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2009

하나님의 말씀, 뜻과 방법을 알아냄 2

하나님의 말씀, 뜻과 방법을 알아냄 2


그의 완전한 뜻을 계시해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WAY)

하나님의 지시로 소원 - 시편기자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시편 40:8). 하나님의 가장 큰 즐거움은 그의 자녀들이 그의 뜻을 행하기를 소원하는 데 있습니다. –, 자진해서 육을 못박기를 기뻐하며 성령님의 원하시는 바를 이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그의 뜻을 행하도록 압력을 가하시는 것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기뻐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우리에게 확신을 주십니다(시편 37:4). 이 구절은 이중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갖기를 원하시는 바를 소원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함에 따라서, 그분께서는 예언적인 감동으로 이루어진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 소원은 하나님의 뜻의 초자연적인 암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수적인 확증들이 없이 소원 자체만으로는 우리가 소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뜻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못됩니다.

레마와 성서적 조명 - Rhema, 희랍어 말씀’ –‘말하다 동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레마)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레마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는 말씀이나 혹은 설명이며, 레마는 우리의 개인적인 특정한 상황에 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레마는 적절한 때 로고스에서 나온 성령의 감동으로 나온 말씀으로서 생명을 가져다 주며 그 말씀을 성취하고 시행할 만한 능력과 믿음을 줍니다. 레마의중요성은 하나님의 말씀 (Rhema)인 성령의 검(6:17)을 가지고 관련된 본보기를 보여 줍니다.

레마는 예언의 말씀과 같은 것으로 다른 이를 통하여 받을 수도 잇고 아니면 성경을 개인적으로 묵상하다가 아니면 기도를 하는 도중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조명으로 주실 수도 있습니다. 로고스는 고정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 그리고 레마는 성령에 의해서 우리의 개인적 체험에서 직접 어떤 일에 적용될 수 있도록 선포된 로고스와 일치된 특정한 부분입니다.

레마는 당신의 영속에서 태어난 감동으로 이루어진 말씀으로써, 동굴 속에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던 조용하고도 작은 음성과 같은 성령의 속삭이십니다. 이것은 당신의 혼에 오는 하나님의 감동 즉, 하나님에게서 오는 번쩍하는 생각이나 혹은 창조적인 생각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영속에서 잉태되었으나, 하나님의 조명으로 당신의 선천적 이해력으로 태어나옵니다.

진정한 레마는 그와 함께 깊은 마음속의 확신과 성령의 증거를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아주 선명히그의 뜻을 레마로서 계시해 주십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우리는 그것을 어떤 특정한 구절의 조명을 통하여 받게 됩니다. 우리가 읽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너에게 적용한다고 말씀하시며 되살아나게 하는 레마를 보내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방법으로 그의 사역의 지시를 받으셨습니다(누가4:16-21). 이러한 형태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시를 계시의 지식혹은 성서적 조명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선지자와 개인에 관한 예언 -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그들의 개인적인 생애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는 말씀을 해 주시기 위해서 오늘날에도 선지자를 쓰고 계십니다. 이러한 방향을 제시하는 예언들은 예언의 은사로 역사하는 어떤 이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지자를 통하여 주어집니다. 성도들과 다른 사역 자들도 비록 어떤 사건에 관한, 지혜의 말씀이나 혹은 지식의 말씀을 받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는 말씀들은 대체로 선지자의 직임으로부터 나와야 됩니다.

오랜 역사와 실적으로 입증된 선지자의 말씀이라면 신중이 여기고 귀중히 여기고 또 즉시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근원에서 나왔든지 간에 우리에게 주어진 예언의 말씀을 조심스럽게 고려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증명된 사역 경력이 없는 어떤 이가 어떤 말씀을 주었을 때, 그리고 그 말씀과 결부시킬 수가 없거나 혹은 그 말씀에 대한 정확한 증거를 갖지 못했을 경우에, 그 말씀대로 실천하기 전에 몇 명의 사람들을 통한 더 많은 확증을 얻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우리가 완전히 거부할 수 있는 말씀들은 오직 비성서적이거나 혹은 분명히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들뿐입니다.

