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에서 성령은 그리스도의 역사(歷史)의 구원사적 사건들(성탄절 - 고난절 - 부활절 - 승천일 - 오순절)로부터 나오는데, 우리는 이를 교회력에 맞추어 기념하기도 합니다. 오순절은 이 순서에서 마지막 축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순절은
다른 축제들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역사(歷史)와 성령의 역사(歷史)가 서로를 제약하면서 뗄 수 없도록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성령으로부터 나오며, 성령의 능력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영원한
영을 통하여 십자가 위에서 구원의 죽음에 자신을 내어주며, 살리는 영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 일으켜지며, 영 안에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의 역사는 그의 세례와 함께
시작하며, 그의 부활에서 끝납니다. 그 다음에는 관계가 뒤바뀝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공공체에 성령을 보내며, 성령 안에서 임재합니다. 이것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역사(歷史)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이 됩니다. 성령 안에서 파송된 그리스도는 성령을 파송하는 그리스도가 됩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의 삶의 신비에 직면하게 되고, 생명의 영이 그리스도의 이 신비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물론 누가는 이 비밀이 상징적인 시간대를
갖는 구원 사적인 사건들의 순서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3일" 후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였고, "40일" 후에 하늘로 올라갔으며, "50일" 후에 교회에 성령을 부어 줍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유일한 신비, 즉 세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오시는 사건입니다.
예수의 남녀 제자들의 부활 신앙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이 점을 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는
공개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고, 예루살렘의 여인들과 갈릴리의 제자들만이 그의 부활을 체험하였습니다. 바로 이들에게 그는 친히 부활한 그리스도로 나타났습니다. 이 경험은
그들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그리스도처럼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능히 이기는 신앙을 발견하였으며, 이제는 그 어떤 일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부활한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직접 "나타남"으로써 그를 "보았던" 자들은,
요한복음 20장 22절이 강조하듯이, 부활의 영도 받았습니다. 부활한 그는 "성령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한 자의 현현(顯現)과 성령 강림, 부활 신앙과 오순절 경험은 서로가 하나이며, 시간적으로 구분될 수 없습니다. 부활한 그리스도를 인식하는 것과 부활의 영 가운데서 자신의 중생(重生)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은 같은 사건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죽은 신앙일 것이고, 그리스도가 없는 영적인 중생만이 존재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즉 40일 동안 부활한 그리스도의 가시적인 임재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결코 거룩한 환상의 종교를 설립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부활한 그리스도가 더 이상 현현하지
않았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복되도다"(요 20:29 )는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현현한 그리스도의 임재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임재로 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영은 그리스도의 현현 가운데 이미 임재 하였기 때문입니다. 참된 부활 신앙은 성령의 역사(役事)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하고서 "아, 그렇구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영에 사로잡히는 것을 뜻하고, 자신의
삶과 죽음에서 "내세의 능력"(히 6:5 )을 경험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이 없다면, 오순절도 없습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그렇지만 오순절이 없다면, 부활절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 신학이 없는 부활 신학이 없듯이, 부활 신학이 없는 성령 신학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