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2010

여부스 족속과 가족의 산[Jebusites and the Mountain of Family]

이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산에 도달했다. 말라기 46절은 엘리야가 것이고 그리고 그가 어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하였다. 이것은 구약의 마지막 약속이다. 심지어 마지막 구절이다. 엘리야가 것이며 그는 가정들을 구원할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육체적 질병을 야기하는 전에 없었던 가정 붕괴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많은 질병들을 사랑이 부족한 부모들에게서 찾아 있다. (사실 대부분의 질병들이 정신신체학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어떤 수준의 깊은 불행감은 몸의 저항체계를 약화시키고 사라진 평안 신체적 표시인 질병이 들어올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정서적인 장애의 일차적인 이유는 기능을 못하는 가정 기반 때문이다.

가정은 분명히 사탄의 공격 아래 있다. 비록 사탄의 공격이 다른 분야에서 나타날지라도,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아버지들이 실패해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가정의 산은 엘리야 혁명가들의 유업이 필요한 아주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 이것은 또한 사회 정의의 산이라고 불릴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사회의 진정으로 심각한 불의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들의 자녀들에게로 향하여 있지 않고, 자녀들의 마음이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향해 있지 않은 때문이다. 외의 다른 불의들은 이것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

성경은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는 이러한 것들이 단지 부모들의 잘못 때문만은 아니라고 한다. 무언가 악한 것이 자녀들에게 임해서 그들로 하여금 부모로부터 돌아서도록 만든다고 한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여 자랑하며 교만하여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1-4, 굵은 글씨는 저자 강조)

강조된 단어들은 특별히 우리에게 익숙한 자녀들의 행동의 종류들을 묘사한 것이지만, 마지막 때에는 그것들의 세기와 정도가 휠씬 심각할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 엘리야의 영이 하는 일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선제공격이다.

가정이란 무엇인가? – 가정에 대한 사전의 번째 정의는 부모와 그들의 자녀이다. 이것은 매우 분명하고 단순하다. 가정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기관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인 계획이 없었다면, 우리는 동물과 같이 되고, 동물 중에서도 하위에 속하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가정과 가정의 도덕성은 사회가 질서 있게 유지되는 근간이 된다. 가정 질서가 잘못되면 사회 질서 또한 잘못된다.

사회적인 질병들과 역기능들이 가정 단위의 붕괴와 일치하는데, 이유는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 범죄에 대한 통계를 보면, 붕괴된 가정들이 범법자를 만들어 내는 크게 일조하고 있음을 있다. 붕괴된 가정은 마약 사용, 불법적인 성적 활동, 안정된 직장을 확보하지 못함, 감옥 행으로의 선도들, 그리고 상상할 있는 모든 사회적 질병들의 주된 공급처이다.

아버지의 부재나 학대하는 행동이 붕괴된 가정에서 피해를 주는 요소이기에 사탄은 부분을 집중 공격할 것이다. 가정을 서로 연결하는 것은 사랑이다. 먼저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 간의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이 없이는 가정이 존재할 없다.

누가 가정의 신을 다스리는가? – 신명기 7장에 명시된 일곱 번째의 족속은 여부스 족속이다. 여부스라는 이름은 짓밟힌 장소 또는 거부 의미한다. 그것은 가정의 산에 있는 영인데, 반드시 제거되어야 대상이다. 여부스 족속은 산의 중요한 적으로 우리에게는 거부를 뜻한다. 거부는 받아들이거나, 고려하거나, 복종하거나, 듣거나, 인정하는 것을 거절하는 뜻한다. 이것의 나타남은 본질적으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정반대이다. 그런 사랑은 결혼과 가정의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을 사랑이라”(고전13:1-2, 4-8, 13)

사람이 일생 동안 계속해서 상담을 받고 약물을 복용할 수도 있겠지만,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종종 사실 같은 거짓의 형태인 거절감의 영향들로부터 회복될 없다. 아이의 경우, 자신이 부모의 완고한 말이나 행동을 잘못 해석할 거짓으로 빠져들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의 말이 실제로 거절을 표현한다. 어른의 경우에는, 이것이 잠깐 화나게 만드는 것이 되지만, 아이의 경우에는 거절감이 가슴 깊이 담기게 된다. 한편 부모가 아이가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다른 아이와 비교할 있다.

여부스의 마귀들은 이러한 상황을 한껏 이용할 것이고 아이의 귀에 이상 아이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고 속삭일 것이다. 아이는 매우 어린 나이에 거짓을 받아들일 것이고, 복잡한 버림받은 감정은 아이가 갖세 미래의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것이다.

