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2/2009

하나님의 두 방면 - 셋 한 분이신 하나님 (1)


[참고: ~~~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올려 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세상에 알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두 방면에 대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실 대에 두 방면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참 신이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이심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셨습니다. 이 말은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을말합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 이사야 44 6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숭배의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여호와 외에 신이라고 숭배 받는 다른 신들은 피조물들을 신격화한 것들로서 다 가짜들입니다. 참 신은 오직 여호와 한 분 뿐입니다.

이사야 45 18-22절을 보면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한가지로 가까이 나아 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능히 구원치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니라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이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신이시며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품 속에 말씀이 계셨고 그 영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확장

확장 방법/하나님께서 자기가 자기를 보내심
출애굽기 3 14-15절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원대로 역사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1:11) 그 하나님께서 자기가 자신을 보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 보내시는 방법은 말씀 즉 아들을 보내셨고 또 그 영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시는 방법은 두 방면으로 나타납니다. 이 말은 아주 중요합니다. 새 언약 안에서는 세 형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이 땅에 오시면서 육신이 되셨습니다. 육신은 부활하시면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약 안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그 영으로 분명하게 그 이름이 나눠집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심의 두 방면/아들과 그 영을 보내심

 하나님께서 그 아들(말씀)을 보내심(3:16)
그 하나님의 품속에 말씀이 계셨습니다(1:18) 이 말씀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기 전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1:1)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은 하나님의 독생자 즉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말씀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3:17)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그 말씀의 시작이 하나님으로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것들의 근본이 되시며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죽어가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3:16) 그 하나님의 아들 즉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1:14)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말씀 즉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1. 말씀이 계신 때/태초부터
요한복음 1 1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이 말은 말씀이 계신 때를 말합니다. 이 말씀은 태초 즉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기 전부터 계셨습니다.

2. 말씀과 함께 계신 분/하나님
요한복음 1 2상 절을 보면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 즉 진리와 함께 계신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말씀이 함께 계셨습니다. 여기에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라는 말은 하나님과 말씀이 한 존재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언어의 모순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형제님은 혼자 계시면서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합니까? 그러니까 그 말은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함께 라는 말에 해당되는 분은 말씀과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말씀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3:16) 이 말씀은 이해하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말씀이란 하나님 품속에 계신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불린 이유는 말씀은 시작점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은 시작이 없는 분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여호와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이시며 시작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품속에 계신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두 관계에 있어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3:16)

3.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아들과 아버지
요한복음 3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은 말씀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하나님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입니다.

4. 말씀이 보냄을 받기 전에 계신 장소/아버지 품속
요한복음 1 18절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해석은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는 독생자 즉 외아들이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말씀이 세상에 보냄을 받기 전에 계신 장소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이 계셨던 장소는 하나님의 품속입니다.

5.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분/외아들
요한복음 3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아들을 조금 더 상세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분은 한 분 밖에 없는 외아들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입니다. 아들은 왜 아들이라고 하고 아버지는 왜 아버지라고 합니까? 이치적으로는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아들이고 아버지는 자녀를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 처음부터 존재하신 분이지만 말씀은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시작 되셨기 때문에 아들이라고 칭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6.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방법
요한복음 1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방법을 말합니다. 그 방법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습니다.

7.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의 이름/예수
마태복음 1 25절을 보면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의 이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이것은 공개적인 방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을 보내심/우리 속에 임하신 보혜사(20:22)
 요한계시록 56절을 보면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구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보좌 앞과 주위에 네 생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좌에 둘려 24장로석이 있고 어린양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보좌 우편에 계시고 일곱 영 즉 성령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일곱이란 완전수로서 하나님의 영의 완전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성령을 일곱 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일곱 영 즉 보혜사 성령께서는 온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6 7절을 보면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장소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야 보혜사가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5 6절을 보면 어린 양으로 상징 된 예수님은 보좌 앞에 계시고 일곱 영으로 상징된 보혜사 성령님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보내심을 받고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하나님의 보좌로 다시 가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신대로 보혜사 성령님을 땅으로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영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또 다른 보혜사 즉 하나님의 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 20-23절을 보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가서 보혜사를 보낼 것이라고 하니 제자들이 근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올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되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은 곧 육신을 입으신 예수께서는 부활 후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늘로 올라가시고 부활 안에서 생명주는 영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다시 오셔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 속에 오셔서 우리 몸을 성전 삼고 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세상에게는 올라가고 이 세상에 안 계신 것처럼 감추시고 그를 사랑하여 예수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그 안에 오신 것을 알 수 있도록 나타내신다는 말씀이십니다. 이 말씀은 쉽게 말하면 못 된 자들을 혼내신다는 말씀이십니다. 예수께서 우리 안에 성전 삼고 계셔야 성장이 있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치 않으면 예수님은 떠나갑니다. 곧 그 영혼은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못 된 자들을 혼내실 것이라는 말도 바로 이 말입니다. 그는 성장이 없을 것이고 마지막 날에 벌거벗은 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보혜사 성령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들을 성전 삼고 우리 안에 오실 때에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이 함께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세 위께서 영으로 하나되신 방면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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