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2009

세계 영적 도해

세계 영적 도해 하나님의 사정
세상에는 무수한 신이 있지만 참 신을 찾아내는 방법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이 자신을 경배하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것에 합당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조건이 능력(power)이고 다음은 착한 성품으로 이 모든 조건을 모두 갖춘 신은 하나님 밖에 없다. 애굽에서 그의 백성을 이끌어낸 하나님의 모습은 그분의 능력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고, 그 백성을 사랑하고 계심을 증거한다. 성경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그분이 얼마나 선하신지 충분히 맛보아 알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의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께서 왜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도록 허용하셨을까?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분명한건 우리의 수준으로는 그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하나님의 사정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반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정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심정으로 이것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사랑하시기에 에덴에서 쫒아 내실 때도 저주가 아닌 구원 얻을 방법을 즉각적으로 약속하시고, 뱀을 향하여서는 즉각적으로 저주를 선포한다. 그리고 약속대로 여자의 후손을 통해 한 분이 오셨는데 그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셨다. 눈물날 정도로 놀랍고 놀라운 사실 아닌가!! 또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셨고, 성도의 권세를 회복시키셨다.

  사단의 세계경영 가인을 동생 아벨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자가 된다. 가인을 최초로 살인자로 만든 사단의 수법은 늘 동일하다. 첫째는 시기하게 하고 다음은 하나님께 불평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사람에게 범죄케 한다. 하나님은 가인을 용서하지만 가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믿지도 않으므로 홀로 서서 두려움으로 인해 처음 한 일이 성(현대어로 도시)를 쌓아 다시금 인류의 악의 역사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다. 가인은 도시문명을 건설하였고 여기서부터 인류문명이 시작되어 후에 바벨문명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세계영적 전쟁의 핵심주제가 문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바벨 문명을 대적하기 위해 문명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언어를 흩으시는 방법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세계경영 하나님은 이 바벨문명을 심각하게 보시고 보다 적극적으로 세계경영에 돌입하셨는데 그 방법이 사람을통해 하시는 것이였다. 가장 살기좋은 곳에 살았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너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고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라는 약속과 축복을 하시고 이 놀라운 축복의 말씀은 예수님의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라”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세계경영의 전략적 방법을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은 이 축복을 받기 위해 시험을 받고 통과한다.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는데 그 시험의 모형은 첫째 경제, 둘째 종교권력, 셋째 사회정치권력으로 나타났는데 이 세 가지 권력이 고대 바벨론 이후에 형성된 고대 신들의 권력으로 문명의 중심에 있었던 것들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문명의 중심에서 일하시지 않고 낮은 곳에 임했고, 모세도 광야 40년의 시간을 갖는. 즉 history maker는 문명의 중심으로 가지 않고 변방으로 간다는 것이다. 세계문명의 힘을 비웃듯이 주님이 가셨던 그 십자가의 길을 유유히 걸어가는 주님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이러한 위대한 믿음의 사람,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세계영적전쟁 다니엘에서 말하는 마지막 시대는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대되는 지식 정보시대이고 양과 염소가 확실히구별되며, 인생은 혼동 속에 있어 지혜자를 찾게 되고 무서운 속도로 세계는 통합되어져 점점 666시스템 통제 체제로 접어들게 되는 시대는 말한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세계를 막강한 힘으로 지배해 가는 적그리스도의 실체를 망각하고 미시적으로 활동하는 잡신들이나 동네 귀신들과 일상의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그런 괴롭힘은 분명히 있지만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가장 큰 세력이 세계관임을 알아야 한다. 영적전쟁은 세계관과의 전쟁이다. 오직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자된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높아진 모든 이론을 파하고 모든 사상을 바로잡아야 한다.

  팍스 아메리카 사회주의가 붕괴되면서 자유주의가 활기를 치게 되고 팍스 아메리카 시대가 도래하게 되어 미국 단독 지배체제가 되었고 세계 시장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신이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번영을 위해 경제발전이 중요하다고 보고 평화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전쟁과 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분쟁과 평화를 막는 방법이 지구촌의 다양한 종교적, 민족적 가치를 없애고 하나의 가치로 세계를 통합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나의 가치로 통합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 모든 사람들도 동의할 만한 “자유”라는 것이고 곧 자유주의 세계지배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 엘리트들의 세계비전이다.

  세계화의 음모 미국 엘리트들이 추진하는 세계화는 기술과 통신수단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 그 배후에는 추진세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세계의 서구화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것들은 능력지상주의를 만들고 양육강식의 시대로 약자를 같이 살 동반자로 보기 보다는 사회적 경쟁력을 저해하는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는 만물의 상품화라는 가치를 두고 자유주의라는 토양에서 자란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새롭게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로 자기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 세계를 자유롭고 개방된 하나의 시장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강자의 무절제한 폭력도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빈라덴과 무슬림 전사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서구의 이러한 타락상에 대해 교육시켜왔고 서구자본주의 문명의 지배를 받는 것이 큰 재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유에는 한계가 있고 이제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의 회복이 필요하다. 성경은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변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멍에를 메어야 하고 하나님의 간섭과 통제를 받고, 말씀의 권고를 받아야 한다.

  음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지배 하에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무참히 단절되고 파괴되었다. 여기서 어떻게 음녀가 자신을 숨기며 성장해 왔는지 살펴보도고 하자. 이 음녀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진원지인 에게해에서 세력화되기 시작해서 바벨론 앗수르 문명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애굽 문명을 건설했던 여신 이시스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애굽에서 후퇴하기 시작하자 이 여신은 앗수르(앗시리아)지역으로 이동한 다음 새로운 문명을 이루는데 그 중심도시가 호수위의 여신, 물위의 여신의 뜻을 지닌 니느웨 이다. 그리고 요시아 시대에 아세라 여신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지중해로 넘어와 시벨라 연신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아르데미스(아테네) 여신으로 계속 변한다. 이 여신의 공통된 특징은 자유와 풍요의 여신으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영적 뿌리이며 원조이다. 다음은 다이아나 여신으로 변신하고 또 다른 기묘한 전략으로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우상화하여 여신으로 둔갑한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마리아는 자유의 여신으로 다시 부활한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시스 여신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크리스마스 12월 25일이 그의 첫째 아들 호루스 탄생일이고, 그리스 기독교 정교의 예수님의 탄생일을 1월 6일로 하는데 그날은 둘째 아들 아이온의 생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 문명적 맥락에서 세계를 영적으로 도해하지 않고는 잘 잡히지 않는 가려진 실체이다. 이러한 음녀는 신학에서도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지성사회를 공략하고,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무기로 사용하며, 이러한 이유로 음녀는 현재 가장 강력한 힘으로 활동하고 있다. 적그리스도는 경제권력으로 인류를 지배할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변방으로 달리며 신사도행전의 역사를 이룰 주님의 위대한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끝까지 어린양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하고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기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겸손함으로 종교권력에서 자유해져 경제권력 없이도 그분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가야 한다. 거의 마지막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는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며 지혜로운 5처녀와 같이 그분을 맞을 준비를 하고, 무엇보다 말씀을 통해 통찰력 있게 이 시대를 바라보며 깨어 날마다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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