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2009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 시편 23편. 시편 23편의 양들은 푸른 초원에 살까?(5) - 이진희 목사



시편 23편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푸른 초장과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양들이 푸른 초장에서 평화롭게 꼴을 뜯거나 쉬고 있을 것이다.
그 옆에는 목자가 서 있고, 그의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목자이신 예수님의 품에는 어린 양이 한 마리 안겨 있을 것이다.


얼마나 낭만적이며 목가적인 풍경인가?
마치 어디선가 목자들의 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 않은가?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다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양들이 광야에서 산다고 하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시편 23편 때문이다. 시편 23편은 양들의 사도신경이라 할 수 있는데, 거기에서 양들은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우리는 양들은 당연히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서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양들은 뉴질랜드의 양들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양들은 푸른 초원이 아니라 광야(황무지)에서 산다.
베두인들이라고 있다. 이들은 광야에서 평생 양과 염소를 치면서 살아가는 유목민이다.
그들은 장막에서 생활한다. 양들과 함께 계속 이동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집을 짓고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몇 천 년 동안 문명의 세계를 등지고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베두인들이 시나이 반도와 아라비아 반도, 이집트, 요르단, 그리고 이스라엘의 네게브 광야와 유대 광야에 걸쳐 20여만 명이 있다.


성지를 방문하게 되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곳(유대 광야)에서 베두인들이 양을 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 같은 족장들은 유목민이었는데, 그들이 양을 친 곳도 광야였다. 그들은 땅이 없었다. 농사를 짓지 않았다. 그 대신 양을 쳤다. 그러면 어디에서 양을 쳤을까?

농사를 짓지 않는 산이나 황무지, 광야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양을 쳐야 했다. 족장들은 주로 브엘세바와 헤브론 근처에서 살았다.

브엘세바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비가 내리는 지역으로서 성경에서도 남방한계선으로 나온다. 브엘세바를 지나면 바로 이어서 네게브 사막이 펼쳐진다. 헤브론은 해발 1000미터 정도의 산악지대로서 동쪽으로는 유대 광야가 펼쳐져 있다.
그러면 왜 아브라함과 이삭은 이런 곳을 터전으로 삼고 살았을까?
광야를 끼고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양을 키우려면 광야가 있어야 한다.
남의 밭에 들어가서 양을 키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다보니 광야와 험한 산을 끼고 있는 헤브론과 브엘세바 근처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들레헴에서도 양을 많이 쳤다. 다윗이 바로 이곳 베들레헴 출신이다. 그곳에서 양을 치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목자로 부르셨다. 예수께서 태어나시던 날 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예수 탄생의 소식이 맨 처음 전해지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들이 맨 먼저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했다.


베들레헴도 해발 900미터가 넘은 산악지대로서, 베들레헴을 벗어나면 바로 황량한 유대 광야가 펼쳐진다. 그러기 때문에 그곳에서 양을 칠 수 있었던 것이다.

잃은 양의 비유의 무대가 어디인가?
누가복음에서는 99마리의 양들을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으러 갔다고 되어 있다( 15:4).
들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에레모스(eremos)로서 영어 성경에서는 모두 “광야”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성경에서만
“들”로 번역되어 있다. 우리는 들 하면 곡식들이 자라는 기름진 들판이나 평야를 연상한다. 그러나 에레모스는 그런 들이 아니라, 빈들, 다시 말해, 버려진 땅, 외딴 곳, 황무지, 광야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40일 동안 시험 받으신 곳이 바로 이 광야(에레모스)이며( 4:1), 오병이어의 기적이 행해진 곳이 바로 이 광야(에레모스)이다( 14:15).
세례자 요한이 활동했던 곳도 바로 이 광야(에레모스)이다.
바로 이런 광야, 황무지에서 양들을 키운다( 15:4).


그러면 마태복음에는 양들을 산에 두고 갔다고 했다. 어떻게 된 것인가?
유대 광야는 험한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야는 사막과 다르다.
사막은 끝없이 모래가 펼쳐진 곳이지만 광야는 버려진 땅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광야는 사하라 사막처럼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아니고 황무지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으로 마태가 말하는 산이나 누가가 말하는 광야는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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