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5/2009

34. 예수는 열심당원(Zealot)이었던가

예수는 사회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증거한 랍비였다. 그는 나사렛이라는 소박한 마을에서 자라났으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전파를 소명으로 살았다. 예수가 전파한 하나님 나라 복음은 로마 황제의 세상 통치에 대하여 비판적인 것으로 들릴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는 열심당(Zealots)이 내걸었던 반(反)로마주의와 하나님 나라 사상에 외면적으로 동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열심당원들은 유대의 율법과 고유풍습을 열광적으로 수호하는 국수(國粹)적인 사람들이었고,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불타는 열정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들은 제신(諸神)들에게 우상숭배하는 로마 황제가 신성모독행위를 한다고 저항한 전투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우상숭배가 있는 한 이 세상에 신의 진노가 있다”고 믿는 종교적 광신자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로마 황제가 유대를 통치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로마 군대에 대하여 무력저항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외투 속에 단검(sicae)을 지니고 다니면서 우상숭배자들이나 신성모독자들을 살해하였기 때문에 시카리이(Sicarii, 자객(刺客)들)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들은 호전적이고 냉혹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무력적인 권력쟁취를 통하여 이 지상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마카비 형제의 반란(주전 167년) 그리고 마사다에서의 죽음의 항전(주후 74년)이 유대역사에 나타난 열심당의 그 대표적인 투쟁 예들이다.

예수는 유대인으로서 로마군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을 비판적으로 보았고, 로마 황제에 아부하고 세례 요한 처형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살인행위를 자행하는 헤롯 왕에 대하여도 ‘여우’라고 부르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래서 예수가 열심당원이 아닌가 라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로마나 헤롯 통치를 반대하도록 군중들을 선동하거나 이들에 대하여 공개적인 비판적인 설교를 하지는 아니하였다. 그것은 예수가 추구했던 이상(理想)과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이 세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나라이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신약학자 오스카 쿨만이 말하는 바와 같이, 예수가 선포하고 실천한 종말론적 급진주의(eschatlogical radicalism)는 열심당이 추구하고 행동화했던 정치적 급진주의(political radicalism)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열심당원으로 오해
우리는 사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가 열심당원으로 오해될 수 있는 여지를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유대인 공의회 산헤드린(Sanhedrin)은 예수를 지지하는 군중의 움직임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에는 자신들이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로마로부터 면책을 받기 위하여 예수를 로마에 대한 정치적 반란자로 고발할 것을 결의한다. 복음서 저자 요한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요 11:47-48).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요 11:53). 최근 사해지역에서 발견된 바르코크바(Barkochba)의 두 서한(書翰)에 의하면 빌라도에 있어서 예수의 사건은 당시 열심당원의 사건과 동일한 범주로 취급되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Oscar Cullmann, Jesus and the Revolutionaries, 고범서 역, 예수와 혁명가들, 범화사, 1984, 46).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를 체포한 자들은 로마의 보병대였다. 그러므로 예수는 로마의 죄수였다. 대제사장 앞에서 있었던 예비적인 심문은 빌라도가 유대인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기 위한 도덕적인 심문이었다. 실질적인 재판은 빌라도 앞에서 행해졌으므로 예수의 재판은 정치적인 재판이었다, 도덕적인 책임은 대제사장에게 속하며, 법적인 책임은 빌라도에게 속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당시 스데반처럼 돌로 쳐 죽이는 유대인의 처형방식으로 처형되지 않고, 십자가에 달리는 로마의 사형방식으로 처형당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의 십자가에 써 붙인 죄목의 명패도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로마에 대한 반역, 즉 로마지배를 받는 이스라엘에서 왕의 통치를 기도한 열심당의 반역으로 명시되었다.

그러나 예수가 열심당원으로 고발되어 처형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가 열심당원이었다고 간주할 수는 없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예수가 지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종말론적 이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해할 수도 없었다. 예수의 행동은 열심당원을 크게 실망시켰으며, 이 같은 실망이 가룟 유다가 스승을 배반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가 체포될 당시 열심당원이었던 바라바도 체포되었다. 이 바라바는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포박된 자”(막 15:7)이다. 그런데 군중들의 요구에 의하여 바라바는 놓임을 당하고 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당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앞으로 예루살렘에 다가올 민족적 재난에 대하여 예언을 하신다. 복음서 저자 누가는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그들이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눅 23:31). 그들이란 자기를 사형에 처한 로마 병정을 가리키고 있다. 이 구절에서 푸른 나무란 예수 자신을 가리키며, 마른 나무란 열심당원을 가리키고 있다(Oscar Cullmann, Jesus and the Revolutionaries, 고범서 역, 예수와 혁명가들, 범화사, 1984, 64). 이 말씀의 뜻은 열심당원이 아닐 뿐 아니라 열심당에 대하여 경고를 마지 않았던 예수 자신도 이렇게 처형하는데 진정한 열심당원에게는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뜻이다. 이것은 40년 후에 유대 열심당이 반란을 일으켜 로마에 대한 전면전을 하게 되고, 그리고 로마가 최종 승리할 것에 대한 역사적 예수의 마지막 예언이다. 이 예언은 주후 70년 로마 장군 디도가 이끄는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유린하고 유대 나라가 역사에서 사라짐으로써 성취되었다.

