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사님이 다른 교회로 설교를 하러 가게
되었는데, 그 교회에서 설교 제목을 알려달라고 전화가 왔다. 그래서
제목을 알려주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The Lord is my shepherd.”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The Lord is my shepherd.”
그러자 제목이 너무 평범하다 싶었는지 재차
물어왔다. “그게 답니까?”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That's enough.”
설교하러 가서 보니 주보에 설교 제목이 이렇게 실렸다.
"The Lord is my shepherd, that's enough."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날 설교와 딱 맞아 떨어지는 제목이었다.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That's enough.”
설교하러 가서 보니 주보에 설교 제목이 이렇게 실렸다.
"The Lord is my shepherd, that's enough."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날 설교와 딱 맞아 떨어지는 제목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그 이상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갓난아이가 자라는데 필요한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 엄마다. 엄마만 있으면 만사가 OK다.
이 아이에게 엄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 다른 것이 더 필요 없다.
엄마만으로 충분하다.
양은 가장 둔하고, 가장 나약하고, 가장 미련하고, 가장 힘이 없는 짐승이다. 아마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짐승은 양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이 돌보아주지 않으면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유일한 짐승이 바로 양이다. 양은 사람이 키우지 않았더라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대책이 없는 나약한 짐승이다.
그러나 양은 목자만 있으면 만사 OK다. 다윗이 노래한 것처럼 양은 목자만 있으면 부족함이 없다. 목자가 다 책임져주기 때문이다. 양들은 “내일은 어디에 가서 꼴을 뜯어 먹지? 어디에 가서 물을 마시지? 사망의 골짜기를 어떻게 지나지? 이리나 하이에나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지? 파리가 코에 알을 까면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이런
걱정들은 사실 다 양이 해야 할 걱정들이다. 그러나 양은 그런 것 하나도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걱정은 목자가 한다. 양이 해야 할 걱정들을 양 대신 목자가
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양의 문제들을 목자가 다 해결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양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가 그의 양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걱정 할 것 없다. 염려할 것 없다. 목자가 곁에 있는데, 왜 양이 염려하는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목자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The Lord is my shepherd, that's enough."
주일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시편 23편을 외워오도록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에 시편 23편을 외울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다들 손을 자신 있게 번쩍 들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손을 반쯤 들었다 내렸다 하는 것이었다. 외우긴 외웠는데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다 못 외워도 좋으니까 아는 데까지 외워보라고 했다. 이 아이가 일어나서 외우기 시작했다. “The Lord is my shepherd. That is all I want."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주시는 것이 내가 원하는 전부입니다.”)
원래는 이래야 한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그런데 단어들이 서로 섞여버리고 만 것이다. 비록 이 아이는 시편 23편을 한 절도 제대로 외우지는 못했어도, 다른 누구보다 시편 23편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양은 목자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목자가 옆에만 있어 주면 양은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 목자가 다 알아서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provide), 돌보아주고(care), 인도해주고(guide), 보호해주기(protect)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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