성령의 은사들  - 성령은 그의 아홉 가지 은사들, 특히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과 같은 계시 은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 사역 자들과 실업 인들은 그들의 교화와 사업에서 현명한 결정들을 짓기 위하여 이러한 은사들을 적용하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들은 인간적인 지식이 부족하고 또 성경이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지 않는 경우, 가족에 대한 결정들을 내릴 때 이러한 은사들을 필요로 합니다.

헌신된 크리스챤에게는 옳고 그른 것의 선택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두 가지 옳은 일들 사이에 선택이 필요할 때에는, 초자연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각자 성도들에게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도와 주기 위해서 또한 현명한 결정들을 통해서 따라 가도록 돕기 위해서 유익합니다.

성령의 열매들  -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단지 은사들의 초자연적인 나타남으로 인도함 받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초자연적인 열매는 은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똑같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열매와 은사는 같은 동전의 양면과 똑같아서 그 동전이 쓰여지려면 양면이 다 좋은 모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복음주의자들은 성령의 열매를 강조하는 경향이 잇고, 또 카리스마주의자들은 은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스스로 경쟁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열매와 은사는 양쪽 다 우리 생활 속에 나타나는 영의 활동입니다.

이사야는 예언으로 선포하였습니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이사야 55:12) 영적인 평안에 따라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영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 때문에 실천하는 것은 성령으로 인한 동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즉, 성령의 은사와 열매 양쪽을 다 포함하여 행위로 옮기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도하고 또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고린도후서5:7).

이러한 것 중에서, 하나님의 평안이 특별히 중요합니다. 바울은 영적인 생각은 그 속의 삶과 평안의 정도로 분간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라.” 그는 또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심령을 지배 , 다스리고 또 지시하도록 교훈하였습니다(3:15), 왜냐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모든 혼란, 의심과 우유부단을 압도시켜야 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7).

만일, 당신이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바란다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시편 34:14). 하신 말씀을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건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그 다음 순간, 당신의 혼과 영속을 살펴보아서 그 상황에 관한 얼마나 많은 기쁨과 평안을 당신이 지니고 있는가를 알아보도록 하십시오.

그 사건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몇 가지가 분명히 두드러지게 보입니까? 당신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두려움입니까? 소망을 품고 있습니까? 아니면, 낭패하고 있습니까? 기쁨을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불안해하고 있습니까? 평안을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중압감을 느낍니까? 절제입니까? 아니면, 초조함을 갖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어느 사건에 처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다면 성령에 의하여 인도하심을 박게 되며 또 마음속에서 올바른 열매들을 찾아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러한 것을 갖고 잇지 않다면, 그때에는 하나님의 뜻의 파란 신호가 켜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신호들이 당신에게 앞으로 나가도록 불을 켜 줄 때까지 아무런 일도 행하지 말고 어떤 서약이나 혹은 최종적 결정들을 내리지 마십시오.

성령의 증거, 허가, 혹은 제지 - 바울 사도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하기를 원하셨던 바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만일 그가 사역을 위한 길을 떠날 때에 어느 길로 가야 하라 바를 초자연적으로 알아내기 가 불가능하였을 경우에는, 그는 그저 스스로 생각해서 가장 좋다고 여기는 쪽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만일, 성경께서 그 시점에서 그에게 그 장소에 가기를 원치 아니하셨다면 성령은 바울에게 그의 영속에 어떤 점검 표나 제지를 주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과 16장에서 생긴 일들은 그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다른 길로 가게 하시고 그 대신 마케도니아로 여정을 바꿈으로써 사도가 이러한 방법으로 움직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하나님이 구체적인 뜻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뜻도 갖고 계심을 입증해 줍니다.

