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2010

친밀함을 선택하라

지식인가 친밀함인가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지라도, 성령 안에서는 귀가 멍멍해질 정도의 싶고 생각에 잠긴 고요한 침묵이 그분을 뒤엎었다. 나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무슨 말이든 완전히 부적절한 말이 될 것임을 알기에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점차로 엄숙한 침묵이 사라지면서 평화롭고 부드러운 애정이 그분을 덮었다. 그것은 마치 신랑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신부의 예복과 같았다. 주님은 당신의 교회에 대하여 아직 더 하실 말씀이었다.   

너의 영과 혼이 어지럽게 만드는 세상의 것들로 인해 불결해지도록 하지 마라라고 그분은 사랑을 담아 말씀하셨다. “욕체적인 갈망이 너를 시험에 들게 하여 네가 받은 현재 수준의 계시에 안주하도록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나의 바람은 너와 또한 내가 소명을 준 다른 사람들이 나의 진리가 흘러갈 수 있는 열린 통로가 되는 것이다. 너의 마음을 내게 열렴. 너희 존재가 나에게 쓰임받을 수 있는지는 더 이상 질문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 네가 얼마나 나와 친밀하며 네 자신을 나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는가가 질문이 되어야 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나와 동행했단다. 우리는 친교를 나누었고, 한낮의 시원한 곳을 함께 산책하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그 후 에녹이 왔다. 그는 통찰력보가 친밀함을 선택한 얼마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에녹의 마음은 순결했다. 노아 역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타락했을 때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의 종 모세는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도 나를 선택했단단(33:12-15). 엘리야는 나와 하나가 되길 갈망한 사람이었고, 내 임재의 우물에서 어떻게 물을 길어 나르는지 알았다. 모세처럼 엘리야는 내가 그와 동행하지 않으면 삶을 계속 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변화산 상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와 등장했지. 나와 그들과의 관계 때문에 그들은 독특한 형태로 그곳에 있을 수 있었다. 내 임재의 영광과 함께 나와의 친밀함 가운데 누리는 기쁨은 그들 마음속의 갈망이었다. 그들은 나와의 친밀함을 말하는 율법과 예언자를 대표하였다. 율법은 나에게로 인도하며, 예언적 기름부음은 인류를 나에게로 끌어당긴다.”

내 임재의 우물로부터 나온 계시가 모든 인류를 나에게 이끈다는 의미를 이해하느냐? 성령의 사역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네가 내 임재 가운데로 와서 네 영과 성령이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간단한 진리를 이해해야만 한다. 너의 마음과 헌신을 나에게 주렴. 너희 관심과 너의 귀를 나에게 주렴. 우리 이제 서로 사랑하며 친구가 되자. 영원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천사도 흠모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 오직 나의 신부와 내가 앞으로 누리게 될 것이란다.”

그때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실 때의 형상을 그리게 되었다. 말씀하시는 동안 주님께서는 손짓으로 부르는 자세로 두 팔을 올려 활짝 펼치고 계신 것처럼 보였다.

진리로 계시만을 위해 나에게 오는 사람들이거나 또는 그 무엇보다 나와 함께 있고 싶어 나에게 오는 사람들 중 한쪽을 너는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만일 네가 나를 선택한다면, 참으로 생명을 주는 진리와 영혼을 살리는 능력과 권능(dunamis)들이 네가 내 임재의 우물을 길을 때 함께 풀려질 것이다.”

생명은 진리 그 자체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임재의 우물 안에서 달콤한 하나 됨으로부터 나온다. 진리는 너를 자유롭게 하지만 나의 임재는 너에게 생명을 준다. 오로지 네가 내 안에 거할 때만이 생명을 갖는다.”

그분의 음성은 참으로 부드러워서 거의 들릴락 말락 한 단계였는데, 모든 단어가 감정으로 충만했다. 주님의 강렬한 응시가 나를 완전히 압도했다. 그분의 눈은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두 눈은 촉촉하게 빛났고 한 방울의 눈물이 주님의 오른쪽 볼을 따라 내려와서 옷 위로 떨어졌다. 그것은 당신의 신부와 친밀함을 갖고자 갈망하시는 주님의 열정을 보여주는 표시였다.    

<은밀한 처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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