평화주의자 예수
예수는 열심당원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으나 그는 전혀 열심당원(the Zealot)이 아니었다. 예수는 평화주의자였다. 예수는 열심당에 가담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의 수단과 목적이 예수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예수는 로마 황제나 헤롯왕에 대하여 군중들이 반란을 꾀하도록 설교하지도 아니하였다. 어떤 형태의 폭력도 반대하였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예수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큰 무리, 로마 보병대에 의하여 체포된다. 이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칼과 몽치를 들고”(마 26:47) 왔다. 이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하자 제자중 하나가 검을 꺼내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귀를 쳐 떨어 뜨린다(마 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신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 예수는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을 천명하신다. 이러한 예수의 말씀은 그의 제자들의 수가 적어 싸우기에 불리하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예수는 말씀하신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 26:53). 예수는 자신도 원한다면 충분히 병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신 것이다. 예수는 순수히 체포에 응하신다. 그러시면서 그는 이들에게 강도를 잡는 것처럼 칼과 몽치를 가지고 왔다고 나무라신다: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마 26:55).

비보복 역설: 원수 사랑
예수는 비보복을 역설하였다. 예수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탈리오(Talio)의 법칙에 반(反)하여 자신의 독특한 비보복의 윤리를 가르치신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마 5:38-40). 예수는 더욱 더 적극적으로 원수에 대한 사랑의 윤리를 가르치신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신 23:6, 스 9:1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3-44).

“원수를 미워하라”는 계명은 구약성경에는 없다. 예수 시대의 유대교 내부의 당파싸움에서 비로소 그러한 계명이 나타난다. 쿰란 문서에 “모든 빛의 아들을 사랑하고 모든 어두움의 자식들을 미워하라”는 요구가 나온다. 예수는 동시대의 가르침을 너머서서 자신의 독특한 사랑의 계명을 가르치셨다. 사랑할 때 비로소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된다는 것이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5). 이러한 예수의 비보복과 사랑의 윤리는 당시 유대교 전통에서 찾아 볼 수 없고 역사적 예수에서만 찾아 볼 수 없는 그의 유일한 독특성이다.

사회, 정치문제의 해결사가 되기를 거절
예수는 로마 황제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을 인정하였고, 하나님께 드리는 성전세도 내는 것을 인정하였다(마 22:21). 황제에 대해 세금을 내라는 말은 열심당원에 의하면 로마 권력에 타협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잘 음미해 보면 “가이사에게 속한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는 말은 가이사에게 속한 것 이상은 주지 말라는 것이다. 가이사에게 속한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면 거절하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예수는 사회나 정치문제의 해결사가 되기를 거절하셨다. 복음서 저자 누가는 예수의 이러한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를 정상적인 랍비로 보았다. 랍비는 법적 사건이나 유산(遺産) 분쟁을 척결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였다. 그래서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께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눅 12:13)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수는 대답하신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눅 12:14). 예수는 자신이 재산문제의 해결사가 아니심을 확실히 하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신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예수는 사회, 정치문제의 해결사가 아니라 다가오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였고, 그 인격 자신이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실재였다.

고난의 종 메시아
예수가 만일 열심당원이었으면, 당시 자기를 왕으로 삼으려는 5천명을 동원하여 당시 로마총독부를 점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들의 저의(底意)를 알고 한적한 곳으로 피하신다. 복음서 저자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요 6:15). 당시 군중들은 열심당(the Zealots)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의 나라가 로마의 정치적 압제에서 해방받는 정치적 왕국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는 자신의 사명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으로 아신다. 예수는 갈릴리 북부지역인 가이사라 빌립보(Caesarea Philippi) 지방에 이르러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비로소 자신의 사명을 말씀하신다. 복음서 저자 마태, 마가, 누가는 한결같이 이 중요한 장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베드로가 이런 일이 선생님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예수는 “사단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사역은 제자들이 이해한 정치적인 유대왕국 회복이 아니었음을 단호하게 표명하였다. 베드로는 예수를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열심당원이 아니었다. 만일 예수가 열심당원이었다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마 22:17)라는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의 질문에 대하여 단호히 “아니오!”라고 대답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가이사에 속한 것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입장과 열심당원의 입장을 명료히 구분하였다. 그럼으로써 예수는 열심당원들을 실망시켰던 것이다. 예수는 명료히 메시아 의식을 가지셨다. 그러나 그의 메시아 사명은 정치적으로 왕이 되는 영광의 메시아가 아니라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고난의 종으로서 그의 메시아 사명을 각성하고 계셨다. 이 사명의 구체적인 수행과 그의 인격 안에 하나님 나라는 현존하고 있다. 미래에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는 이미 나사렛 예수 안에 현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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