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기름 부음(내재된 기름부음 Anointing Within) 요한복음 14:16 -17
막9:29 “기도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슥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되느니라”
눅4:14-19; 14;“능력”이란 단어가 성령과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에 주의.18; “기름부음” (참고: 행10:38) 즉, 위의 말씀 전부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복음전하고, 병을 고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예수님의 사역(가르치는 것, 복음을 전하는 것, 병을 고치는 것)
눅 4장 ~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21: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역하셨더라면 기름부음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에 관해 하신 말씀입니다. 4장 12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강 덕희 )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데보라 강/ 예수님을 믿는 자)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예수님 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믿는 자에 임하는 성령의 기름부음
요3: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믿는 자 안(in)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일정한 성령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직분에 행하도록 하는 기름부음은 내 위에 임합니다(comes upon). 같은 성령이지만 그것은 다른 기름부음이다.(참고 눅24:49).
내재된 기름부음(Anointing Within) 참고: 고후1:21-22; 1요2;20, 27
롬8장 9절 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여기서 말하는 것은 성경 용얼 성령세례를 받는 다거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세례’를 받는 다는 것은 새로운 탄생과는 다른 체험이다.
성령의 두 역사: 거듭남과 성령세례 참고: 요4:14; 38.
요4:16-17 “너희와 함께(with)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in) 계시겠음이라”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upon) 임하시면(after,임하신후에는)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 이것은 누가복음24장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능력으로 입혀지는 것을 말하는 것- 믿는자에게 주어짐 성령안에 사는 삶 –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참 8:11)
그리스어의 “파라클레토스 parakletos”는 위로자(Comforter)로 번역되었는데 요한복음 4장 16절에서는 “곁으로 도와 주도록 부름 받은자(one called alongside to help)”라는 뜻입니다.The Amplified Bible(확대 번역 성경)에서는 16절에 있는 이 그리스어의 7가지 뜻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Comforter(위로자), Counselor(상담자), Helper(돕는 자), Intercessor(중재자), Advocate(대언자), strengthener(강하게 해 주는 자), standby(곁에서 대기하는 자). 성령님은 이 모든 역할을 다 하시는 분입니다.
1요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고전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 성령님은 계시의 영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것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1요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시면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왜 그리스도인들이 패배하는가?
저(Deborah H.K.L) 한테는 하나님 아버지나, 예수님이나, 성령님은 멋있는 분이시고, 또한 실감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부터,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의식하는 것을 개발하기 시작하면 성령님은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들은 바른 가르침을 받지 못해왔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우리 안에 살기 위해 들어오신 분은 하나님의 인격체(a divine Personality)로서 어떤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즉 그분은 하늘에 속하신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배우지 않았거나 바른 것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나 자주 패배하며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가끔 우리는 배웠던 것들을 배우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을 우리의 마음으로 다 이해하지 못할 때도 우리는 우리의(인간의 )영에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예; 고전14:14절)
하나님의 성전
1요4;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골1:27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1요2:20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IN TOU) 거하나니”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6:14-16 ~~ 여기서 믿는 사람들은 “믿는 자” 라고 불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 자”라고 부름니다. 믿는 자를 “의(righteousness)”, “빛”, “그리스도”, “하나님의 성전” 이라고 하고 믿지 않는 자를 “불법(unrighteousness, 불의 )”, “어둠”, “벨리알”,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 안에 거하시는 각자의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름부음을 이용하는 법, 즉 혜택을 누리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막11:24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주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즉, 먼저 믿어라. 그리하면 믿은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거듭난 사람에게 성령님은 당신이 성령세례를 받도록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름부음이 있으나 없으나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사역을 위해 구별한 사람들 위에 내리시는 기름부음도 있습니다. 같은 성령님이지만 어던 직분을 감당하도록 주시는 기름부음은 모든 믿는 자들 안에 거하는 기름부음과는 다릅니다. 기름부음이 있으면 우리는 가르치고, 설교하고, 맡은 분야에서 더 많은 일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참고: 고전12:28; 롬12:6-8).
※ 하나님의 최고 안에 있지 못하면 하나님의 최고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뜻 가운데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완전한 공급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최고의 뜻을 알고 우리의 자리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훈련받는 기간 동안에는 하나님께서는 어디서나 섬기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무릎을 끊고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할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하나님은 무엇을 하라고 나를 부르셨을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실까?” 우리는 성령님과 함께 움직이는 법을 익혀야 하며, 또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 엘리야와 엘리샤
엘리사는 어떻게 엘리야의 겉옷(성령의 기름부음)과 선지자의 기름부음을 갑절이나 받게 되었을까요?
※ 엘리야를 가까이 따랐습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따르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에 따름
당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사역, 직분)을 가지 십시요.주 예수님을 따르십시요. 주님이 교회의 머리십니다. 아주, 아주 가까이 따르십시요. 여러분이 다른 누군가가 하는 것과 같은 유형의 사역을 원한다면 그 사람의 사역을 가까이 따르십시요.
만약, 그러한 갈망이 여러분 심령 속에 있다면 대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그러한 것을 심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잘 익은 과일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그렇게 자동적으로 겉옷(기름부음의 능력)이 여러분 위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1“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로 하셨습니다.즉, 그리스도를 가까이 따르는 사람이라면 거른 사람을 따르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기름부음에 순종하기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면 우리는 더 많은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원수 사단 마귀는 사람들의 의지와는 반대로 사람들을 사로잡아 그들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지만 성령님은 우리의 의지에 어긋나게 사역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성령님께 우리 자신을 더 많이 내맡길 수 없는 것입니까?