여부스 족속은 거절감의 씨를 뿌리기 위한 모든 기회를 사용하려고 것이다. 만일 그가 관계의 측면에서 거절감의 씨를 한쪽에 뿌리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쪽을 거절하기 시작할 것이다. 가정 안에 일어나는 매우 현실적인 지진들은 거절의 지진파를 모든 방향으로 발산할 있다. 만일 남편이 아내를 떠나면, 거절은 매우 현실적이고 분명하게 되어 헤아릴 없는 피해를 남기게 된다. 만일 거기에 아이들이 있다면, 그들 또한 거절을 흡수하게 되고 자기 안에 담아 두게 된다.

심리학적으로 장남들은 이혼에 대한 비난을 자신에게 담아 두게 되고, 이것을 자신에 대한 거절로 받아들이에 된다. 거절이 거절을 낳고, 거절은 많은 거절을 낳게 된다. 거절에 의한 상처가 사람일수록 강한 반동을 내보내게 것이다. , 나를 거절해 달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에 대한 거절을 스스로 채우는 것이 된다. 우리는 이제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거절이라는 상처의 짐을 짊어지고 살면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려고 하는 복합 가정(혈연관계가 없는 가정-역자주)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서로 복잡한 관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에 의한 거절(사실이든 아니면 그렇게 느끼든) 종종 다른 곳에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이것은 어린 남자 또는 여자 아이에게 자신의 성적 주체성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남자 아이는 남성으로부터의 인정을 끝없이 찾을 것이며, 혼란 가운데서 종종 성적 경계선을 비정상적으로 넘어서게 것이다. 어린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여성으로 활짝 꽃과 같이 되는 길이 열리지 않게 되며, 남성에게로부터 무엇을 얻고자 하는 길로 결코 들어서지 않을 것이다. 여부스의 마귀의 무리들이 이런 수준의 감정적인 피해를 있을 , 피해자들은 정상에 있는 권세의 먹잇감이 것이다.

여부스의 왕운 누구인가? – 가정의 정상에 앉아 있는 권세는 바알이다. 그와 이세벨은 매우 비슷하지만, 바알이 포괄적이다. 이세벨은 바알을 섬긴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민족들은 자신들 나름대로의 바알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덫으로 남아 있었다. 바알이 의미하는 바는 지배자’, ‘주인또는 라는 뜻이다. 그는 다산의 신이었으며, 태양의 신이었고, 공급의 신이었으며, 비의 , 그리고 기본적으로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을 찾는 신이었다. 바알 제사는 종종 남창을 포함하였다. 몰렉 신에 대한 예배도 바알 예배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예레미야서에서 이를 찾아 있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하게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요 마음이 것도 아니니라”(32:35)

바알을 섬기는 것은 아이들을 잔인하게 그리고 참혹하게 희생제물로 삼았던 몰렉을 섬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배자들이 몰렉의 상을 뜨겁게 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몰렉의 뜨거운 팔에 안기게 하고서는 아이들이 불에 죽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우리에게 낙태를 지배하는 신을 의미한다. 1973년의 웨이드(Roe v. Wade) 재판 이후로 거의 5천만에 가까운 아이들이 편리의 제단에서 희생당했다. 땅에서 바알 예배는 수백만 아기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낙태는 부모에 의한 자녀 거부이며 여부스 족속이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부모의 마음이 자녀들을 향하지 않고 오히려 치명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적대하고 있는 것을 본다.

동성애 또한 바알 예배의 표현이며, 남창의 역할이 바알 축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동성애는 자신의 자연적인 성적 끌림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절이 반드시 의식적인 선택일 필요는 없으며, 이것은 누군가의 속에 심겨져서 그를 타락하게 만든 거절로 인해 생겨난 열매이다. 요점은 누군가가 동성애자로 태어났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기준들은 우리에게 훈련되어야 감정들을 반영하지 우리가 태어나면서 가진 감정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누구도 하나님의 표준들이 우리 안에서 용솟음치며 올라오는 그런 자로 태어나지 않았다.

……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을 종합해 , 마귀는 우리가 어렸을 우리의 성적 정서를 왜곡하여 우리가 무절제하고 혼동된 성적 욕구를 갖도록 하는 임무를 갖고 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포르노 스타들과 성인 클럽 댄서들이 어렸을 가까이에 있던 남성으로부터 학대를 당하였다고 한다. 동성애자들의 많은 수도 이와 같은 경우에 포함된다.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성적 일탈을 합리화하는 이유가 없음은 분명하다.

<일곱산에 관한 예언/조니 엔로우/순전한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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