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결정적 차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중요한 점에서 차이가 난다. 하나는 충성의 대상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의 변화이다.
우선, ‘충성’에 대해 논의해보자. 내가 이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다른 어떤 단어도 이 단어만큼 강한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에 만일 어떤 사람이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면 그는 왕을 위해 절대적으로 헌신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왕의 처분에 맡기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의 관계도 이런 충성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충성을 맹세한다는 것은 당신의 헌신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당신을 그의 뜻대로 완전히 지배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은 이런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오늘날 심지어 부부 관계에서도 헌신의 개념이 너무 희박하기 때문에 부부 관계도 충성의 좋은 예가 되지 못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헌신은 현재의 부부들 사이의 헌신보다 강하지만, 이상적인 부부간의 헌신보다는 약하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다. 이것이 충성의 핵심 개념이다.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때부터 이제까지 줄곧 이 개념에는 변함이 없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다녔다. 그분이 어디로 가시든지 그들은 따랐다. 그분은 가난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매일 밤마다 잠을 어디서 자야 할지를 모를 정도로 어려웠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분을 향한 충성심 때문에 그들은 불평하지 않고 어디든지 그분을 따랐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모범적 예를 제시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은 그분이 능력이 많으신 분임을 잘 안다. 당신은 당신의 영혼을 그분께 맡길 수 있다.
그분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 자신을 그분의 손에 맡긴다. 바로 여기에서 충성심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간다.
우리의 헌신은 사랑과 감사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을 잘 안다. 우리가 자신을 그분의 손에 맡겨드리면 그분이 사랑 가운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책임지고 지켜주고 영화롭게 하실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께 충성하는 일은 즐겁고 기쁜 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사이의 두 번째 차이점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마음’은 인간의 모든 동기와 목적과 욕구의 근원이요 자아의 중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가르친다.
우리 의식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신의 개인적 부족함을 깨달을 때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을 갖게 된다.
한편 무의식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주신다.
마음에 변화가 생기면, 그에 따른 가시적인 변화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로 인하여 생기는 결과들을 보거나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는 우리에게 미스터리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난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의 새로운 방향과 목적을 갖게 된다. 불신자들에게는 이것이 미스터리일 뿐이다.
마음의 변화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필수적인 사항이다.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참신자가 아닐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과거와 전혀 달라진 점이 없이 생활한다면, 나는 그의 신앙고백이 참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믿는다.
생명의 중심인 마음이 변화되었다면, 그 변화의 결과가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