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 라는 말의 뜻보다 ‘천국’이란 말의 뜻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천국(天國)이 하나님과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는 인간의 말로는
가히 표현할 수 없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요 하나님께로부터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서로 사랑하고 섬기면서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천국 (바실레이아,βασιλεία τŵν ορανών)이란 문자적인 변역이다.
하늘 (샤마임)이라는 말은 히브리인(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란 말의 완곡한 표현으로 마태 복음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뜻이다. 헬라어의 바실레이아는 ‘왕국’이란 뜻으로 왕에게 통치나 지배를 받는 나라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하늘나라,
천국[란 순종하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통치(다스림)를 받는 곳을 말한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나라’(바실레이아,βασιλέια)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1. 땅의 바실레이아(나라, 왕국)- 땅에 있는 왕들의 나라는 그 왕들이 지배하고 있는 영역이다(예, 이씨 조선은 이씨들 가문에 속한 임금들이 다스린 세상 나라이다).
2. 하나님의 바실레이아 – 마태는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아버지의 나라(마6:10), 그의 나라(마6:33)]와 천국(하늘나라:마4:17, 5:3, 10)으로 표현하였고, 다른 복음서에서는 거의 하나님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늘나라(βασιλεία τών ορανών)라는 표현은 마태복음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3. 그리스도의 바실레이아 –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나라이다. 이 나라는 성부 하나님의 나라(바실레이아=왕국와 동일하다. 그리스도는
왕권을 언젠가 아버지께 이양하게 될 것이다(고전15:24-28). 그리스도는 만 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로서 온 우주를 통치하신다.
천국(天國)의 도래(到來)
천국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와
같은 뜻이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서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마4:17) 예수님의 천국 복음 전파와 기적들(마4:23-24) 가운데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해 떠났던 것은 하나님의 나라(메시야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계1:6, 5:10 ).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의 다스림 또는 통치나 왕권에 순종(복종)하는 백성들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곳이 교회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기도와 찬양과
헌신 등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 안에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이 교회요, 현세의 천국이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현세 천국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 확장되어
가고 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또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는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한다.
천국(天國)에 대한 신학자들의 견해(하나님 나라의 도래-헤르만 라델스)
1. 19세기 말 리츨은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사랑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 세상의 왕국이며 예수님은 도덕교사로서 이 왕국을
건설하였는데 이것이 곧 윤리적인 공동체”라고 말했다. 하르낙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예수님은 하나님의 부성(父性)과 인간 영혼의 무한한 가치 및 사랑의 윤리 등을 외친 도덕 교사였다”고 했다.
2. 바이스는 리츨의 이론을
공격했다. 즉 그 나라의 현재적 시간성 문제를 지적했다. 바이스는 “그 나라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뤄질 미래의 실체”라고 강조하면서 “예수님은 도덕
교사가 아니라 새 시대의 선포자”라고 말했다.
3. 슈바이처는 하나님의
나라를 아주 가까이에 있는 미래의 실체로 보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전도 여행이 끝나기 전에 재림이 이뤄지고 천국이 도래하리라고 예상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예상이 빗나갔음을 알고 궤도를 수정한 뒤 스스로 메시야적 고난을 감당함으로써 천국의 도래를 실현시키고자 했으나 이것마저 실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결국 슈바이처에 의하면 ‘예수님은 착각에 사로잡힌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4. 바이스와 슈바이처가
하나님 나라의 시간성을 미래에 국한시켜 놓았으나 C.H. 다드는 그 나라의 현재 성을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실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강조점을 미래에서 현재로, 기대에서 경험으로 영역으로 옮겨놓았다.
5. G. 보스는 논쟁의
핵심이 된 이 시간성 문제를 분명히 드러내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왔고 종말론적 시기는 이미 도래했으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 및
심판은 아직 남아 있다”고 했다.
6. 쿨람도 이미(already)
이뤄진 사실과 아직(not yet) 이뤄지지 않은 사실 간의 긴장 속에서 오늘의 성도가 살고 있음을 잘 지적했다.
