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가 말했듯이 빨래를 짜듯 성경을 짜면
피가 나온다. 구약을 짜면 짐승의 피가 나오고, 신약을 짜면
예수님의 피가 나온다. 구약의 짐승의 피와 신약의 예수의 피의 차이는 무엇인가? 짐승의 피는 덮어주는 피다. 죄는 그대로 있다. 그냥 덮어두는 것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깨끗이 씻겨주는
피다. 그 피로 씻으면 죄가 없어진다.
제물로 죄사함 받을 때는 해마다 짐승의 피를 흘려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하고 영원한 제물로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바치셨다. 구약의 제사법은 임시방편이다.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번에 완전한 제물로 드려져서 다시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유대인들은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하는 여러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부정한 것을 담은 그릇을 씻을 때는 수돗물로 씻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펄펄 끓는 뜨거운 물로 씻어야 한다. 오븐이 부정하게 되었을 때는 뜨거운 물로 씻는 것으로는 안된다. 토치(torch)나 전기 용접기 같은 것으로 오븐을 달궈야 한다.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찬송처럼 유대인들은 부정 탄 것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물로 씻든지 불로 사르든지 한다. 그러나 더러워진 우리의 마음은 물로 씻을 수도 없고 불로 사를 수도 없다. 예수님의 피만이 죄로 더러워진 우리의 심령을 깨끗하게 씻기고,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를 정결하게 할 수 있다.
서양의 신문명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대감이 서양 선교사한테서 비누를 선물 받았다. 비누를 써보니 때가 잘 씻기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이에 대감은 문객들을 불러 비누를 자랑하며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월남 이상재 선생이 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내더니 비누를 깎아 먹는 것이 아닌가? 놀란 대감은 이상재 선생을 말렸다.
“여보게, 이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때를 씻는 물건일세.”
이에 이상재 선생은 말했다.
“예, 잘 압니다. 여러분은 이것으로 얼굴의 때를 씻지만 저는 뱃 속의 때를 씻어 볼까 해서 먹었습니다.”
우리가 비누로 때를 씻어 내듯이, 죄로 더러워진 우리의 심령을 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 내면, 마음, 심령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수의 피 밖에는
없다.
어떤 목사님 간증이다. 미가엘 천사장이 나타나서 목사님을 하나님의 존전에 데리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깨끗해야 하니까 먼저 몸을 씻으라고 했다.
샤워장에 들어가서 물을 튼 목사님으 기겁을
하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피가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미가엘이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깨끗하다는 의미를 모른다. 세상에서 아무리 깨끗한 것이라 할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깨끗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천국에서 깨끗하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목욕했을 때를 말한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깨끗하게 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목사님은 무섭긴 했지만 다시 샤워실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피로 온 몸을 적시며 샤워를 했다. 그 피로 샤워를 마치자,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몸이 되어 있었다.
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 때 저만치에서 환한 빛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까
천사들이 손에 빛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을 목사님에게 내밀었다.
빛의 옷이었다.
“이 옷을 입어야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옷을 입어야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목사님은 옷을 받아 입었다. 그리고 하나님 계신 곳으로 이끌려 갔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계신
지성소였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셨다. 목사님은 한없는
영광 가운데 넋을 잃고 있다가 환상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 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히 10:19).”
예수님의 피로 거룩함을 입게 되어, 우리가 이제는 대제사장처럼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천국에서 하나님 존전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희게 하였습니다(계 7:14).”예수님의 피로 거룩함을 입게 되어, 우리가 이제는 대제사장처럼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천국에서 하나님 존전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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