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2009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 시편 23편 양의 운명은 100% 목자에게 달려있다(9) - 이진희 목사



목자를 잘 못 만나게 되면 양들은 불행하게 된다. 꼴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도 못한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시냇가는 꿈도 못 꾼다. 초장에 풀도 말라버리고. 양 우리도 다 쓰러져 가고, 양들은 비쩍 마르고 병들고 비실비실 댄다. 그런 목자의 목장에는 양들이 한 마리 한 마리 없어진다. 병들어 죽고, 맹수의 밥이 되어 죽고, 목자가 잡아먹어 죽고, 도둑이 훔쳐가서 양이 계속 줄어든다. 양들은 새끼를 잘 낳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낳아도 젖을 제대로 주지 못해 제대로 크지 못한다. 그런 목자의 양들은 다른 목장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양이 목자를 잘 못 만나면 양들의 신세가 비참하게 된다.

에스겔 34장에 바로 그런 목자들이 나온다. 그들은 양들을 먹이라고 맡겼더니 양들은 먹이지 않고 양들을 잡아먹었다. 이들은 목자가 아니라 양의 탈을 쓴 늑대이다. 그들은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양들을 다스렸다(4). 목자가 양들에게 관심이 없다. 목자가 있으나 있으나마나였다. 그래서 양 떼가 흩어지고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5, 8). 목자를 잘 못 만나면 이렇게 된다

뉴질랜드 같은 곳에서는 대규모로 양 털을 깎기 위해 양들을 키운다. 양을 잘 돌보지 않는다. 한 두 마리가 없어져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얼마든지 다른 양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그 양을 찾아 나선다고 하더라도 그 잃은 양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재산상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다. 이런 목장의 주인들은 양들을 치지 않는다. 그들은 목자가 아니라 목장 관리인이다. 양몰이 개가 양을 몰고 다닌다. shepherd라는 말이 원래는 목자였는데, 지금은 개에게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왜냐하면 목자가 하던 일을 개를 훈련시켜서 개가 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양을 앞에서 인도하지 않는다. 뒤에서 카우보이처럼 몰아댄다. 양은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쫓겨 다닌다. 이런 모습이 오늘날 뉴질랜드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목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 하나 하나를 개별적으로 다 안다. 양도 목자를 알고 목자도 양을 안다. 점순이, 점박이, 왕눈이, 겁쟁이... 그렇게 양의 이름을 부르면서 양들을 쓰다듬어준다. 그들은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시냇가로 데리고 간다. 양들이 쉴 때에도 목자는 쉬지 않고 양들을 돌본다. 부족한 것은 없는지, 양들을 괴롭히는 것은 없는지, 양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핀다.

선한 목자는 항상 양들과 함께 있으며, 앞서서 양들을 인도한다. 어린 양들은 품에 안고 간다. 잃어버린 양이 있으면 그 양을 찾을 때까지 찾는다. 맹수가 몰려오면 목숨을 걸고 양들을 지켜준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에게 그런 목자이시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과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해주신다.

우리가 위험한 인생길을 걸어갈 때 우리를 안전한 길로 인도해주신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와 동행하신다.

이리나 하이에나가 우리를 노리고 있을 때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주신다. 그리고 우리의 잔을 넘치도록 채워주신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리고 우리를 영원한 하늘 본향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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