7. 칼 바르트는 이 시간성의
문제의 논쟁을 필요 없게 만들었다. 그는 인간이 실존적 위기에 있기 때문에 매 순간이 종말이라고 했다. 인간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순간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서 인간에게로 도래한다는 것이다.
8. 볼트만도 칼 바르트의
의견을 따른다. 말씀을 듣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 새로운 자기 이해가 이뤄지며 그 순간에 종말론적 사건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칼 바르트와 볼트만의
견해에 따르면 구름 타고 오실 예수님의 재림이나 성도의 부활 등은 역사상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성격상 윤리적
변화냐, 역사적 사건이냐, 아니면 실존적 이해냐, 또 시간상으로는 현재냐, 미래냐 혹은 무 시간적이냐 등으로 거듭 논의되어 왔다.
9. 리델보스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책에서 천국의 일반적인 성격을 신약성경에서 ① 하나님 중심, ② 그리스도(메시야) 중심, ③ 현재적 성격, ④ 미래적 성격으로 말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 관한 것이며 현재에도 이루어지고 성부의 중심이자 그리스도의
중심이며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로말하고 있다.
천국(天國)의 현재적(現在的) 성격(性格)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통해 천국의 성격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의 영의 아버지는 하늘에 있는다. 우리는 땅(지구)이라는 세상 나라에 살면서 하늘나라(천국=하나님의 나라)에 계신 아버지를 부른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또는 “하늘에 계신 아빠!”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한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이름’이 라는 말 앞에 ‘당신의(your)’라는 소유 대명사가 빠져있다.
‘당신의’라는 뜻을 살려서 번역하기가 곤란해서 우리말 성경 번역 학자들이 뺀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당신의 나라의 임 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리이다”가 온다. 우리는 지상에서 우리를 아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총을 통해서 구원해 주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삶은 먼저
예배이며 예배에는 반드시 우리가 지켜야할 조건이 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수직적
관계)과 형제들간의 화목(사랑과 용서-수평적인 관계)이 예배(제사)의
선행조건이다.
천국(天國)의 미래적(未來的) 성격(性格)
다드는 최근에
자유주의의 견해를 ‘실현된 종말론’이라는 의미로 수정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이 천국의 미래에 관해 말한 것으로 생각되는 곳은 없고 하나님
나라의 모든 종말론은 영적이고 현재적인 경험의 문제로 변해 버린다. 물론 복음서에 있는 대로 예수께서 미래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점을 다드가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이론은 곧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게 된다.다드는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를 “왔다”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가복음
1:15절과 마태복음 4:17절에 있는 ‘가까웠다’(엥기켄 ὴγγικε)는 마태복음 12:28절과 누가복음 11:20절에 있는 ‘왔다’(에프다센,ὲ ́φθασεν) 와 같이 똑같이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의 뜻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아도 미래적인 성격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관계된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뜻은 ‘아버지의
통치권, 왕권(바실레이아,βασιλέια)이 이 땅에 임하게 하여 달라’는 뜻이고 그리고 ‘이 땅에 하늘에서 이루어져 오고 있는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천국=하늘나라)에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기도이다.
이 나라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천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있으시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께 순종(복종)하는 백성들이 살고 있다.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땅으로 갑자기 옮겨져 오게 하여 달라는 뜻이 아니다. 그 보다는 지금 이 땅의 우리의 삶 속에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성령이 와 계시고 그분의 다스림(왕권)과 순종하는 백성들이 있는 곳에 ‘현세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세 천국의 개념은 때로는 공간적인 개념과 시간적인
개념을 초월해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주님의 미래의 재림을 기점으로 이 땅 위에서 교회를 통해서 계속 확장되어져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현세 천국을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닮아 가는 성화의 기회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
현세 천국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세속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낙원과 같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전쟁도 없고 불안도 없이 복지가 잘 되어있는 행복한
지상의 나라나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말하지 않는다.
현세
천국이란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소속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성부 · 성자 · 성령 하나님의 다스림(통치)을 받고 순종하면서 사는 지상의 교회와 가정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 나라와 현세 천국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어떤 물질적인 개념이 아니다. 외관상으로 보면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삶을 사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는 삶, 성령
충만과 인도를 통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어지는, 현재 지상의 개인과 교회가 곧 현세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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