제 자신을 돌아보면, 더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리면 내 방입니다. 즉, 기름부음을 받을 때까지 기도하곤 해야 합니다. 받을 때가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냥 해야하니까 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위해서… 그 일이 무엇이든지, 무슨 일이든지, 맡은 일, 즉 각자 맡은 사역이 무엇이든지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이 말은 오직 여러분이 맡은 사역을 위해 준비를 올바르게 하고 있을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독특한 기름부음들
또한, 우리가 주의하지 않는다면 이른바 “믿음 사역’을 한다고 하면서 잘못 우쭐거리게 되어 한 가지 유형의 사역만을 추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가지 유형의 사역이 필요합니다. 또한 모든 유형의 사역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앞에서 일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쓰신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하며 또한 그 사람들 위에 임하시는 기름부음을 인식하고 그 진가를 인정해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소명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감당하도록 기름부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방법으로 맡은 사역을 감당하도록 기름부음을 주십니다.
이 가운데 몇 명은 특별한 기름부음을 받게 되었다면 그런 기름부음은 공동체에 놀라운 축복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런 말을 전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 보기 드문 일들이 일어나려고 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고로 우리로 하여금 그 특별한 일에 대비하여 준비함으로써 단지 전에는 그런 일을 본 적이 없다거나, 들어 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성령의 특별한 기름부음의 역사를 모르고 지나가 버리거나 혹은 그 일을 보지 않으려고 피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예) 사도행전 19:11-12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고 나가더라”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 주변의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는 많은 구별된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지구촌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보여주시는 환상으로 기도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또한 지식의 말씀을 주심으로 기도하는 자들도 있고, 기도중에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내가 보지 못한다고, 알지 못한다고 깨닫지 못한다고 부인하지 맙시다.
치유를 위한 기름부음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사도행전 10장 38절에서도 예수님의 치유를 위한 기름부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나 자신은 기름부음을 받은 어떤 사람의 안수함으로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함으로써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막11:23-24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시119: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환난, 고통, 고생)중에 위로와 나를 살리셨음이라”
즉,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 가운데 있던 우리를 살리셨다고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This is my comfort in my affliction for Your World has given me life
우리를 인도하시는 말씀과 성령님은 일치합니다. 음성들을 따라가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데, 그것은 우리가 분별하지 않은 잘못된 음성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별의 영으로 기름부음이 임했거나, 이 부분에 많은 훈련이 되어 있다면 선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여 우리의 걸음은 인도받는다면 어떤 음성도 따라가도 우리가 잘못된 기로 가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요16:14 ‘그가(성령님이) 내(예수님)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예수님)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6:13- 성령님은 오직 들은 것을 말하시는 분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가복음 24장4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령의 능력으로 옷 입는 것과는 다릅니다. 다시말해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된 말씀이든, 성령님이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든 믿음이란 하나님의 주신 “말(음성)”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성령을 받는가
행2:39 “ 이 약속은… 하나님이 …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다”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19: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8:14-15 “예루살렘에 있든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 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9:17 “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성령이 오시면;(요16:7-4)
우리에게 죄에 대하여 확신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의에 대하여 확신을 주신다.
성령은 우리에게 죽음 이후의 심판에 대하여 확신을 주신다.
도우시는 성령(행8:26-31)
성령은 성도가 인격이 성숙하도록 돕는다. 성령은 성도가 고난을 이기도록 돕는다.
성령은 성도가 지혜롭도록 돕는다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합니다(살전5:19-21)
우리가 성령의 존재를 무시하면 성령은 소멸됩니다. 성령의 인도를 거부하면 소멸됨. 깨끗한 영을 유지하지 않으면 성령은 소멸됨(살전5:21),(고전2: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성령님은 성도의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신다.
속 사람이 강해지는 길은 오직 성령의 능력을 덧입는 길 뿐이다(엡3:14).
성도다운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이 필요함
엡5:16-21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경의 가르침을 따를 때, 아름다운 삶은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 할 때 가능하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온전히 따를 때 시작된다(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거룩함이라”, “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참고:레12:45).
모세의 삶을 들어보자면; 왕궁에서 목양지로, 궁중음식에서 평범한 음식으로, 귀족들의 모임에서 목동들의 모임으로 전락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부오 명예, 권세 등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충격과 분노, 그리고 비통함 등이 얼마나 컸을까요? 하지만 모세가 화려한 왕자의 신분으로 자기 영광을 최고로 여길 그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또 왕자의 신분에서 천민으로 전락한 뒤 울분과 분노의 감정이 격해 있을 때에도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울분과 분노의 감정을 초월했을 그 때에 하나님이 다가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만한준비가 되어있을 그 때에 하나님이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아 오시는 목적은 선명합니다.
하나님이 왜 모세에게 신을 벗으로라고 하셨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땅이기에 신발을 벗으라고 하셨다고 많은 설교나 성경공부 시간에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종은 주인 앞에서 신발을 신지 않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도 보면; 탕자는 아버지께 종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신발을 벗은 채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처럼 모세 시대에도 종은 주인 앞에서 신을 벗습니다. 항상 신발을 벗어 벽에 걸어 듭니다. 아침저녁으로 그 신발을 바라보며 “나는 주인을 섬기는 종입니다. 주인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내 몸과 생명은 주인의 것입니다”라는 다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찾아와 말씀하신 음성에 반응을 보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삶의 목적을 따라 살았을 때, 우리 모두 모세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붙들려 새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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