복음이 만민에게 전파됨이 하나님의 일반적 뜻이었으나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 또 어떻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들도 갖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애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또 따르기를 위해서는, 우리는 성령의 점검 표들과 제지에 극히 민감해야 되겠습니다.

성령은 또한 우리가 그의 생각을 알도록 도와 주시기 이하여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증거하실 것입니다”(8:16). 예를 들어서, 선지자 아가보는 바울에게 그가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며, 또 예루살렘에서 투옥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그러한 계시가 그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 못되기 때문에 그냥 길을 떠났습니다. 성령은 그의 노정에서 거의 가는 도시마다 같은 진리를 증거해 주었습니다(행전20:22; 21:1-14). 아가보의 예언은 종전에 그에게 주어진 수없이 많은 개인적 예언 속에서 말씀하였던 바로 또 하나의 확인이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뜻의 파란 신호등이 비취기를 원한다면, 그런 뒤에 당신의 영속에 허가를 받아야만 됩니다. 성령으로부터 오는 암시나 혹은 제지를 절대로 무시하지 마십시오. 무시하는 경우 당신의 영적 감각들은 둔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제정해 놓으신 파란 신호등을 껌벅거리는 노란 신호등으로 마음속에 변화시켜 줄 것이며 그리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자기 의지로 또 당신의 방법들로 목표를 정하거나 혹은 끝없는 혼란과 우유부단의 상태로 묶여 있도록 만들어 주게 됩니다.

현명한 상담  - 예수님의 성서적인 이름들 중의 하나는 상담자”(이사야9:6)입니다. 상담을 통하여 예수님의 뜻과 방법을 보여 주시는 그분과 똑 같은 그의 성품과 인격을 보여 주십니다. 그의 이름은 또한 영원한 아버지선한 목자이십니다. 왜냐하면, 목사와 부모와 상담(즉 우리 자신보다 더욱 현명하고 성숙한 사람들로부터의 신령한 충고)은 하나님의 뜻을 결정짓는 중요한 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상담자를 찾아볼 필요를 확신케 해 주는 수 없는 성경 구절들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도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무릇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모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너는 모략으로 싸울,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잠언11:14; 12:15; 15:22; 19:20; 20:18; 24:6).

권고를 구하는 것은 그렇다면,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미리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오히려 마음 문을 열고서 권고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지자, 목사, 부모나 혹은 장로에게 접근할 때에, 우리는 마치 우리가 벌써 마음을 결정했다는 말씨와 태도로 나가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것을 행하도록 말씀하셨지만, 그런 나는 당신이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정말 그것을 당신에게 행하도록 말씀하셨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과 논쟁하여 들겠습니까? 그러한 태도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적당한 권고를 주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구원을 강요하시지 않는 정도 이상으로 그의 권고도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확인 - 하나님의 뜻을 결정짓는 원칙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사실로써 그것을 받아들이기 전에 매사에 두세 증인들의 입으로 학인을 얻어야 하는 성서적 요구 조건입니다. 확인을 받는 데 대한 이러한 원칙은 모세의 율법에서 확립되었고(신명기17:6; 19:15) 또 은혜 시대의 교회에서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재확립되었습니다(고후13:1).

이 규정은 권고의 말씀, 예언의 말씀 혹은 레마 말씀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이 단 하나님의 성경 구절로만이 확립될 수 없는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도 한가지 예언, 한가지 레마, 한가지 권고 혹은 한가지 다른 어떤 것으로는 확립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두 세가지 다른 근원으로부터 확인을 받기 전까지는 한가지 말씀에 관한 판단을 보류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거슬리는 일이 안됩니다. 사실상,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중한 문제들에 관해서는 당신이 한가지 예언을 받아들이기 전에 최소한도 두 명 또 더 좋기는 세 명의 증인들이 있도록 하시는 것을 주장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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