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2009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2) [찰스 콜슨]

순종의 결심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 성경의 교훈에 따라 철저히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도 이렇게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일상생활 속에서 이 세상의 풍조에 휘말리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교훈에 따라 살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이렇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화(聖化)가 일어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의 삶을 향한 그분의 명령들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성화가 일어난다. 성화를 위해 우리는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잠겨야 한다. 성화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의 요구사항들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하며, 그것들에 따라 우리의 행동들을 점점 더 확실히 통제해야 한다. 성화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협동적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옳은 것을 받아들이도록 성령님을 통해 도우신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뒤로 물러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도록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다. 반면, 옳은 일이라고 여기면 무조건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나서라는 말도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하시는 일에 협력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번번이 실패하는 가장 큰 요인은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성경공부 시간, 개인기도 시간, 기도회 시간, 주일 대예배 시간만이 하나님의 시간이고 다른 시간들은 우리의 시간이라는 오해가 우리의 신앙을 왜곡시켰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들이 하나님의 시간이다. 

성경공부 시간이나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은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들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켜줄 뿐이다.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은 하루 24시간 지속되어야 한다. 마치 원하는 때에 양복을 입고 또 원하는 때에 양복을 벗고 하듯이 그분을 대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그분을 24시간 입고 있다면 우리의 순종은 반사적 행동이 될 것이다. 이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하루를 열 때 “오늘 하루의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이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함으로써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하루를 살면서 순간순간 그분이 나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라. 그러면 하루의 생활 동안 우리는 그분을 옆으로 밀어놓는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아침의 30분을 그분께 드리고 나머지 시간을 나의 것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하루 전부를 통제하셔야 한다. 아침 10시쯤 되면 우리의 마음은 아마도 그분에게서 어느 정도 떠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주여, 지금 저를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그분의 교훈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셨다면, 우리는 이 마음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순간순간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날마다 윤리적인 문제에 직면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그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순간순간 닥치는 문제들에서 그분이 우리의 생각들에 임재하셔서 완전히 통제해주시도록 훈련한다면, 그분은 점점 더 우리의 의사 결정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끼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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