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2009
하나님을 아는 능력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에 의사소통의 필요는 늘 있어 왔다. 다름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서이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로를 아는 깊이 만큼 성장한다. 오래된 친구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구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작정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냇다고 관게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알만한 기회가 없었다면 아무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어도 관게는 여전히 서먹할 수 있다.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에는 항상 오해가 있게 마련이다. 상대의 뜻을 헤라여 아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관계를 돕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으로 원활한 의사소통법을 가르친다.
이때 좋은 의사소통의 중요한 기초 두 가지를 말하게 되는데 그 첫째는 상대방이 나를 알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일이며 둘째는 내가 아무리 상대의 뜻을 이해했다고 확신 하더라도 우해의 소지가 항상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상대의 말에 마음을 기울이는 태도이다. 이 기초와 빗대어 생각해 볼 때 우리들이 흔히 범하는 잘못된 의사소통의 문제는 내가 표현하지 않았으면서도 상대방이 나를 알아주리를 기대하는 마음과 상대방의 말을 깊이 듣기도 전에 내가 상대방을 안다고 넘겨 짚어 생각하는 버릇이다.
특히 관계 속에서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잘 사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것 때문에 생기는 오해의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자기 포기의 과정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하는 의사소통에는 그 자체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소지가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전하는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미 경험해서 알게 된 어떤 사실들에 비추어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눈을 경험한 적이 없는 따뜻하 ㄴ나라에 사는 아이들에게 눈을 알게 해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상대방의 표현을 해석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지만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경험이 상처로 인해 심하게 왜곡되어 있거나 이때 느낀 아픔으로 인해 관점이 너무 강하게 고착되면 의사소통에 장애를 일으키기 쉽다.
이런 경우는 상대방고 관계한다 하면서도 자신의 고착된 관점을 상대방에게 투영하여 관계하게 되는데 이는 사실상 상대방과 관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연못에 투영된 자신을 바라보는 나르시즘의 일종으로 단지 확대된 자신과 관계하고 있을 뿐이다. 의미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상대를 바로 알 수 있어야 하며 의미 있는 의미 있는 관계를 통해 우리 모두는 자신의 제한된 모습을 깨뜨리며 성숙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방편을 얻게 되는 것이다.
상대를 경험하는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자기 포기의 과정이 필수적인 일이다. 자신의 기준과 감각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 기준과 관점으로는 이렇게 밖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감각에 어긋나 보이는 상대를 신뢰해 주는 것이다. 이런 의사소통의 원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다스려야 할 책임과 이에 따른 권위를 우리에게 위임하셨다.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야 하기에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알아야 할 필요는 명백하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표현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공유할 수 있는 내면의 전제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아는 일이 우리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여전히 우리 경험의 한계가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인격으로 경험하여 알기 원한다면 우리는 나의 경험을 초월하여 그 분 스스로의 표현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내 맘속에 굳어진 관점으로 인해 생기는 나의 감각을 포기하고 내 감각에 옳지 않아 보이더라도 그 분을 신뢰하며 그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능력은 내 마음의 한계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표현에 마음을 기울이는 순종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김 준 - 의사 출신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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