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마 ~~~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올려 놓습니다]
하나님의
두 방면/존재적으로 세분이시며 영으로 한 분이신
하나님
은밀한
승천/부활하신 날 아침 첫 열매로 바쳐지심
요한복음
20장 15-17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 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밀한 승천에 관한 증거가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막달라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의 무덤에 와서 보니 무덤을 막아뒀던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맞은 줄 알고 슬퍼하였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생각하고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다시 그 이름을 부르시니 그 때서야 알아보고 반가운 나머지 손으로 만지려 하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서 형제들에게 이르라.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간다고 이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날 새벽에 은밀하게 승천하셔서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바쳐 지셨던 것입니다.
그 날 저녁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도마가 그곳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해 듣고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지 못한
도마가 말하기를 손가락을 못 자국에 넣어보고 손으로 옆구리를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여드레
후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도마에게 만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부활 직 후 처음 익은
열매로 은밀하게 승천하셔서 아버지 하나님께 바쳐지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 하신 날 새벽에
은밀하게 승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처음 익은 열매로서 바쳐지신 후 다시 오셔서 그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으로 봐야 합니다.
영으로
한 분이신 방면/다시 오셔서 제자들 속에 성령을 불어 넣으심
요한복음
20장 21-23절을 보면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안식 후
첫날 부활 안에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고 새벽에 은밀한 승천이 있었으며 그 날 저녁에 다시 제자들에게 오셔서 내주하시는 성령을 제자들 속에 불어
넣으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요한복음 7장 38-39절에 말씀하신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라고
하신 말씀의 성취입니다.
여기에서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에서
숨과 성령이 원어가 똑같습니다. 그 뜻은 숨, 바람, 호흡, 영, 성령 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성경의 해석은 한 숨 쉬며 성령 받으라고 하신 것처럼 보이나 그것이
아니라 영을 내 쉬며 성령을 받으라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한
숨 지으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45절을 보면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성경 해석이 잘못 되어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로 해석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두 방면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항상 중요한 거의 모든 것이 두 방면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공개적인 방면은 모두가 다 눈으로 보면 압니다. 그러나 같은 주제의 은밀한 방면이 꼭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 9장 39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방면으로 감추신 이유는 본다고 하는 자들을
모두 소경되게 하시려고 감추셨다는 말입니다. 또 마태복음 11장 27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 갑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다 소경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며 또 눈이 어두운 자도 구덩이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앞에 진실로 겸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구약의 건물 성전이
신약 시대에는 우리 마음의 성전으로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법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 장소가 교회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성전입니다. 교회에
나가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날을 지키는 것으로 신앙생활 잘한 것처럼 생각하고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체의 삶을 주님 앞에 드려도 부족합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당장에 죽을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무시로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날을 내 마음의 성전을 지키며 거룩한 열매를
맺어 가야합니다. 우리를 성전 삼고 우리 속에 오신 주님은 아주 예민하십니다. 조그마한 죄가 있어도 떠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끝내야
합니다. 성전이 더러우면 멸하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고전3:16-17)
사도들의 인식/신약사상(하나님과 예수님과 그 영)
로마서 15장 6절을 보면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분명하게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신약 안에서 하나님
하면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 사상이며
이 사상은 신약 전체에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거의 대부분의 각 서신서 첫머리에 어김없이 이 사상이
나타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1장 2절을 보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11장 31절을 보면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주 예수의 아버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3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1장 4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도 되고 그리스도의 아버지도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에베소서
4장 5-6절을 보면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주도 한 분이시고 하나님도 한 분 이시라고 각각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무슨 말이냐면 신약 안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신약 안에서 하나님 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말하고 예수님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12장 29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는 말에 예수님이 포함되지 않으며 아버지 하나님만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 서신서
거의 전체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면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는 것으로 인식하시고 예수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존재적으로
셋이신 방면/하나님과 예수님과 그 영
1. 셋 한 분이신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
에스겔 1장 26-28절을 보면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내가 본즉 그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나며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임
요한 계시록 1장 16절을 보면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0장 19-20절을 보면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이신데 손과 옆구리를 본 제자들이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그
영 하나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임
요한 계시록 5장 6절을 보면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보혜사 성령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말씀들을 해석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보아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 영 하나님의 상징적인 모습을
모두 살펴보아도 그 영광의 형태가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항상 성경은 한 면은 공개되어 있고
한 면은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이 거룩하시고 빛에 쌓인 분이라서 볼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에스겔 형제님께는 그 모습을 공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그 영광의
모습을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2.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 시대의 통치
[고전 15: 24-28]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이 말은 예수께서 천년왕국 시대에 천년동안
다스리시고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들을 멸하신 후 만유를 통일하시고 나라를 하나님께 바칠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 시대에는 아들도 아버지께 복종하시고
영원토록 다스리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저희들은 원합니다. 우리의
눈이 순수하여 누룩의 고정관념을 벗고 밝은 눈으로 그 뜻을 깨닫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보혜사 성령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아버지를 사랑하여 알기 원하여 모든 무리에게 충만하게
임재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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