기근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날 있도록 만든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소금이 맛을 잃었을 때는 아무것에도 쓸모없고 다만 밖에 버리워져 사람들에게 밟힌다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당시 사람들이 소금을 맛보았을 이상 짠맛을 느끼지 못한다면 소금으로는 음식물이 썩는 것을 방지할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님은 단순히 음식물을 신선하게 보존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분의 교회의 역할 대해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소금이 맛을 잃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우리가 이상 세상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5:13 “교회는 세상의 소금”). 우리가 보존해야 사람들에 대하여 잘못된 예언을 우리는 맛을 잃게 된다. 사실을 나는 미국에 임하게 각종 재난을 예언하는 사람들의 예언 속에서 분명히 발견한다.

어느 진리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갖고 주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엎드려 기도할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나는 죄악이 관영하기 때문에 도시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것을 파괴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곳에 의인의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 내게 창세기18장과 19장을 보여주셨다. 거기에 보면 아브라함과 소돔의 멸망에 대해 협상을 하며 그곳에서 의인 열명을 찾으면 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답을 얻어내는 장면이 나온다.

주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 도시에 도시를 구원할 만한 의인이 충분히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내는지 나에게 물어보아라.” 그래서 내가 주님께 물었다. 그러자 주님이 대답하셨다. “나는 심판의 말을 예언한다. 그러고 나서 나는 얼마나 많은 나의 백성들이 일어나 자비를 구하며 부르짖는가 본다. 이렇게 해서 자비가 심판을 이기는 것이다.”(2;13) 그리고 주님은 다른 질문을 하셨다. “롯의 아내가 의로웠느냐 악했느냐?

오랫동안 나는 롯의 아내를 죄악의 도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다 악한 여인으로 설교했었지만, 순간 왠지 그것이 정답이 아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 모르겠는데요.”.

주님이 계속 말씀하셨다.
그녀의 이름 무엇이냐?.”
모릅니다.”  내가 내가 대답했다.
아브라함의 아내의 이름은 무엇이냐?” 주님이 물으셨다.
사라입니다.” 내가 대답했다(이것은 너무 확실했다)
그렇다. 그러면 사라는 아브라함과는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롯의 아내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정체성은 롯의 의로움 안에 속했었기 때문이었다!

맞다.” 주님이 계속 말씀하셨다.
롯은 의인이었느냐 악인이었느냐?
의인이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롯의 아내는 무엇으로 변했느냐?” 예수님이 물으셨다.
소금입니다.”내가 대답했다.
소금이 무엇이냐?” 주님이 물으셨다.
방부제인데요.” 내가 대답했다.
그렇다! 그녀는 중보의 겉옷 가지고 살았다. 그녀는 겉옷이 소돔이라는 도시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나는 그녀의 몸이 소금기둥으로 변한 것이 그녀가 도시를 위해 사역했던 일에 대한 예언적 비유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롯과 그의 아내가 소돔을 위한 소금’, 방주제였기 때문에 그들은 도시를 지킬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불과 유황으로 도시에 심판을 내리실 그들은 탈출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 롯의 아내는 구원의 순간 잘못된 선택을 하여 결국 소금기중이 되어버리고 것이다.

내가 심판을 행할 때에도 그녀는 소돔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사역 자체가 결국 그녀를 죽게 만든 것이다.” 주님이 설명해 주셨다.

누가복음 17장에 점이 아주 나타나 있다. “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세간이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것이니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17:31-33)

그리고 하나님은 나에게 예레미야의 말씀도 기억나게 해주셨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 행하며 진리 구하는 자를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성을 사하리라.”(5:1)

주님은 에스겔서의 말씀을 떠오르게 해주셨다. “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사람을 내가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22:30).

수많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멸망의 말씀을 선포함과 동시에 세계 역사상 가장 중보기도의 운동이 일어나 자비와 긍휼을 부르짖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사실은 비록 하나님께서 중보자들을 일으키기 위해서 심판의 말씀을 사용하신다고 할지라도 그분의 마음은 언제나 자비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18:23을보라). 우리는 롯의 시대에 그랬듯이 천사들이 우리를 그곳에서 이끌어낼 때까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시를 고치시도록 부르짖어야먄 한다.

<왕의 자녀의 초자연적인 /크리스 밸러턴/순전한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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